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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딩굴딩굴 Nov 17. 2020

도제식 교육의 성과

자본주의 직장인 성공 매뉴얼

교육은 유산이 아니라 취득이다. 

- 탈무드


장인이나 스승이 가진 기술과 경험을 전수받기 위해서 그들과 함께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면서 훈련받고 기술을 습득하는 방식이 “도제식 교육” 입니다. 높은 수준의 기술을 전수받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일방적인 갑-을 관계이다 보니 그 폐해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장점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보통 회사에 입사하면, 사수-부사수, 선-후배, 멘토-멘티와 같이 “도제식 교육”과 유사한 형태로 짝을 이루어 빠른 적응을 도와주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저 역시도 그랬습니다. 처음 만난 저의 사수이자, 선배는 한없이 높아만 보였고, 다른 이야기는 별로 귀에 들어오지도 않고 ‘나는 언제 배워서 저 위치에 갈 수 있을까?’ 생각만 주구 장창 했던 기억이 납니다. 초반에는 출근하면 거의 일상이 그 선배를 졸졸 쫓아다니면서 무엇이든지 배우는 시기였는데,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다 부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엘리베이터 대기 줄이 길 때는 어느 쪽의 계단으로 두 층 정도 올라가서 다른 엘리베이터를 타는 팁을 능숙하게 보여주는 그 모습 조차 부러웠으니, 당시의 저는 숨 쉬는 거 말곤 혼자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는 갓난아이와 같은 상태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하겠군요.


하지만 제가 이 선배를 진정 부러워하고, 또 배우면서 잊지 않으려고 했던 것은 업무를 대하는 자세와 효율성을 높여줄 수 있는 툴이었고, 그것은 지금까지도 제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어느 날은 출근했더니, 제 책상 위에 “Getting Things Done”라는 책이 올려져 있었고, 선배는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할 일도 많은 데 팔자 좋게 무슨 책을 읽으라는 거지…’ 정도로 소심한 반발을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물론 마음속으로)


“GTD” 는 데이비드 알렌이라는 사람이 쓴 책이기도 하지만, 효율적인 시간관리와 더불어 주어진 일을 잊지 않고 해결하는 시간 관리 방법론 정도로 보면 됩니다. 2000년대 초에 처음 나왔고, 이후에 IT 종사자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후에는 “끝도 없는 일 깔끔하게 해치우기”라는 제목으로 출간되기도 하였습니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소개입니다. 제가 생각한 선배가 “왜 이 책을 소개했을까?”와 제가 읽어보고 내린 결론 등을 조합해 보면 이렇습니다.


신입사원(나) <- 아직 업무를 모르기 때문에 출근하면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선배(사수) <- 새로 들어온 후배 교육도 해야 하지만, 밀려드는 본인의 일도 처리해야 한다.


짧은 시간 내에 후배에게 많은 걸 가르쳐야 한다 -> 하지만 계속 옆에 붙어서 가르쳐 주기에는 내 일을 처리할 시간도 부족하다 -> 열정만 넘치는 후배는 빨리 습득해서 본인의 몫을 하고 싶어 한다 -> 비록 단순한 일이어도 많은 일을 주고 시간 내에 미친 듯이 처리하도록 한다 -> 난이도나 퀄리티는 떨어져도 다양한 케이스를 경험할 수 있다 -> 어느 정도 하다 보면 경험한 일에 대해서 가속도가 붙는다 -> 더 많은 일을 한다 -> … (반복, 선순환의 연속)


  최근 변화의 움직임이 있긴 해도, 아직 우리나라 기업은 대부분 Top-down 방식으로 일합니다. 조직이 크면 클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이 말은 실무자는 한 해 동안 해야 할 큼직 큼직한 일을 결정하거나 조정할 권한이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물론 반영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의견 정도 낼 수는 있겠지만요. 이런 기업 구조 속에서 신입사원이 To-do List를 결정할 권한은 로열패밀리라 불리는 기업주의 자제, 친인척이 아닌 이상 거의 없습니다. 그걸 잘 알고 있는 선배는 저에게 집중해서 미친 듯이 일하다 보면 속도가 붙고, 익숙해질 것으로 보고 많은 일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왜 이렇게 일을 많이 주지?” 라는 의문을 가질 것이 보이니, 미리 그 답으로 “GTD”일독을 권했던 게 아닌가 합니다.


이것 말고도, 제 사수는 엑셀의 단축키라든지, 여러 개발 툴의 팁 등 여러 가지 능률을 높일 수 있는 툴이나 방법을 늘 소개해 주면서 옆에서 “미친 듯이” 본인의 일을 처리하곤 했습니다. 반감을 가지려야 가질 수 없는 상황을 전개시킨 것입니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 일의 성과를 논할 때 “양보다 질이다”는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하지만 적은 양의 결과물을 회피하기 위한 변명은 아닌지 저는 의구심을 갖습니다. 홈런타자 이승엽의 홈런 개수가 기록적이기도 하지만, 삼진 개수도 가장 많았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는 논어에서 자주 인용되는 말입니다. 세 사람이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될만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고, 나보다 못한 사람에게서도 배울 점이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바로 성과로 이어지지 않을 것 같은 일도, 결국에는 나에게 어떻게든 좋은 성과로 돌아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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