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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밀 Jul 14. 2020

나 이렇게 생겼어?

점심 약속이 있었다. 익숙한 사람들과의 만남이 아니었다. 살면서 드물지만 어떤 모임들이 생겼다. 그런 곳에서는 꼭 뒤풀이가 있었고, 친목을 다지는 시간이 있었다. 사람과 친해지고 대화를 하는 것은 언제나 좋지만 나는 1:1이 아닌 관계가 늘 어려웠다. 어떤 모임이나 집단에 가기 전에는 늘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가 생겼다. 따로 내 역할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는데도, 그저 가서 밥이나 먹고 몇 마디 말을 덧붙이거나 웃고 오면 되는 자리인데도 역시 마음이 완전히 편해지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샤워하고 리넨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완전히 차려입은 듯 보이지 않으면서도 마냥 편한 옷차림처럼 보이진 않길 바랐다. 화장을 했다. 마스크를 써야 하니 보통날들은 선크림 하나면 끝이었지만 오늘은 기초화장을 하고 평소보다 신경 써서 섀도를 골랐다. 마스카라까지 했다. 가볍게 립스틱을 발랐다.

맨다리에 선크림을 바르기 위해 소파에 앉았다. 고개를 돌렸다가 벽에 세워져 있던 전신 거울에 비친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누가 고개를 고정해놓은 것처럼 완전히 붙박인 채로 거울에 비친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자고 일어나니 벌레가 되었던 그레고리 잠자가 거울에 비친 자신을 봤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처음에는 낯설었고 그다음에는 혐오스러웠다. 전체적으로 하나의 덩어리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구부정한 등과 툭 튀어나온 목, 눈두덩이는 두꺼비처럼 부어 있고, 턱 밑에는 하나의 주름처럼 또 하나의 턱이 있었다. 입꼬리는 있는 대로 밑으로 쳐져 있고 표정은 화가 나있는 것인지, 울고 싶은 것인지, 절망적인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긍정적인 기운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 아침에 샤워를 하고 드라이로 머리도 완벽하게 말리고 신경 써서 옷도 고르고 화장까지 마친 상태였는데. 이제 곧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가 약속 장소로 가는 지하철을 타려고 했는데. 도저히 이런 상태로 밖에 나갈 수 없었다. 이렇게 혐오스러운 상태로 밖에 나가도 될까? 이렇게 부끄러운데 누구의 눈을 쳐다보고 말을 섞을 수 있을까?

나는 원피스를 벗어 버렸다.  모임의 일원에게 오늘 참석하기 어렵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이것이 나만의 특별한 경험인지는 모르겠으나 가끔 준비를 모두 끝내고 밖에 나가기 전 마지막으로 본 전신 거울 앞에서 완전히 허물어지는 순간이 있다. 아니면 길을 걷다 무심코 고개를 돌려 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을 봤을 때도.

매일매일 거울을 보는데도 내가 보는 건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내 모습이 뭔지도 잘 모르겠다. 분명히 내가 생각하고 있는 내 모습이 있는데 가끔 그렇게 맞닥뜨리는 내 모습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내가 생각하는 최악보다 늘 더 심각하다. 최악의 최악이다. 누군가가 찍어주는 사진도 마찬가지다. 항상 이 질문을 던지고 싶다.

"나 이렇게 생겼어?"

차마 묻지 못하지만 늘 그 질문을 하고 싶다. 차마 묻지 못하는 이유는 '그럼 뭘 기대했냐'는 눈빛을 받을까 봐 일 것이다. 그 괴리가 너무 커서 웬만하면 사진을 찍히는 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 셀카도 찍지 않는다. 최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스스로를 혐오하게 되는 걸까? 내가 생각하는 미의 기준이 뭐길래, 어느 정도여야 밖에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왜 그렇게 나를 궁지로 모는 걸까?

만약 오늘 모임이 낯선 다수와의 만남이 아니라 오래된 친구와 만나는 자리였다면, 이런저런 내 모습을 다 아는 가까운 사람과의 만남이었다면 나는 당연히 나갔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 모임은 낯선 사람들과의 식사 자리였다. 따지고 보면 나는 그들과 앞으로 관계를 지속할 일이 없다. 오늘이 마지막 식사가 될 것이다. 그러니 직설적으로 말하면 그들에게 내가 잘 보여야 할 필요는 없다. 불쾌감을 주지 않을 정도의 옷차림이면 된다. 화장을 하고 말고도 상관없다. 그런데도 나는 오늘 결국 그 자리에 나가지 못했다. 내가 너무 싫어서, 자신이 너무 없어서.


도무지 스스로도 납득하기 힘든 이 프로세스에 걸려들 때마다 깊은 좌절감이 느껴진다. 이제 나는 그런 것에 휘둘리지 않아, 나는 내가 괜찮아 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다가도 그게 결국 허울뿐인 최면이었다는 듯이 진실의 거울을 마주할 때가 있다. 그럼 와장창 최면은 깨지고 나는 경악한다. 최면에서 깨어버린 나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를 타고 질주하듯 멈추지 못하고 있는 힘껏 비뚤어진다.

"남편은 왜 나 같은 사람이랑 결혼했지?"

"그 동료는 왜 같이 밥을 먹자고 했을까?"

이성과 동성의 문제가 아니다. 그저 나를 둘러싼 모든 인간관계에 의문이 생긴다. 이 사람들이 내 옆에 있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기 힘든 지경까지 간다. 도무지 생각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아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어제 쏟아부은 비 때문일까? 여름이라고 해도 바람이 많이 불고 서늘했다. 걸으면서 생각을 하는 대신 눈 앞에 보이는 것들을 집중해서 보고 피부로 느껴지는 바람을 더 온전히 느껴보고자 했다. 나를 잊어버리자, 지워버리자, 남들 눈에는 내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자. 나는 지금 투명인간이 되어 이 길을 걷고 있다. 그렇게 점점 가볍게 느껴보려고 노력했다.


내가 느낀 절망감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본다면 이런 것일 수 있다. 내가 혐오하는 그런 잣대를 가진 인간이 결국 나라는 것, 외적인 것으로 상대를 평가하고 가치를 매기는 인간들을 비판하면서 나도 그런 인간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 타인의 눈에 내가 어떻게 비칠지 과도하게 신경을 쓴다는 것, 아직도 여전히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무의미한 노력을 반사적으로 한다는 것. 여전히 나는 성장하지 못했다는 것. 바로 그런 점들 때문에 내 스스로가 더 처참해 보인다.   


성장했다고 느껴질 때마다 오늘 같은 일이 생기는 것은 아프지만 의미가 있다. 스스로를 객관화하지 못한다면 그건 허세일뿐이니까. 그러니 오늘부터라도 허세를 부릴 생각은 접어두기로 하자. 아직 멀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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