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 없는 순간
살아 있기 위해, 당신은 매일 무언가가 되어야만 한다. 이름, 역할, 감정—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입증을 도모한다. 자의식과 타인의 기대, 기억의 잔상을 엮어 하나의 인격을 조립한다. 그리고 그 구조가 무너질까 두려워, 끊임없이 스스로를 수신 가능한 상태로 만든다. 비워지는 순간을 단절된 시간이라 여기며 계속해서 자기를 발신한다. 살아 있다는 건, 누군가에게 응답받는 일이라고—그렇게 믿으며 하루를 버틴다.
모든 연결 시도는, 결국 자신을 믿지 못하는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다. 존재는 끊임없이 증명해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 그 자체로 선행하는 상태다. 구조화된 자아가 아닌, 언어 이전의 흐름, 형체 없는 감각까지 포함한 전체다. 삶은 수직적으로 축적되는 서사가 아니다. 반복과 공백, 멈춤과 갱신의 리듬 위에 놓인 순환이다. 나는 이 구조를 ‘010’이라 부른다. 무(0)에서 유(1)로 나아갔다가, 다시 무(0)로 되돌아가는 이 흐름은 단지 삶의 시작과 끝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매일 우리 안에서 반복되는 감정의 순환이자, 말없이 흘러가는 침묵 속에서 형성되는 정체성의 신호다.
눈을 뜨고 감정을 느끼며 자신으로 살아가는 순간이 ‘1’이라면, 그 이전의 무감각한 휴지기와 이후의 정지 상태는 모두 ‘0’이다. 우리는 감각을 느끼기 위해 자극에서 벗어난 상태를 지나야 하며, 자아를 찾기 위해 자아가 해체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즉, 하나의 의미 있는 ‘1’은 결코 고립되어 존재할 수 없으며, 반드시 앞뒤의 ‘0’을 통과해야만 성립된다. 마치 신호가 도달하기 위해서는 정지된 침묵과 여백의 공간을 먼저 지나야 하듯, 그것이 삶의 원리이며 실존의 구조적 전제다.
그럼에도 인간은 오직 ‘1’만을 추구한다. 고통 없는 성장을 원하고, 멈춤 없는 전진을 요구하며, 상실 없이 채워지기만을 바란다. 이기적이라 말할 수밖에 없는 이 태도는 결국 존재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자아의 왜곡과 피로를 불러온다. 인간은 언제나 무언가 되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고 믿지만, 삶이란 본디, 형체 없음과 충만함 사이를 오가는 진동 위에 놓인 것이다. 끊긴 연결, 발신 실패, 회신 없는 응답 속에서도 자신을 느낄 수 있어야만, 우리는 비로소 살아냈다고 말할 수 있다.
예술의 본질이 이를 증명한다. 음악은 음표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으며, 쉼표가 없다면 리듬은 무너진다. 건축은 벽이 아닌 그 사이의 공간에 의해 쓰이고, 그림에는 여백이 있어야 시선이 머문다. 공백은 부재가 아닌 조건이고, 침묵은 비표현이 아닌 깊이 있는 발화의 시작이다. 비움 없는 채움은 무의미하며, 채움 없는 비움은 움직임을 멈춘다. 존재는 이 두 상반된 움직임의 균형 위에 세워진다.
우리는 언어로 자신을 규정하려 한다. 하지만 이는 불신을 감추기 위한 방어에 가깝다. 정체성을 고정하려는 시도는, 스스로의 변화를 거부하는 일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유동적 존재다. 하루에도 수차례 감정과 시선이 바뀌고, 자아의 위치는 주체와 객체 사이를 오간다. 이 사실을 자각하지 못할 때, 내면의 혼란은 심화된다. 마치, 발신자와 수신자가 뒤바뀐 혼신(混信) 상태와도 같다.
사람들은 흔들리는 자신을 실패라고 착각한다. 감정이 사라지고 무언가가 끊긴 듯한 공백의 순간을 이상 상태로 여기지만, 그것이야말로 세상의 기본 구조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0-1-0’이라는 순서를 가진 신호로 이 세상에 호출되었고, 그 이후의 삶 역시 매일 반복되는 연결과 끊김의 연속이다. 이 구조는 단지 탄생과 죽음의 서사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방식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반응을 느끼며 나로 살아가는 시간이 ‘1’이라면, ‘0’은 그러한 나를 벗어나 인간 그 자체로 세상을 바라보는 상태다. 감정이 사라진 시간이 아니라, 개인이라는 경계가 잠시 해제된 투명한 시선이 머무는 자리다. 당신이 무력감 속에 있다면, 그것은 멈춤의 신호가 아닌, 삶이 본래 그러한 흐름 안에 있다는 분명한 증거다. 없음이 있어야 있음이 성립하고, 우리는 그 질서를 따라 태어나 지금도 그 안을 살아가고 있다.
결국 인생이란 정점을 향해 오르는 일이 아니라, 구조의 리듬 속을 살아가는 일이다. 010, 010, 010— 이 반복은 단조로움이 아닌 생의 구성 원리이며, 존재의 자연스러운 조율이다. 흐름을 인식하는 사람은 더 이상 멈춤을 두려워하지 않고, 흔들리는 순간을 결핍으로 오해하지 않는다. 삶은 언제나 010의 구조 안에 있었다. 당신의 존재는 당신의 부재로서 증명된다.
그러니 다시 묻는다—당신은 여전히 ‘되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가? 자의식으로 설계된 정체성과 사회가 부여한 역할에 자신을 걸고 있지는 않은가. 무엇을 증명해야만 살아 있다고 믿는 그 낡은 신호에서 이제는 천천히 벗어나도 좋다. 발신을 멈추고, 아무것도 아닌 상태로 머물러보라. 고요히 이탈하여 생의 흐름을 바라보라. 상실을 두려워 말고, 죽음마저 응시하며, 이름 없는 인간의 자리에서 세상을 마주하라.
그때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아무것도 아닐 때조차, 당신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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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지지 않은 감정은 내면에 흐릅니다.
이 글은 ‘가희: 그럼에도 희망을 이음’ 연재 중 하나로,
감각을 지나 정돈되어 가는 생의 여정을 기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