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에 쓰는 기록, 상추시절

상추를 즐기는 일도 모닝페이지처럼

by 편J


매 끼니 상추를 먹고 있다

몇 주 전 동생들과 만나고 돌아와서 생긴 습이라고 해야 하나?

그때 먹었던 음식 중에 나는 상추에 큰 인상을 받았다.

그리하여 계속 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넓은 상추잎은 뭐든 다 쌀 수 있어서 좋았다

고기, 밥, 쌈장, 마늘, 파채, 김치, 장아찌...

모두 올리고 잘 여미면 모든 감각이 입과 혀로 모인다.

부드럽고 연한 덩어리와 즙이 회오리치는 것이다.


한 쌈 크게 싸서 멀리 앉은 동생에게 건네면

마음까지... 다 환하게 전해지는 것 같았다

이 계절이 특히 맛있는 때라서 그랬나?

잘 자란 특별한 상추시절이다

지금이 내게... 그리고 우리 남매들에게..


엄마가 낳은 다섯 아이가 처음으로 다 같이 모였다

표면적으로도 내부적으로도 뭔가 마음이 달랐다

다섯 아이 중에 둘은 큰집으로 옮겨 살았었고

함께 살아도 서류상은 사촌 사이였다

큰댁부모님도 친부모님도 다 돌아가셨다

복잡한 관계도 감정도 각자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현재를 살고 있다

장성한 조카들은 결혼을 해서 짝이 생겼다


자손의 번창은 먼저 돌아가신 부모님이 남겨주신 엄청난 유산이다

부모님도 자식들도 각각 독립된 세계였음을, 하나의 사람이었음을 생각한다


서로 고마워하고 살아내느라 애썼음을 알아주고 아이들의 시작과 성장을 응원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가시덩굴을 쳐내고 발자국으로만 낸 단단한 길이 있었다

맛있게 먹고 시원하게 즐겼다


시원한 계곡에 발을 담그고 어린 조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모두 다 세어보니 18명, 시간이 해 놓은 일을 목격하는 일이었다

근처 리조트에 짐을 풀고 마음도 풀었다


빛을 조금 더 받은 적상추는 마당 같다

마당을 품은 하늘, 하늘을 들인 마당.

청상추는 화분 같다

조심스레 물을 주고 곱게 옮겨 두고 보는...

풍경은 어릴 적 여름날이다


살아온 만큼 마음을 이해하고 쌈으로 풀어낸 시간들.

상추쌈이 그렇게 맛있었던 건 질 좋은 고기와 숯, 또 고기를 구운 손길, 쌈장을 만든 손맛이나 쌈을 싼 손... 덕분이다.

더해서 그때에 우리의 마음이 거기 있었음이다

큰 몫을 했을 것이다

다른 생각 없이 서로의 눈 빛에 들어있는 마음을 보는 그토록 유쾌한 만남이 있었던가!


이 계절에 상추에 이끌리는 것.

끼니마다 밥상에 상추를 올리는 것.

미트볼도 떡볶이도 닭가슴살도 삶은 달걀도 다 싸 먹는다

너무나 특별하고 차별적인 풍경 속에 우리

모두가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모닝페이지를 쓰면서 펜을 들면 노크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자물쇠가 풀린 그곳으로 들어가면 온갖 말의 조각들이 자유롭게 뛰어다닌다.

길을 잃었다가도 나오는 문을 알게 된다.

감이 생겨나는 것이다

아마도 삶이 들어오고 나가는 일은 혀에 쓰는 기록이기도 할 거다


상추를 즐기는 일도 모닝페이지처럼, 아침 이슬이 걷히고 기운 좋은 때에 초록잎을 씹는 일처럼, 성하(한여름, 아빠 성함)의 기록이다



** 모닝페너자이저와 함께 모닝페이지 하기

1. 준비물 - 노트와 펜

2. '오랫동안 모닝페이지를 쓰다 보면 자연스레 예기치 못한 내면의 힘과 마주하게 된다.'

- 아티스트웨이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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