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뼈가 든 음식에 마음 시린 계절이었다
우리 집 냉장고는 심플하다
그래서 뭘 먹을지 고민이 없다
현미와 콩을 섞은 잡곡밥과 달걀, 방울토마토나 양배추 같은 채소 두어 가지, 그리고 육류 한 가지가 전부다
가끔씩 김치와 김을 더한다
식재료는 1주일에 한 번씩 구입한다
되도록 다양한 조리가 가능한 재료를 사고 다 먹은 후에 새로 장을 본다
덕분에 조리도구도 단순하다
압력밥솥과 찜기 그리고 곰솥, 냄비와 프라이팬 하나면 충분하다
단순은 곧장 충분으로 연결된다
식탁에 차리는 그릇도 적어진다
뒷정리에 쓰이는 에너지도 줄이고 물과 쓰레기 정리, 설거지 수고까지 덜어주니 식사가 가볍다
삶이 어떻게 채워지는가? 하는 건 어떻게 살기로 결정하는가? 에 달려있다
잠이 안 오는 걸 괴로워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몸이 힘든 날은 어떤 방해가 있어도 잘 잔다
일찍 일어나서 움직이고 일이나 운동을 힘들게 하고 나면 잠은 그야말로 꿀맛이다
그제야 이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러므로 삶은 단편으로 떼어서 고민할 일이 아니다
숙제가 밀린 것처럼 긴장과 부담으로 해내야 하는 의무가 아니다
그저 단순한 흐름이다
하나의 물줄기처럼 흘러가는 일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칸칸이 온도를 설정할 수 있지만 냉장고에 냉동실을 두지 않은 것도 흐름이었던 것 같다
양배추 한 통을 사면 제일 크게 쌈용으로 자르고 채로도 썰어둔다
자투리들은 따로 준비해 둔다
미리 준비해 둔 재료는 형태에 따라 다양하게 요리한다
찜을 해서 쌈을 싸서 먹고 생으로는 샐러드로 먹거나 데쳐서 참기름, 들깻가루에 무쳐서 나물을 만들기도 한다.
홀그레인 머스터드를 넣고 양배추 라페를 만들거나 에그마요 샌드위치에 넣는다
볶음밥에도 활용한다
올리브오일에 살짝 볶아서 소금 후추만 뿌려도 맛있다
아이는 닭가슴살로 파스타를 만들 때 넣거나 낫또와 같이 먹기도 한다
재료의 맛 자체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냉장고는 늘 여유롭다
모든 것들이 한눈에 그려진다
뭐가 어디에 있는지 찾지 않아도 된다
이미 알고 있는 재료들은 소통에도 이롭다
미리 먹고 싶은 메뉴를 묻고 장을 보기 때문이다
아이는 자신이 원해서 사놓은 식재료에 대해 책임을 지고 의리를 지켜야 해서 외식을 참는다고도 한다
한정된 재료는 고민을 줄여주는 장점도 있다
한 그릇 요리로 다양한 메뉴를 생각하니 아이디어도 늘어난다
그렇게 모두 요리사가 되기도 한다
'단순하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하고 느낀다
책, [감정을 소모하지 않는 대화법]에서 저자인 임철웅은 부드러운 설득을 위한 구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상대의 주의를 이끌어내고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만든 다음 욕망하게 만든 후에 만족감을 시각화하도록 하라고 한다
그리고 행동하게 하는 것이다
2년 전, 오래된 냉장고를 보내고 김치 냉장고만 새로 샀다
고향에서 너무 멀어진 마음 때문이었는지, 유달리 얼음 뼈가 든 음식에 마음 시린 계절이었다
냉장고에서 냉동칸을 없앤 일은 조금씩 들이고 소중하게 있는 만큼 먹은 후에 남기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냉동실에 넣어두었던 음식들을 꼼꼼히 활용하지 못하고 음식물 쓰레기로 버리며 나 자신에게 한 설득이었다
음식을 얼리며 다시 소생시키겠다는 각오는 급랭 되어 버리기 일쑤였던 까닭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처럼 언 상태의 무엇을 해동하는 일은 시간도 참맛도 잃어버리고 만다
일상을 단순하게 바꾸는 건 자신의 욕망과 만족감을 시각화하는 부드러운 설득 같다
의식해야만 단전에 가득 채울 수 있는 호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