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오후, 아이는 새로운 장난감에 한껏 들떠 있었다.
아빠와 함께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가 엄마 몰래 새로 나온 장난감을 하나 사 온 것인데, 내 눈치를 보며 언제 뜯을 수 있을지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피식 웃음이 났지만 괜히 얼굴에 힘을 주고 앞으로는 꼭 필요한 것 아니면 사면 안된다는 둥, 금방 싫증 내지 말고 오래 가지고 놀라는 둥의 쓴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러고 나서 아이는 꽁꽁 싸여있는 장난감의 포장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원기둥 모양의 케이스를 열자 오동통통 귀여운 여자 아이 인형이 나왔다. 인형은 불투명 케이스 안에 들어있었기에 랜덤으로 골라야만 했고, 아이가 골라온 인형의 테마는 화려한 해적이었다.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인형의 머리카락은 짙고 꼬불꼬불했으며 크고 동그란 눈, 도톰한 입술이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인형의 옷은 해적 치고 꽤나 화려했다. 그밖에 해적의 안대나 머리띠, 헤어핀 등의 앙증맞은 소품들도 준비되어 있었다.
집안일을 마치고 아이의 방으로 돌아오니 새로 맞이한 인형은 머리에 다양한 장신구를 여기저기 달고서 방 한가운데를 거닐고 있었다. 물론 아이의 손을 빌려서.
패션쇼 런웨이를 걷고 있는 인형을 바라보다 무심결에 툭 한마디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너도 이렇게 유명한 슈퍼스타가 되고 싶지 않아?"
그러자 아이는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되고 싶지 않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확신에 찬 부정. 그 단호박 같은 말에 놀란 것은 오히려 내 쪽이었다.
"엄마, 슈퍼스타가 되면 얼마나 바쁜 줄 알아? 그럼 엄마랑 같이 누워서 뒹굴 뒹굴도 못해. 얼마나 힘든데."
뭐라고 이야기해야 할지도 모른 채 아이를 멀뚱히 바라보고 있는데 아이는 인형을 놓고 벌떡 일어나더니 연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엉덩이를 요리조리 흔들며 방 저 끝에서 이쪽으로 걸어왔다. 그 와중에 허공에 대고 누군가에게 싸인도 해주고 인사도 하면서 부지런히 걷더니 한숨을 쉬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어우, 뒹굴뒹굴도 못하고. 힘드네."
그리고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이것 봐, 슈퍼스타는 힘들지?" 하며 자리에 앉더니 다시 인형을 손에 쥐고 놀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반드시 장래 희망을 요구했다.
생각해보면 그 작은 아이들이 무슨 수로 자신의 꿈을 적어 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1990년대 초, 나를 포함한 꼬마 아이들의 장래 희망의 팔 할은 엄마 혹은 아빠의 희망이었을 것이다. 그네들이 어른이 되고 보니 우리 아이는 사회적으로 이 정도는 돼줘야지라고 꿈꾸게 된 희망 말이다. 당시 장래 희망대로 자라났다면 한 반에는 대통령이 세네 명, 법무부 장관이며 검사, 판사, 의사, 교수들이 수두룩 해야 할 것인데, 실상은 그렇지도 않았다.
그래서인지 좋은 대학을 나와 누구나 원하는 직업을 가지고 돈을 많이 벌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며 자라왔던 나로서는 슈퍼스타가 되고 싶지 않다는 아이의 말에 할 말을 잃었던 것이다.
'뭐든지 될 수 있다고 꿈을 꿔도 모자랄 판에, 뒹굴 뒹굴을 못해서 힘들다는 소리나 하고 있다니.' 차마 소화되지 않은 감정들이 속을 휘젓고 있었지만 다행히 말로 뱉어내는 우를 범하진 않았다.
그리고 문득 오래된 기억이 불쑥 머릿속을 스쳤다.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함께 심리 테스트를 한 적이 있었다. 만일 신체 부위의 하나로 태어날 수 있다면 무엇으로 태어나고 싶은가?라는 질문이었다. 사실 내가 무엇이 되고 싶었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다. 아마도 눈이나 손 과같은 겉으로 잘 드러나고 누구나 되고 싶어 했던 신체부위를 말했으리라 짐작만 할 뿐. 그때 남편은 조용히 '발'이라고 했다. 그의 대답을 들었을 때 이상하게 속이 뒤틀렸다.
'겉으로 잘 보이지도 않고 더럽기만 한 발이 되고 싶다고? 남자가 돼서 야망도 하나 없이 대체 어쩌려고 저러지?'
남편이 '발'로 태어나고자 했던 이유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하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의 생각과 나의 생각은 정확히 보색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남편은 누구보다 열심히 움직였지만, 남들보다 두드러지기 위해 혹은 앞서 나가기 위해 아등바등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는 지금까지도 한결같다.
어떤 분야에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유명해져 박수받는 삶이 최고의 삶이라 여겼던 적이 있다.
한 번뿐인 인생 나의 이름 석자를 남기지 못할 바엔 삶을 살아내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따위의 거창한 꿈을 꾼 적도 있다. 지금도 실은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이 무척이나 부럽긴 하다.
하지만 놀라운 부와 명예를 지닌 사람들이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단정 짓기가 참 애매한 것이, 이따금 그들의 화려한 이름 뒤에 붙는 공황 장애나 식이 장애, 불면증, 투병, 도박, 알코올 중독, 마약 혐의 등이 꼬리표처럼 따라올 때이다.
다시, 화려한 옷과 장신구를 걸친 채 아이 손에 들려있는 인형을 바라보며 곰곰 생각해본다.
세상의 슈퍼스타들은 소위 '뒹굴 뒹굴 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모르는 새 몸과 마음에 크고 작은 생채기를 얻은 것이 아닐까?
"그래, 슈퍼스타는 정말 힘들 거야. 안 되는 게 낫겠다."
아이는 내 말이 맞지?라는 표정으로 씩 웃는다.
우리의 사고는 이미 무한 경쟁 사회 속에서 찌들 대로 찌들어져 있다.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뀐다 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 감히 예상해 본다. 그리고 만일, 매일의 시간 속 누군가에게 쫓기는 듯한 기분이 든다면 스스로가 정한 '기대치'와 '결과치'를 돌아볼 일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 정도면 됐다'의 기준은 과연 무엇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가?
혹시, 세상 불특정 누군가 혹은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나의 모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라면 그 조급함을 과감히 내려놓으라 권하고 싶다.
슈퍼 스타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반면, 잔인하게도 그 사람들에 의해 무너지는 법.
눈에 띄지 않아도 초라해 보여도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발'같은 사람은 언젠가 무슨 일이 있어도 진가를 드러낸다. 그러기에 조급함을 조금은 내려놓고 하루 중 '뒹굴 뒹굴'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이미 우리는 존재 자체로 충분한 가치가 있음을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