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수요일 오후 6시는 아이의 한글학교 하원 시각이다. 한글학교의 대상은 베를린에 살고 있는 미취학 어린이 또는 초등학생으로, 부모 모두 한국인인 경우, 한쪽 부모만 한국인인 경우 또는 부모가 독일 2세인 경우 등 다양한 가정환경의 한국 아이들이 '한글'을 배우고 익히기 위해 모여들었다. 매주 두 시간 동안 아이들은 한글을 이용한 다양한 활동을 통해 한글과 조금씩 친해지는 시간을 보낸다.
여느 때와 같이 한글학교의 하원 시간에 맞추어 아이를 데리러 갔다. 아이는 작은 어떤 물건을 소중하게 들고는 조심조심 교실을 나와 나에게로 걸어와 이내 손바닥을 펼쳐 조그맣고 투명한 유리병을 내보였다. 어른 검지 손가락 길이에 조금 못 미치는 유리병 속엔 색색깔의 반짝이는 가루들이 층층이 쌓여있었고 앙증맞은 코르크 마개는 가루들이 쏟아지지 않도록 유리병의 입구를 단단히 막고 있었다. 혹여나 걷는 중에 유리병이 흔들리거나 바닥에 떨어질세라 집으로 향하는 아이의 발걸음은 한층 신중해졌다.
지하철 역까지 걸어가는 동안, 유리병을 들고 가는 것에 조금 익숙해진 아이는 드디어 나에게 유리병 속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파스텔컬러의 고운 가루의 비밀은 바다 소금이었다. 바다 소금에 으깬 크레파스 가루를 섞어 염색한 다음, 작은 유리병 안에 여러 가지 색깔의 소금을 원하는 순서대로 쌓아 올린 것이었다. 꽤나 섬세한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색깔 소금은 적당한 두께로 저마다의 층을 이루고 있었다. 그렇게 유리병을 360도 돌려가며 관찰하고 있는데 수평으로 일정하게 쌓여있는 색모래 사이로 기다란 균열이 보였다. 맨 위층의 보라색 소금이 그만 곱게 쌓인 다른 색의 소금 사이로 파고들어 위에서부터 아래로 이질적인 무늬를 만들어 낸 것이었다. 순간 예상치 못한 이 무늬에 대한 감상을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아이가 의도를 가지고 무늬를 낸 건지 아니면 만드는 과정 중 일어난 불미스러운 사고 인지. 잘 못 물어봤다가 괜히 신경만 거스르는 건 아닌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골똘히 그 균열을 바라만 보고 있는데 둘 사이의 침묵을 먼저 깨트린 이는 다행히 아이 쪽이었다.
"실수였는데 더 예쁘지? 차례차례 넣다가 실수로 병을 건드렸는데 이렇게 무늬가 생겼어. 근데 나는 이게 제일 마음에 들어."
일단 아이의 마음을 알았기에 엄마로서의 대답은 수월했다.
"실수로 그랬는데 진짜 더 예쁘게 됐네? 신기하다."
그렇게 한 번 더 동의해 주었다.
"엄마, 근데 그거 알아? 실수로 해서 잘됐을 때를 생각해서 다시 한번 더 일부러 실수하려고 하잖아? 그러면 또 그렇게 예쁘게 안 되더라고."
"오 그러네. 진짜 그래. 네 말이 맞네."
아이의 말은 사실이었다. 실수가 작품이 되는 순간을 아이는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듯했다. 아이는 그날의 실수를 어렴풋이나마 포용하고 있었다. 무척 다행이었다.
나는 실수가 용납되지 않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적어도 기억상 남아있는 어린 시절의 나는 절대로 실수해서는 안 되는 어린이였다. 실수라는 단어는 어떠한 경우에도 변명이나 핑곗거리가 될 수 없었다. 텔레비전에 눈이 팔려 유리컵을 놓쳤을 때도, 숟가락을 놓쳐 뜨거운 국물을 허벅지에 쏟았을 때도, 수학 시험 문제를 잘못 읽어 답을 틀렸을 때도, 동생과 놀다 동생의 이마에 혹이 났을 때도 '실수'로 그랬다는 나의 설명은 부모님껜 전혀 용납되지 않았다. 실수를 할 때마다 보고 들었던 부모님의 무서운 눈초리와 높은 목소리들은 강한 자극이 되었고, 어린 시절 나의 미숙한 사고 회로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해석의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결국 실수는 나쁜 것이고,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해 버린 것이다. 그대로 나는 자라났고 어른이 되었다. 실수에 각박한 어른으로.
아이의 실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엄마는 되지 말자 굳게 결심했으나, 습득한 경험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육아를 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평소와는 달리 갈등 상황에 놓이기만 하면, 아이의 자질구레한 실수에 불같이 화를 내기도 하고, '그러니까 엄마가 말했잖아. 엄마 말을 안 들어서 그렇지!'라며 모든 상황을 종종 아이의 탓으로 돌리려 했다. 이처럼 아이를 향해 무의식으로 튀어나왔던 완벽주의 성향들은 작년 어느 날 아침, 느닷없이 전환점을 맞이했다. 그날 아이는 평소와는 다르게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무척 떼를 썼다. 속에서는 불이 나고 화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았지만 아이에겐 최대한 티 내지 않으며 달래려 노력했다. 결국 삐죽 나와있던 아이의 입에선 의외의 말이 흘러나왔다.
"내가 왜 맨날 공주 성만 그리는 줄 알아?"
"응?(침묵)...... 공주성을 제일 잘 그려서 그런 거 아니야?"
"아니야. 사실 나는 다른 것도 그리고 싶은데 혹시 잘 못 그릴까 봐 그릴 수가 없어. 피아(친구 이름)는 생각하는 대로 다 잘 그리는데 나는 그릴 수가 없어."
무언가 내 머리를 세게 치고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그제야 아이의 실수를 용납하지 못했던 일상의 순간들이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는데.
지금 뭔가 잘못됐구나 싶었다.
"실수해도 괜찮고 잘 못 그려도 괜찮아. 엄마랑 유치원 마치고 공주성 말고 다른 것도 같이 그려보자."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고 유치원에 무사히 등원했다. 아이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소파에 채 앉지도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미안함에 울고 답답함에 울며 한참을 그렇게 꺼이꺼이 울었던 것 같다.
실수해도 괜찮아.
그날 이후로 우리 가족에게, 또한 스스로에게 의식적으로 내뱉고 있는 말이다. 물론 언행일치가 되지 않는 날도 있다. 지난주 급하게 김밥을 싸던 중, 실수로 열어둔 상부장에서 플라스틱 보관용기가 미끄러져 떨어지는 일이 있었다. 그 밑에서 나는 밥에 밑간을 하고 있었고 통깨를 뿌리던 찰나에 미끄러진 보관용기가 나의 손을 정확히 가격했다. 나는 그만, 통깨가 담긴 유리병을 놓치고 말았고 순식간에 귀한 통깨들은 (한국에서 시부모님이 직접 농사지으신 통깨였는데) 사방팔방으로 쏟아져버렸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유리병에 담겨있던 통깨가 절반 이상 사라진 후였다. 게다가 작디작은 깨알들이 싱크대 뒤쪽이나 작은 틈 사이로 모조리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이것도 제대로 못하니? 상부장은 왜 열어둔 거야? 미리 상부장 정리 좀 할걸. 난 진짜 구제불능이다.'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원망이 부풀어 오르는 반죽처럼 빵빵하게 차올랐다. 하지만 부정적인 감정으로 뒤섞인 마음을 애써 무시하고 오히려 이렇게 내뱉었다.
"그럴 수 있지.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실수해도 괜찮아."
끓어오르는 감정을 완전히 다스릴 수는 없었지만 효과가 있었다. 무엇보다 아이가 그 장면을 보고 들었다. 그럼 됐다 싶었다.
오늘도 서랍장 위에 놓인 작은 유리병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색색이 입혀진 모래층 가운데, 위에서 아래로 생긴 기다란 균열. 그 균열은 분명 실수였지만 작품이 되었고, 다시는 똑같이 재현해 낼 수 없는 가치 있는 순간으로 남았다.
물론 생사의 촌각을 다투는 순간에는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을 것이다. 되돌릴 수 없는 치명적인 실수를 두둔할 생각은 추호에도 없다.
그저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각자의 자리에서 맞닥트리게 될 다양한 실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뿐이다. 순간의 결과가 좋지 않다 할지라도 실수의 선작용은 분명히 있다. 한참을 두드리고 때려야 단단해지는 대장간의 쇠처럼 실수라는 녀석은 생각지도 못한 시간에 불현듯 찾아와, 우리네 인생을 이렇게 저렇게 두드리고 때리며 멋진 작품으로 빚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바쁘다 바빠 현대 사회'에서 완벽히 살아보려 노력하는 것도 물론 좋다. 하지만 계획에 비껴 난 나의 실수, 아이의 실수, 주변 누군가의 실수들을 기꺼이 품어내는 너그러움과 여유를 되찾는 노력도 분명 필요하다. 실수 덕분에 더욱 근사 해지는 순간은 분명 존재할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