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초등학교 입학 두 달 전, 본격적인 입학 준비를 위한 학부모 모임이 열렸다. 대강당은 모든 예비 1학년 아이들의 부모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앞으로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책임질 교장선생님과 교직원들의 소개가 있고, 간단한 학교 설명과 입학식에 대한 안내가 이어졌다. 그리고 담임 선생님들이 나오셔서 각 반 학생들의 이름을 불렀고 아이의 부모가 대신해서 손을 들었다. 모임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그리고 오리엔테이션 안내 파일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도달한 곳은, 학교 준비물이 빼곡히 적혀있는 페이지였다. 연필, 지우개, 자, 연필깎이 같은 기본적인 필기구를 비롯하여 독일어, 수학, 체육, 미술, 그 외의 과목들까지 과목별로 갖춰야 할 준비물들이 종이 가득 쓰여 있었다. 생소한 독일어 단어들은 바로바로 단어장에서 검색해보기도 하고 즉시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기도 했다. ' 이걸 어떻게 다 준비하지.' 순간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의 초등학생 시절, 준비물은 모두 동네 문방구 아주머니의 몫이었다. 그날그날 학교에서 정해준 준비물은 늘 동네 문방구에 가득했고, 내가 모르는 준비물까지 미리 알려주시는 문방구 아주머니 덕분에 따로 준비물에 대한 고민을 해 본 기억이 없다.
하지만 이토록 기나긴 준비물 리스트는 무엇이란 말인가? 대체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사야 할지 고민되었다. 친한 독일 학부모에게 물어보니, 사무용품을 파는 상점이나 종합 쇼핑몰, 백화점, 할인 창고 매장 등을 다니며 보이는 대로 사는 게 답이라고 했다. 그래서 우선 인터넷에서 검색되는 준비물들은 죄다 온라인 구매를 했다. 몇 개 되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나머지는 일일이 구입해야 할 처지였다. 이를테면 미술 준비물에는 아크릴 붓 8호, 12호, 20호와 수채화 붓 4호, 8호, 12호 를 골라 구입해야 했는데, 각 매장별로 붓의 종류와 품질과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 게다가 베를린에 사는 모든 예비 초등학생들의 준비물이 비슷해서 인지 이미 물량이 없는 경우도 비일 비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움직였더니 대부분의 준비물을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사야 할 준비물이 몇 개 남지 않은 가운데, 아이와 우연히 한 종합 할인 매장에 발을 들였다. 역시나 매장 가운데엔 학교 입학과 개학을 위한 준비물 코너가 마련되어있었고 늘 그랬듯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그날따라 지친 몸을 이끌고 멍하니 준비물 코너를 바라보고 있는데 아이가 큰 소리로 나를 불렀다.
" 엄마, 나 이거 찾았어! "
아이의 손에는 펠리컨이라는 브랜드의 물감 팔레트가 쥐어져 있었다. 가는 곳마다 재고가 없어 구입하지 못한 준비물이었다.
" 우와, 이거 어떻게 찾았어? 잘했네. "
그 뒤로도 아이는 복잡하게 쌓여있는 물건들 사이를 휘저으며 필요했던 준비물을 쏙쏙 골라서 가지고 왔다.
" 엄마는 아무리 찾아도 없던데, 어떻게 그렇게 잘 찾았어? "
" 처음에는 잘 안 보여도, 천천히 보면 빨리 찾을 수 있어. 빨리빨리 찾으려고 하면 못 봐. 천천히 하는 게 제일 빠른 거야. "
한국에서의 내 삶 속엔 늘 빨리빨리가 존재했다.
조금이라도 빨리빨리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쉼은 게으름의 또 다른 표현일 뿐, 바쁘게 움직이는 것만이 살 길이라 여겼다. 피곤하다고 느낄 새 조차 없이 피곤하게 살았던 것 같다. 주변 모든 이들도 대부분 그렇게 살아 내는 모습을 보아서였을까. 이러한 삶이 유난스럽다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에 반해 베를린은 전반적으로 모든 것이 느렸다. 다양한 행정 업무는 기다림의 연속이었고, 단번에 되는 것이 거의 없었다. 집에 인터넷을 설치할 때도 인터넷 공유기가 바로 오지 않아 한참을 불편하게 지내야만 했다. 병원 방문은 예약이 필수인데 빨라도 일주일 후나 돼야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일상에서의 대부분 일들이 이런 식이다 보니, 매일의 삶이 버퍼링에 걸린 것처럼 자주 멈칫거렸다.
하지만 이러한 느림 속에는 정확함이 있었다. 당장 오늘, 내일 원하는 결과를 받아볼 수는 없을지라도 어느 때가 되면 분명히 그 일은 해결되었다. 다만 생각보다 시간이 좀 더 걸렸을 뿐.
서두르다 보면 분명 구멍이 생기게 마련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이든 빠르고 정확하게 해내길 원한다. 빠르고 정확하게 생각하거나 행동하길 바란다. 그러나 이 두 가지를 항상 완벽하게 해내는 사람이 과연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로봇이 아닌 이상, 절대로 없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시간에 쫓기며 초콜릿 케이크를 만들 때였다. 평소에도 익히 만들어 본 케이크였기에 케이크를 만드는 두 손엔 자신감이 실렸다. 하지만 '빨리 완성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다 보니, 그만 우유의 양을 잘못 계량하고 말았다. 정확함이 필수인 베이킹에서는 치명적인 실수였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 실수를 눈치채지 못하고 기존 레시피보다 많은 양의 우유를 미리 준비해 놓은 가루류 위로 단번에 쏟아부었다. 다소 되직한 느낌의 반죽이 되어야 하는데 이상하리만큼 묽었다. 한참을 휘젓다 '아차'하는 마음에 계량컵을 바라보니 역시나 선명한 실수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액체류인 우유를 가루류의 계량 눈금에 맞춰버린 상황. 다 버리게 된 케이크 앞에서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했다. 남편의 기지로 가루류를 더 넣어가며 농도를 조절했으나, 완성된 초콜릿 케이크는 기대했던 맛과 형태와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 위에서 고민을 해본다. 성적에 맞춰서 혹은 부모님의 권유로, 주변인들의 견해와 의견을 핑계 삼아 눈에 보이는 대로 허겁지겁 살아낸 인생은 아닌지. 나의 특성과 강점을 들여다보기 전에, 학교나 회사, 사회가 원하는 정체성의 틀에 나를 구겨 넣으며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왔던 것은 아닌지 말이다.
만일 학업이나 일을 시작해야 할 20대를 앞두고 있다면, 또는 이미 어떤 분야에 뛰어든 20대라면 잠시 멈춰 스스로를 점검해 보라 감히 말하고 싶다. 그것이 자신의 성향과 적성에 맞는 일인지, 포기하고 싶은 힘든 순간이 찾아오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뚜렷한 목표와 비전이 있는지를 진지하게 살펴보길 바란다. 그저 남들이 가는 길이나 원하진 않았지만 어쩌다 보니 가게 된 길 위에 있다면, 부디 달리기를 멈추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어 보길 부탁한다. 지금 당장 남들보다 빠르게 달리고 있음에 만족할 일이 아니다. 그 보다 중요한 것은 본인에게 맞는 정확한 길로 제대로 가고 있는지의 여부다. 아쉽게도 내가 온 힘 다해 달렸던 그 길은 애초에 나의 성향과는 맞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이들의 속도에 맞추기 위해 눈물을 훔치며 냅다 내달렸던 것 같다.
어느새 나는 30대 중후반에 도달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엔 그리 늦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섣불리 시작하긴 쉽지 않은 어중간한 나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보면 빨리 찾을 수 있다는 아이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스스로를 천천히 들여다볼 작정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의 속도가 지나치게 느린 것은 아닐지 걱정도 된다. 하지만 비록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명확한 삶의 비전을 찾을 수만 있다면 그 머무름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하루를 살아도 기쁨으로 살아내는 삶의 여정을 소망하며, 나는 오늘도 포기하기를 포기한 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한 걸음 내디뎌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