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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RIMI Oct 21. 2022

오늘도 좋은 하루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와 조금씩 소통이 되기 시작할 즈음부터 나와 남편은 아이를 재우기 위한 일정한 루틴을 만들었다. 이제껏 아이 재우기 담당은 남편이었고 수면 루틴의 대부분의 틀은 남편이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두운 방에 작은 스탠드 조명 하나를 켜고, 아이를 침대에 눕힌다. 그러고 나서 짧은 동화책 두 권을 읽어주고 굿 나이트 뽀뽀와 포옹을 한다. 아이가 눈을 감고 있으면 남편은 작은 목소리로 아이를 위해 기도를 드린다. 그래도 아이가 잠이 안 온다며 징징거린다면 남편은 그가 알고 있는 동화 이야기 하나를 나지막이 읊어준다. 그러다 보면 남편도 침대 옆 바닥이나 소파에 누워서 잠이 들고 아이도 잠이 들어있다. 나는 조금 기다렸다가 아이방에서 잠이든 남편을 살짝 깨우는 것으로 보통의 밤이 흘러갔다.


유치원을 졸업할 무렵이 되자,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생각과 말이 쑥쑥 자라났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의 잠자기 루틴에 '아이가 직접 기도하는 시간'을 추가해보기로 했다. 말만 거창했지, 사실은 아주 짧은 한 문장을 뱉어내는 시간이었다. 그날을 돌아보며 스스로 생각하고 기도하는 시간이 아이에게도 분명 의미 있는 순간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시도 첫날, 아이의 앙 다문 두 입술은 좀처럼 떨어질 생각을 하지 못했다. 좋은 기분으로 잠들기 위해 시작한 루틴이었는데 오히려 아이의 짜증을 유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와 남편은 아이의 마음이 열릴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의 입술이 움직였다.

"하나님, 엄마 허리랑 목 안 아프게 해 주세요. 아멘. "

작은 아이가 엄마의 건강을 놓고 기도함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 기도가 얼마나 힘이 되던지, 금방이라도 허리와 뒷목 통증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 이후로 두 달 정도 지났을까, 아이의 기도는 좀 더 구체적이고 다양해졌다. 한국에 계신 할머니 할어버지를 위해서, 엄마 아빠를 위해서, 친구를 위해서 생각나는 대로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 할아버지 할머니 건강하게 해 주세요. 아빠 회사 잘 다니게 해 주세요. 엄마도 안 아프게 해 주세요. (친구) Y의 감기가 낫게 해 주세요. "

주변 사람들의 건강을 지켜달라는 기도가 대부분이었다. 남편은 아이의 기도 내용을 내게 전달해주었고 그것이 내 맘에 적잖은 위로를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를 재우고 방으로 돌아온 남편이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아이가 오늘 갑자기 감사 기도를 시작했어. "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어떤 마음으로 그런 기도가 시작됐는지 알 길은 없으나 아이의 하루 끝에 감사가 있음이 감사했다.

이후로 남편이 업무로 인해 밤늦게 퇴근하게 되는 날이 많아졌다. 나는 늘 남편이 했던 것처럼, 아이를 재우기 위한 루틴을 하나하나 밟아나갔다. 그리고 어김없이 아이의 기도하는 시간이 돌아왔다.

" 하나님, 오늘도 좋은 하루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남편이 내게 전해주었던 아이의 감사기도를 직접 들었다. 그 감사기도로 나의 헛헛한 마음이 가득 채워지는 듯했다. 아이의 맑고 순수한 입술이 '감사'를 표현하고 있었다. 그래서 또 감사했다.



우울도 유전이다.

정말 그렇다고 한다. 존스 홉킨스 정신과 교수인 지나영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모든 몸의 질병에는 유전적 취약성이 존재한다. 유전적으로 취약한 부분에 극심한 스트레스나 고통을 동반한 환경적 요인이 더해지면 쉽게 감염 일어나게 되고 발병하게 된다. 우울증도 마찬가지이다. 우울증도 '질병'중의 하나로서 유전적 취약성을 가지고 있다. 똑같은 갈등 상황을 겪어도 어떤 이는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고, 어떤 이는 기분이 침체되며 무기력해진다. 우울의 정도는 어느 정도 가족력으로 인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록 우울에 대한 유전적 취약성을 타고났다 하더라도 그 요소를 뒤엎을 수 있는 가장 강한 무기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감사'라고 한다. 뻔한 소리 같겠지만 아주 작은 것이라도 감사의 말을 하고 감사의 행동을 취했을 때, 우리 몸은 스스로 항우울 물질인 세로토닌을 분비한다. 위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안이 이미 각자의 몸속에 갖추어져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라웠다.

나라는 사람은 참 생각이 많다.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만들어진다. 그 생각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도 한다. 그런 잡생각들은 보통 부정적인 결론으로 마무리되거나 무한한 물음표를 남긴 채 머무르게 된다. 나에게도 어느 정도 '우울'이라는 유전적 취약성이 있음을 최근에야 인정하게 되었다. 온갖 노력과 부단한 멘털 관리로 우울함을 덮거나 감추며 살아냈다. 그러다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커다란 슬픔과 스트레스 상황에 부딪히자마자 나는 헤어 나오지 못할 깊은 어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정말 다행인 것은 돌이킬 수 없을 선을 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베를린에서는 나의 힘든 마음을 매일 들여다봐줄 누군가가 없었다. 남편도 아이도 결국은 나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가족을 지켜야 했다. 그래서 실오라기처럼 남아있던 '책임감'을 부여잡으며 버티고 일어났다. 깊은 우울증엔 빠지지 않았으나 나의 마음엔 그만 큰 구멍이 뚫려버렸다. 그리고 도무지 막을 수 없을 것 같은 큰 구멍을 통해 시린 바람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진심으로 감사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억지로 매일 써 내려갔던 감사일기는 한 달도 안돼서 집어치웠다. 쥐어짜는 감사는 오히려 괴로움만 안겨주었다. 그리고 감사의 내용들도 죄다 '다른 누군가 보다 나은 것을 감사'하는 못난 감사들 뿐이었다. 제대로 된 감사를 해 본 적이 없으니, 감사의 내용도 '비교'로부터 나왔다.

결국 채워지지 못한 마음을 품고서 오랜 시간을 흘려보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을지도 모르겠으나 빈 껍데기처럼 매일을 버텼다.

그러다 우연히 나보다 두 살 많은 언니를 알게 되었다. 그 언니는 나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주었고, 정성이 가득 담긴 한 끼를 차려주었다. 평범한 점심시간이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칠 즈음 나도 모르게, 내 마음속 슬픔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 언니는 갑자기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기 시작했다. 그럴 의도는 전혀 없었는데.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 두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우리는 부끄러움이나 체면 따윈 다 내려놓고 한참을 그렇게 함께 울어버렸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나의 슬픔을 위해 이렇게 펑펑 울어주는 사람이 있었던가? 그날, 그녀의 눈물에는 힘이 있었다. 그 뜨거운 눈물은 어느새 질퍽한 진흙처럼 내 맘에 흘러들어와 뚫린 구멍을 조금씩 메워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진심 어린 '감사'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매일  잠에   있다는 것과 아침에 다시 눈을   있다는 것이 기적이었다.  콧구멍으로 호흡하고 걸어 다닐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였다. 그러자 제삼자를 향한 부러움과 미움의 감정들이 점차 사그라들었다. 새로운 내일을 기대하고 싶은 소망이 감히 생겼다.

세상의 어느 질병에도 완치의 개념은 없다고 본다.  이상 나빠지지 않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관리하고 평생 치료해 가는 것일 . 이와 같이, 평생을 함께한 나의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들은 여전히  속에 남아있긴 하다. 그래도 감사가 무엇인지를 알게  것만으로도 감사한 지금이다. 하루를 돌아보았을 , 특별히 힘든 일도 좋은 일도 없다면 그것으로 감사다. 정말 고된 하루였다 할지라도 어찌어찌 버텨낸 것이 감사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매일 밤 침대 위에 몸을 누이고 할 수 있는 고백은 이것뿐인 듯하다.

오늘도 좋은 하루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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