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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훈 Jul 25. 2018

애어른이라 불리던 아이

슬픈 것보다 슬픈 것을 못 느끼는 게 더 슬픈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나는 '애가 애 같지 않다'라는 말을 종종 듣곤 했다. 낯선 곳에서 미동도 없이 얌전하게 엄마를 기다리는 그런 아이. 주변 어르신들이 나를 애어른이라고 부를 때도 나는 무덤덤한 반응으로 일관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사실은 나도 평범한 아이였다. 툭하면 울었으니까.
정말로 정말로 툭하면 울었다. 물이 가득 차서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바로 쏟아질 것 같은 그릇이었다.
7살 때 유치원 선생님이 "너는 왜 이렇게 많이 우니? 우는 걸로 다 해결되지 않아."라고 다그치듯이 말할 때 그 말이 무서워 더 숨죽여 울었던 게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있다.

한 번은 더 어렸을 때 이런 일도 있었다. 엄마 아빠는 일을 가시고 외할머니 반찬가게 안 작은방에서 혼자 놀던 때였다. 할머니가 일을 하시다 내 기척이 느껴지지 않아 방을 들여다보니 내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더라는 것이다. 할머니가 왜 우냐고 물어보니 어린 시절의 나는 이렇게 말하더란다.
"할머니! 나도 내가 왜 우는지 모르겠어요..."
할머니는 그런 손주가 귀여웠는지 지금도 종종 그날을 풀어놓곤 하신다. 실은 내가 우는 이유가 있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울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반찬가게에서 양파 손질을 계속하다 보니 눈이 매울 수밖에 없던 것이다. 하지만 어려서 그걸 몰랐던 나는 울면서도 우는 이유를 모를 수밖에. 이유가 어쨌든 간에 나는 정말 많이도 울었다.

스무 살이 넘어서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이런 생각이 들곤 했다. 아주 작고 연약했던 내 어린 시절의 자아는 사실 반응할 줄 몰랐던 것이 아닐까. 세상은 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내게 끊임없이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사건들을 안겨다 줬지만 그 모든 것들에 즉각 반응하기에 나는 너무나도 어설프고 준비되지 않은 꼬마였던 것이다. 겁이 나고 두려워서 그것들에 반응하지 못할 때 나는 어른 같다는 소리를 들었고 그 감정들이 버거워 울기 시작할 때 나는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보였을 것이다.

꽤나 오랜 시절 동안 그렇게 커왔다. 유치원 시절, 갑자기 새엄마가 생겼을 때도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이는 아이였고,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집과 학교에서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순종적인 아이로 자라왔다. 이제는 그 당시의 내가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해석하지 못한 채 남겨뒀을 뿐이라는 걸 안다. 사건은 그냥 일어났을 뿐이고 감정들은 미숙해서 해석되지 못한 채 내 마음속 어딘가 깊은 곳에 똬리를 튼 것이다.

살면서 시간이 흐르고 스스로 강해지려 발버둥 치다 보니 해석되지 못한 것들을 마주할 용기가 조금은 생겨났다. 어떤 것들은 가만히 있어도 문뜩 떠오르거나 비슷한 일들로 인해 연상되었고, 어떤 것들은 애써 기억하려 해도 기억해내기 쉽지 않기도 했다.

그런 것들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해석해 나가는 과정은 고독하고 버겁고 슬프기도 했으나 스스로 대견함을 느끼며 자존감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슬픈 것보다 슬픈 것을 못 느끼는 게 더 슬픈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을 거치고 나면 누군가에 대한 미움이나 분노와 같은 응어리들이 조금씩 사라졌고 그만큼 생겨난 공간에 새로운 것들을 채워 넣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게 있어 '그런 과정'이라는 것은 항상 '글쓰기'를 통해 이루어졌다. 내가 글쓰기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다. 앞으로 글을 써야 할 이유가 되기도 하고.

예전에는 과거의 것들을 해석하고 나를 들여다보는데 글을 주로 써왔다면 요즘의 나는 현재를 사유하고 미래를 소망하는 글을 쓰곤 한다. 또 최근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인공인 소설을 어렴풋이 끄적이기 시작했다. 가장 좋은 것은 글 쓰는 고통 속의 희열을 맛보고 계속 써 내려간다는 것이고. 어쩌면 여기에 지금, 애어른에서 비로소 어른을 떼고 아이로 다시 태어난 꼬마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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