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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살다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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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잠 Aug 15. 2021

단단한 시간

컵에 물을 담아 고구마 하나를 넣었다

며칠 동안 들여다보았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아무래도 싹이 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썩지는 않길래 그냥 두었다

또 며칠이 지나 문득 조그만 싹이 난 것을 발견했다.

조금 더 큰 컵에 담아 물을 담아 주었다

갑자기 눈에 띄도록 크게 자나라기 시작했다


시간은 정교하고 단단하게 흐른다


흐물거리는 나를 추스르려 애쓰며 

그 정교하고 단단한 흐름의 가장자리에서

서성거렸다


그러나

매일 새로운 길이 뻗어 나가듯

시간은

조금의 오차도 없이 단단하게 걸어가고

그 발자국의 그늘에 쪼그리고 앉으면

세상은 가고

나는 남아

대체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길을 잃는다

헤매는 것이 사는 것인지

사는 것이 그저 알 수도 없는 길을 헤매는 것인지 모른 체



시간은 가고 나는 남아

나만 남아


그래서

풍성하게 자라나온 고구마 잎을 보다가

TV를 끄고

창을 열고

내일의 출근을 생각하다가


과연 내일은 무엇인지

어차피 단단하게 뻗어나갈 시간 뒤에

남겨질 내가

내일을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고단한 새벽이 밝아

또 단단한 시간의 끝에 기대어

조마조마하게 두근거리는 것들을 삼킨다



2020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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