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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신 Sep 23. 2018

한순간

에세이-데이트랜드

한순간 나른히 길을 걷는 노인이 내 시선을 잡았다.


연휴의 청계천 앞 카페에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빠져나가 한적해진 도심을 무심히 가끔 차가 지나다녔다.

간만에 맑은 가을 햇살이 미세먼지 없는 공기를 메웠다.


철지난 재즈풍의 음악이 나른하게 들려오는 오전의 하루, 오늘은 무엇을 할지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콘크리트와 강철, 벽돌로 대권의 꿈을 담아 전직 대통령이 만든 인공의 하천이 흘러가고 각양각색의 고층 건물이 주위를 감쌌다.

이곳이 내가 나서 자란 도시지만 언제나 다시 보아도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때 아주 여유롭고 한가롭게 노인 한 명이 청계천의 보도블럭 위를 지나쳤다.


연휴라도 이 도시에 남은 이들은 바쁘다.

쉴 새 없이 걷고 달리며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뜀박질한다.

하지만 이미 많은 일을 해냈고 상상할 수 없을 곳을 다녀왔을 노인은 한가롭고 여유롭게 지팡이를 건들거리며 천천히 걷고 있었다.


생의 끝무렵을 저렇게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도 좋지 않을까.


그 한순간은 마치 삶의 비밀을 한꺼풀 들여다본 느낌이었다.


망연히 청계천 카페 한 켠에서 보았던 오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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