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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세계파멸자 (3)

[웹소설-단편] 불테치노 사가 시리즈

by 기신

<불테치노> - 세계파멸자 편 (3)


기신


세계파멸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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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를 편 거대한 새의 형체가 활로부터 쏘아져 날아온다.

마라가 언령으로 만들어낸 천둥의 새 안쥬다.

천둥새는 눈 한 번 깜박하기도 전에 검은 사슴을 휘감아 통째로 구워버렸다.

사핀은 애꿎은 바즈라를 쏘아대며 발을 굴렀다.


“제길, 간발의 차였어!”


날아간 전깃살에 구워진 사슴은 박살이 나 버렸다.

이래서야 먹기도 어렵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안타까운 것은 다 잡은 사슴을 놓쳤다는 거다.


“그렇지 않다. 간발의 차가 중요한 거다.”


마라가 고개를 저었다. 사핀이 약이 올라 대들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마라?”


초원의 바람이 마라의 주홍색 머리칼을 휘날린다.

생동감, 활력감, 강렬함이 하나로 집약된 탄력 넘치는 푸른 몸이 태양빛 아래서 생동한다.

얼굴에는 경쾌한 웃음이 가득하다.


그리고 사파이어빛의 눈이 빛난다.

그 속에 담긴 것은 절대로 꺾이지 않는 아누 만의 ‘자유 의지’.


“그러니까 사냥은 말이지. 신속하고 정확하게 결단을 내리는 게 중요하다. 알겠냐? 빠르고 정확한 결단이다. 절대로 늦춰서도 망설여서도 안 된다. 틀려서도 안 되고! 그럼 그대로 사냥은 실패하는 거야.”


사핀은 뒤를 보았다.

도망쳤을 검은 사슴 떼는 하나같이 쓰러져 죽어 있었다.

사핀이 큰 놈을 잡는답시고 시간을 낭비하는 사이, 마라는 나머지 사슴 떼를 모조리 잡아버린 거였다.


이래서야 영영 따라잡을 수가 없다. 사핀은 피식 웃어버렸다.


“허파에 바람 들었냐? 갑자기 왜 실없이 웃냐?”

“바람? 바람이야 내가 바람인 걸! 이번엔 마라가 따라올 차례야! 사냥은 졌어도 경주는 안 져! 적토, 가자!”


사핀은 적토를 불러내며 을러댔다.

하지만 마라는 사핀과와 달리 어른.

그리고 어른은 놀 때는 놀더라도 자기 할 일은 반드시 해낸다.


“갈 땐 가더라도 사냥감은 가지고 가야지. 이번 부족은 우리 말곤 사냥꾼 노릇 할 만한 아누가 별로 없어. 자, 네 적토 뒤에도 저것들 실어라.”

“쳇! 그럼 달릴 수가 없잖아!”


사핀은 투덜거리면서도 검은 사슴들을 적토 뒤에 실었다.

하긴 사핀이야 노는 기분으로 사냥했지만, 이들은 원래 놀기 위해 나온 게 아니다.

어디까지나 부족의 정기적인 식량 공급을 위해 일하러 나온 거다.


아누가 남을 위해 일하다니, 정말 안 어울리는 일이다.

사핀은 ‘성년식’만 끝나면 당장 떠날 생각이었다.


해는 어느덧 서편에 노을을 드리웠다.

붉은 노을이 구름을 진홍빛으로 물들였다.

아직 파란 하늘과 붉은 하늘이 겹쳐 기이한 분위기를 띠었다.

이 흉폭하기만 한 초원에서 유일하게 평화로운 시간이다.


짐승도, 마수도, 아누도 모두 석양을 보며 경배하는 시간.


두 명의 아누는 사냥감을 영마 뒤에 진 채 석양 반대편으로 걷는다.

이제 부족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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