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 아재로드_넷

나는 지금 여기 선데이 마켓

by ki




# 갈까 말까



자고 일어나니 또 치앙마이입니다. 아침마다 깜짝깜짝 놀랍니다.

집이 아닌 곳, 그곳에서의 아침은 마치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날 아침 같습니다.

마냥 어색하고 무척 이상한 느낌입니다.

어색해도 학교는 가야 하듯,

이상해도 치앙마이를 살아야 합니다. 왔으니까. 나는 지금 여기니까.


오늘은 치앙마이의 일요일, 치앙마이 선데이 마켓이 열리는 날입니다.

딱히 볼 것도, 살 것도 없지만 안 가면 왠지 안될 것 같은 것이 이곳 치앙마이 일요일의 느낌입니다.

압박이기도 합니다.


선데이마켓은 4시에서 5시 사이 햇살이 좀 만만해지고 상인들이 하나둘 모이는 그 시간이 베스트입니다.

6시가 지나기 시작하면 그곳은 더 이상 치앙마이가 아닙니다.

그곳은 그냥 퇴근시간 충무로역 같은 곳이 됩니다. 그냥 앞사람 뒤통수만 보고 앞으로 전진 전진하는, 생각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는 곳이 됩니다.


여하튼 아침이니까

커피 한잔

샌드위치 한 접시

책 한 권




# 일단 두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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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들 사이에서 나름 유명한 치앙마이 블루 누들,

이 앞을 몇 번이나 지나갔었지만 이곳이 이곳인지 몰랐습니다.

이상하게 맛집이라고 하면 거부감부터 느껴지는 이 맛대가리 없는 성격은 언젠가는 꼭 고치고 싶습니다.

여하튼 알고 보니 이곳 블루 누들은 선데이 마켓이 열리는 중심, 여기서부터 선데이마켓을 시작해봅니다.


오기 전 살짝 검색해 보니 이게 맛있다, 저게 맛있다, 이건 이 맛이다, 저건 저 맛이다.

막상 시키려니 아무 기억도 안 나고 어느 블로거가 적어 놓은 "양이 적으니 두 개는 먹어야 한다"만 기억!

그래서 일단 두 개를 시킵니다.

역시 음식은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라 맛집 정보는 그냥 참고사항인 것 같습니다.

제 취향은 "양이 참 적으니 세 개는 먹아야 한다"입니다.



# 선데이마켓에 가면


도저히 손이 안 가는 예쁜 핀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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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사야 할 것 같은 비누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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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샀다가 아직도 안 쓰는 아로마 오일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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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은 사고 결코 매지 않는 가방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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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것도 아닌데 저걸 어떻게 가져가나 걱정을 부르는 꽃등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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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암 맛있게 맛없겠는 아이스케키도 있다!



# 100미터의 반복


사실 그러합니다. 이런 것들이 백 미터 정도로 계속 반복됩니다.

그 물건이 그 물건이고, 그 집이 그 집이고, 그게 그거인 것들의 반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길을 시작부터 끝까지 멈추지 않고 직진, 또 직진합니다.

아마도 더 새로운 것이 있겠지, 아마도 더 신기한 것이 있겠지, 그렇게 끝까지 갑니다.

우리들 인생처럼, 충무로역 퇴근하는 사람들처럼...

다들 알면서도, 더 새로운 내일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 샛길


단언컨대! 그 길이 만리가 되어도 만 번의 반복일 뿐일 것입니다.

앞서 가는 사람의 뒤통수에서 눈을 돌려 메인 도로에서 잠시 옆을 보면 수많은 샛길들이 보입니다

인적이 드문 길, 저 길에도 뭐가 있을까 싶은 길, 그런 샛길들이 보입니다.


솔직히 그 길은 의심스러운 길, 다리만 더 아플 것 같은 길, 시간만 낭비일 것 같은 길, 역시 후회할 것 같은 길...

또 한번 단언컨대! 그런 길엔 만 번의 반복 속에서는 절대 만날 수 없는 색다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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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라 몰라


멀쩡한 회사를 버리고, 좀 더 현실적으로 말하면 멀쩡한 월급을 버리고,

내 생의 샛길을 걷고 있습니다. 심지어 나이도 심상치 않은 아재의 신분으로 메인에서 눈을 돌렸습니다.

샛길을 걸으며 새것을 찾고 싶었습니다.

없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후회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정말 그러면 하늘이 무너질테고, 두 다리가 후들거릴 것입니다.

다시 제자리로 돌이킬 수도 없고, 생은 뻔히 고달파질 것입니다.

아마도, 아마도, 그렇게 될 확률이 큽니다.

그래도, 그래도, 나는 좀 더 걸어 봐야겠습니다.

이 샛길이 그냥 샛길로 끝나는지,

이 샛길이 메인으로 다시 통하는지,

이 샛길이 또 다른 샛길을 소개해주는지,

나는 이 샛길의 끝이 궁금해 죽겠습니다.


젊은것들에게, 꽉 막힌 메인 도로에 목매는 젊은것들에게 조심스럽게 제안해 봅니다.


"같이 걸을래? 샛길!"




2010년 1월 어느 날 @chiangm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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