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내 구덩이야
‘이건 내 구덩이야.’
그림책 <구덩이>를 만나보면 이 구절이 나온다. 자신이 파 놓은 구덩이 안에서 아이가 읖조리는 장면이다. 이 그림책의 제일 핵심 장면이 아닐까. 아이는 구덩이 안에서 여유를 담은 미소로 앉아있다.
세 번째 책을 위한 원고를 보내고 편집장께 피드백을 받고, 내가 파 놓은 구덩이 안에 한달 정도 들어가 있었다. 피드백을 펼쳐 본 순간 아득해지고, 덜컥 겁이 났다. 그리고 다시 덮고, 한쪽으로 밀어두었다. 첫 번째, 두 번째 책 작업할 때도 편집장님으로부터 오는 메일을 중요한 시험을 보고 합격발표 기다리는 마음으로 두근두근 긴장하며 열어보고는 빠르게 휘리릭 훓어보고 덮어버렸다. 심장에 공기를 불어놓고 차분하게 신중하게 마주해야 했다.
이 많은 걸 언제 다 수정하지... 슬쩍슬쩍 넘기며 보는데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도 있고, 많은 양에 겁이 났다. 그래도 작업을 해야하니 그 이후로 평소와 같이 매일 아침 5시 10분에 일어나 책상에 앉아있긴 했지만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이 상황이 답답하고, 화가 났다.
‘기숙아, 왜 헤매고 있어? 뭐가 불편하니?’
마음이 묻는다. 하지만 뭐라고 명확하게 얘기할 수가 없었다. 스스로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머리로, 마음으로 수용이 되야 움직일 수 있었다. 그렇게 원고 수정은 더디게 진행되고, 구덩이 안에 있다가 일상생활을 겨우 유지할 수 있는 기본적인 생활만 하고 다시 들어갔다. 이런 모습은 나의 삶에서 거의 처음 펼쳐치는 장면이었다.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해서 아이 돌보고, 온라인 수업이 있으면 하고.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구덩이 안으로. 그 안에서 우울감과 무기력을 느끼며 앉아 있었다.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내가 스스로 해야한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일어설 힘이 없었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는 내담자들에게 일어나서 움직이라고 말했던 나를 자책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너무 우울하고, 무기력한 내담자들은 머리로 다 알고 있지만 할 힘이 없다고 했다. 이제 그들의 마음이 좀 더 나에게 가까이 닿았다.
‘숨을 쉬는 것 자체만으로도 잘하고 있어요.’
그들은 숨쉬는 것 만으로도, 그래도 회사나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것 만으로도 엄청난 에너지를 내고 있었던 것을. 그제서야 나를 보며 내담자의 마음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럼에도 다행인건 ‘나 지금 무기력하구나, 우울감이 있구나, 구덩이에 들어가 있구나.’를 인지하고 있었다.
한 달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 우연히 유투브에서 우울과 관련된 영상을 보게 되었다. 무기력감과 우울감, 그 이유가 뇌의 전두엽이 활성화되지 않아서였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늘 내담자들에게 침이 마르도록 했던 이야기를 내가 듣게 되니 아이러니 했지만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맞고 번쩍, 번개가 쳤던 것이다. 그리고 나를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되었다.
‘한 달이나 무기력하고 우울했네.’
‘겨우 한 달밖에 안헀네. 괜찮아.’
두 마음이 나에게 말했다. 나는 뒤의 말을 선택했다.
‘겨우 한 달이네. 이 정도야 뭐.’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그때서야 창가로 스며드는 바람을 느낄 수 있었고, 나를 밖으로 이끌었다. 음악을 들으며,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고, 주위를 살펴보니 밖은 그대로였다. 하늘도 그대로, 싱그러운 초록도 그대도였다.
내 안의 나도 그대로였다. 잠시 머물러 있던 것이라고, 숨고르기가 필요했던 것이라고 속삭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