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제의 대학 생활은 그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도전적이었다. 첫 학기, 그는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듯 과중한 학업 부담을 떠안았다. 정치학, 경제학, 역사, 그리고 법학 개론까지. 하루 24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도서관에서 밤을 새우는 일은 일상이 되었고, 주말에도 그의 책상은 늘 펼쳐진 책들로 가득했다.
이런 승제의 모습은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교수들은 그의 열정과 통찰력 있는 질문들을 높이 평가했고, 동급생들은 그의 학업에 대한 헌신을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런 관심이 항상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일부 학생들 사이에서는 그가 전형적인 "Asian nerd"라는 속삭임이 돌기 시작했다.
승제는 이런 시선들을 의식하면서도 자신의 길을 고수했다. 그에게 학업은 단순한 성적 경쟁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꿈을 향한 첫걸음이자, 광주에서 한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밤늦게까지 공부하다 지친 눈을 비빌 때마다, 그는 광주의 그날을 떠올렸다. 그 기억은 그를 다시 책상 앞으로 돌려보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첫 학기가 끝나갈 무렵, 승제의 성적표는 그의 노력을 증명하듯 모든 과목에서 최고 점수를 기록했다. 학과 사무실에서는 그를 학장 명예 목록에 올리겠다는 통보가 왔다. 부모님께 이 소식을 전했을 때,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어머니의 흐느낌에 승제의 마음은 뜨거워졌다.
그러나 이런 성공의 이면에는 깊은 고독이 자리 잡고 있었다. 승제는 자신이 캠퍼스에서 진정한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학업에 모든 시간을 투자하다 보니, 사회생활을 등한시한 것이다. 도서관과 강의실을 오가는 일상에서, 그는 점점 더 고립되어 갔다.
이런 고립감은 특히 주말이면 더 강하게 다가왔다. 다른 학생들이 파티를 즐기거나 데이트하러 나갈 때, 승제는 혼자 기숙사 방에 틀어박혀 책을 읽곤 했다. 가끔 창밖으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그는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때마다 고개를 저으며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2학년이 되자 승제는 법학부로 전공을 결정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정의를 위해 싸우는 변호사가 되겠다는 꿈이 자리 잡고 있었다. 법학 수업들은 그의 열정을 더욱 자극했다. 특히 헌법과 인권법 강의는 그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승제는 종종 수업이 끝난 후에도 교수를 붙잡고 토론을 이어갔다.
이런 승제의 모습은 법학부 내에서 그를 돋보이게 했다. 교수들은 그를 "장래가 촉망되는 법조인"이라 평가했고, 동기들 사이에서도 그의 명성이 퍼져나갔다. 하지만 이런 관심은 양날의 검이었다. 일부 학생들은 승제를 경쟁자로 여기기 시작했고, 그의 뒤에서 "교수들에게 알랑거린다"라는 식의 험담을 하기도 했다.
승제는 이런 시선들을 의식하면서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갔다. 그에게는 더 큰 목표가 있었다. 바로 소수자와 약자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것. 그는 자신이 겪은 차별과 편견의 경험을 바탕으로, 언젠가는 이 사회를 더 정의롭고 평등한 곳으로 만들고 싶었다.
3학년이 되자 승제는 학생회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이력서를 채우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점차 그 활동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했다. 특히 소수자 학생들의 권리 향상을 위한 위원회 활동은 그에게 큰 보람을 주었다. 승제는 이 활동을 통해 한국과 미국에서의 경험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활동이 늘어날수록, 승제는 새로운 딜레마에 직면했다. 학업과 학생회 활동 사이에서 시간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처음으로 그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기 어렵다는 것을 실감했다. 밤을 새워가며 과제를 하고, 낮에는 학생회 회의에 참석하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승제의 얼굴에는 피로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다.
이 시기, 승제는 처음으로 극심한 번아웃에 짓눌리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침, 그는 알람 소리를 듣고도 일어날 수 없었다. 온몸이 납덩이처럼 무거웠고, 머릿속은 안개로 가득 찬 듯했다. 그날 하루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승제는 처음으로 자신의 한계를 실감했다.
이 사건은 승제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는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며 달려온 지난 시간. 그 과정에서 놓친 것은 없었을까? 승제는 처음으로 그동안의 삶의 방식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런 고민 속에서 승제는 상담센터를 찾았다.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결국 용기를 내어 문을 두드렸다. 상담사와의 대화는 그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 완벽주의적 성향, 과도한 책임감, 그리고 그 이면에 숨겨진 불안감. 승제는 마침내 한 걸음 물러서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상담을 통해 승제는 '모델 마이너리티'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아시아계 이민자들에게 씌워진 이 굴레가 어떻게 그들을 압박하고 제한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승제는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이 틀에 맞추려 노력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깨달음은 승제에게 새로운 도전 과제를 안겼다. 어떻게 하면 사회의 기대와 자신의 욕구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모범적인 소수자'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아를 찾을 수 있을까? 이 질문들은 승제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졌다.
4학년이 되자 승제는 로스쿨 진학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LSAT 시험 준비와 함께, 그는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로스쿨 지원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다. 광주에서의 기억, 이민자로 사는 삶, 그리고 대학에서의 성장과 고민. 이 모든 것을 글로 옮기는 과정은 그에게 또 다른 자기성찰의 기회가 되었다.
에세이를 쓰면서 승제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더욱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그는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경계에 선 존재였다. 이 애매한 위치가 때로는 그를 괴롭혔지만, 동시에 그에게 독특한 시각을 제공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승제는 이 '경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지 않기로 했다.
로스쿨 지원 과정은 승제에게 또 다른 도전이었다. 최고의 로스쿨들을 목표로 했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한계와 마주하기도 했다. LSAT 점수가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았을 때, 승제는 깊은 좌절감을 느꼈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이번에는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완벽할 필요는 없다는 것, 실패도 성장의 과정이라는 것을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졸업을 앞두고 승제는 자신의 대학 생활을 돌아보았다. 수많은 밤을 도서관에서 보냈고, 끝없는 과제와 시험에 시달렸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많은 것을 배웠다. 학문적 지식뿐만 아니라, 자신과 세상에 대한 이해도 깊어졌다. 처음으로 승제는 자신의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게 되었다.
졸업식 날, 승제는 가운을 입고 단상에 올랐다. 우등생 대표 연설을 맡은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 속에는 기쁨도, 슬픔도, 고난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우리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Chapter를 시작합니다. 그 여정에서 우리가 배운 것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연설을 마치고 내려오는 승제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관중석에 앉아 있는 부모님의 모습이 보였다. 아버지의 굵은 눈물과 어머니의 자랑스러운 미소. 그 순간 승제는 깨달았다. 자신의 성공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부모님의 희생, 교수님들의 가르침, 친구들의 지지, 그리고 광주에서 희생된 이들의 정신까지.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는 것을.
졸업 후, 승제는 뉴욕의 한 로펌에서 인턴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이는 로스쿨 입학 전 실무 경험을 쌓기 위한 선택이었다. 대형 로펌의 분주한 일상은 그에게 새로운 도전이었다. 복잡한 법률 문서를 검토하고, 변호사들의 재판 준비를 돕는 과정에서 승제는 법조계의 현실을 직접 목격했다.
이 기간에 승제는 자신의 꿈과 현실 사이의 틈을 느꼈다. 대학에서 배운 이상적인 법 정신과 실제 법조계의 현실은 때로 너무나 달랐다. 특히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일이 대부분인 로펌의 업무는 그의 원래 꿈과는 거리가 있었다. 약자와 소수자를 위해 싸우겠다던 초심이 흔들리는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경험 속에서도 승제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프로보노(pro bono) 활동에 참여하면서 그는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갔다. 이민자 권리 보호, 차별 피해자 지원 등의 활동을 통해 승제는 법이 실제로 사회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다.
인턴 생활 중 승제는 한 사건을 통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 불법 체류자 신분인 한국인 가정의 추방 위기 사건이었다. 그 가정의 이야기를 들으며 승제는 자신의 가족을 떠올렸다. 만약 부모님이 합법적으로 미국에 오지 못했다면, 자신의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 사건을 계기로 승제는 이민법에 특별한 관심을 두게 되었다.
로스쿨 입학이 다가오면서 승제의 마음은 다시 한번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하버드, 예일, 스탠퍼드 등 최고의 로스쿨에 지원했지만, 결과는 기대만큼 좋지 않았다. 몇 군데에서 대기자 명단에 올랐을 뿐, 확실한 합격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승제는 처음으로 자기 능력에 대해 깊은 의구심을 느꼈다.
이 시기에 승제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더욱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그동안 '모범적인 소수자'로 살아오면서, 어쩌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사로잡혀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친 것은 아닐까? 이런 고민 속에서 승제는 다시 한번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결국 승제는 콜롬비아 로스쿨에 입학하게 되었다. 비록 처음 목표했던 학교는 아니었지만, 이 또한 값진 기회라고 생각했다. 입학식 날, 승제는 새로운 다짐을 했다. 이제부터는 남의 기대에 맞추려 하기보다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살아가기로. 그리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진정으로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법조인이 되기로.
로스쿨 생활은 승제의 예상을 뛰어넘는 도전의 연속이었다. 첫 학기부터 그는 엄청난 학업 부담에 직면했다. 하루에도 수백 페이지의 판례를 읽어야 했고, 끊임없는 에세이와 발표 준비에 시달렸다. 이전의 승제라면 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려 했겠지만, 이제 그는 다른 접근법을 택했다.
무엇보다 승제는 동료들과의 협력을 중요시했다.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서로의 지식을 공유하고, 어려운 개념들을 함께 토론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동료들의 시각을 접하게 되었고, 이는 그의 법적 사고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다.
2학년이 되자 승제는 로스쿨의 법률 클리닉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그는 실제 의뢰인들을 만나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특히 이민자들의 법률문제를 다루는 클리닉에서 활동하며, 승제는 법률 지식을 살려 그들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이 시기에 승제는 중요한 사건에 참여하게 되었다. 불법 체류 상태인 어느 한국인 가정이 추방 위기에 처한 사건이었다. 이 가정의 아이들은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불법 체류 신분 때문에 부모가 추방당할 위기에 놓여 있었다. 승제는 이 사건에 모든 열정을 쏟아부었다. 밤을 새워가며 관련 판례들을 연구하고, 변호 전략을 세웠다.
재판 과정은 힘들었지만, 결국 승제와 그의 팀은 이 가정이 미국에 남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판사는 아이들의 교육권과 가족 결합의 중요성을 인정했다. 승소 소식을 들었을 때, 승제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이것이 바로 자신이 꿈꾸던 법조인의 모습이었다.
이 경험은 승제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법은 단순한 규칙의 집합이 아니라,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자신과 같은 이민자 출신 법조인이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승제는 이를 계기로 이민법 전문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로스쿨 마지막 학년, 승제는 뉴욕시의 Legal Aid Society에서 인턴십을 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그는 저소득층과 소수자들을 위한 법률 지원 활동에 참여했다. 복잡한 관료주의와 부족한 자원 속에서도 열정적으로 일하는 변호사들의 모습은 그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졸업을 앞두고 승제는 자신의 진로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대형 로펌의 화려한 제안들도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승제는 이민자들과 소수자들을 위해 일하는 비영리 단체에 지원하기로 결심했다. 급여는 적겠지만, 이것이야말로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라고 확신했다.
로스쿨 졸업식 날, 승제는 가운을 입고 단상에 올랐다. 우수 졸업생 대표 연설을 맡은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이제 법조인으로서의 첫걸음을 내딛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받은 이 특권은 동시에 큰 책임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 지식과 힘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단순히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약자와 소외된 이들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법은 정의를 실현하는 도구입니다. 우리가 모두 그 도구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법조인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연설을 마친 후, 승제는 객석에 앉아 있는 부모님을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굳건한 눈빛과 어머니의 따뜻한 미소. 그 순간 승제는 깨달았다. 자신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부모님의 희생 덕분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제는 자신이 그 희생에 보답하고, 더 나아가 다른 이들을 위해 헌신할 차례라는 것을.
졸업 후 승제는 뉴욕의 한 이민자 권리 보호 단체에 취직했다. 그의 일상은 바쁘고 힘들었다. 복잡한 이민법 사건을 다루고, 의뢰인들의 절박한 상황과 마주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승제는 이 일에서 깊은 보람을 느꼈다. 자신의 노력으로 한 가정이 함께 있을 수 있게 되고, 한 개인이 새로운 삶의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을 볼 때마다 그의 가슴은 뜨거워졌다.
그러나 이런 보람 있는 일상에서도 승제의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공허함이 있었다. 미국에서의 성공이란 과연 무엇인가? 자신은 정말 이곳에 속해 있는 것인가? 이런 질문들이 그의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특히 한국계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 문제는 그를 계속해서 고민하게 했다.
어느 날 밤, 승제는 오랜만에 일기를 꺼내 들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써온 일기장들이 책상 위에 쌓여 있었다. 페이지를 넘기며 그는 자신의 여정을 돌아보았다. 광주에서의 아픈 기억, 이민자로서의 어려움, 학창 시절의 고민, 그리고 법조인이 되기까지의 과정. 모든 것이 그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어왔다.
승제는 펜을 들어 새로운 페이지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길을 찾고 있다. 완벽한 Korean-American이 된다는 것, 혹은 모범적인 소수자가 된다는 것. 이제 나는 그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내가 무엇을 위해 삶을 이어가는가이다. 나는 광주의 기억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한국계 미국인 변호사이다. 나의 존재 자체가 하나의 다리이다. 문화와 문화 사이의, 과거와 현재 사이의, 그리고 절망과 희망 사이의 다리. 이제 나는 그 다리를 더 튼튼하게 만들어갈 것이다."
펜을 내려놓은 승제의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그는 창밖으로 보이는 뉴욕의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쏟아지는 별들 사이로 광주의 하늘이 겹쳐 보이는 듯했다. 승제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내일은 또 다른 도전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는 두렵지 않았다. 자신의 정체성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 기억을 힘으로 삼아 앞으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음을 승제는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승제는 평소보다 일찍 사무실에 도착했다. 책상 위에는 처리해야 할 새로운 사건 파일들이 쌓여 있었다. 그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한국에서 유학을 온 학생이 비자 문제로 추방 위기에 처한 사건이었다. 승제의 눈빛이 흔들리며, 자신의 과거가 그 순간 오버랩되는 듯한 불안한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서류를 꼼꼼히 검토하면서 승제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 이 학생을 돕는 것은 단순히 법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그것은 한 젊은이의 꿈과 미래를 지키는 일이었다. 승제는 결심했다. 이 사건에 모든 노력을 다하기로.
점심시간, 승제는 의뢰인과의 미팅을 위해 근처 카페로 향했다. 젊은 학생의 눈에는 불안과 희망이 교차하고 있었다. 승제는 차분히 상황을 설명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했다. 학생의 표정이 점차 밝아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승제는 가슴 한편에서 뜨거운 감정이 고조되는 것을 느꼈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승제의 발걸음은 평소보다 가벼웠다. 그는 문득 자신이 지금 서 있는 이 거리가 얼마나 많은 이민자의 꿈과 절망을 품고 있는지 생각했다. 그들의 이야기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승제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그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그들의 목소리가 되어 주겠다고.
사무실에서 저녁 늦게까지 남아 일하던 승제는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옥상으로 올라갔다. 뉴욕의 밤하늘은 언제나처럼 별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승제의 눈에는 광주의 별들이 떠올랐다. 그 시절의 고통과 아픔,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난 희망까지. 모든 것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다음 날, 승제는 법정에 섰다. 젊은 학생의 비자 문제를 다루는 재판이었다. 승제는 침착하게 변론을 이어갔다. 그의 목소리에는 확신과 열정이 담겨 있었다. 판사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승제는 희망을 보았다.
재판이 끝나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승제는 의뢰인과 그의 가족들을 위로했다. 그들의 불안한 눈빛을 마주하며 승제는 자신의 역할이 단순히 법률적 조언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선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그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존재이기도 했다.
며칠 후, 승소 소식이 전해졌다. 학생은 학업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소식을 전하는 승제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의뢰인 가족들의 감사 인사를 받으며 승제는 다시 한번 자신의 소명을 확인했다. 이것이 바로 자신이 법조인이 된 이유였다.
그날 밤, 승제는 오랜만에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의 따뜻한 목소리를 들으며 그는 지금까지의 여정을 이야기했다. 힘들었던 순간들, 기쁨의 순간들, 그리고 앞으로의 꿈까지. 어머니는 묵묵히 들어주셨다. 전화를 끊으며 승제는 가슴 깊은 곳에서 평온함을 느꼈다.
주말에 승제는 퀸즈의 한인 커뮤니티 센터를 찾았다. 그곳에서 그는 무료 법률 상담 봉사를 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며 승제는 자신의 역할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조언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승제는 자신도 성장하고 있음을 느꼈다.
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승제는 문득 길가의 한 가게에 들렀다. 그곳은 그의 부모님이 처음 미국에 와서 일했던 곳과 비슷한 작은 식료품점이었다. 가게 안을 둘러보며 승제는 부모님의 희생과 노력을 떠올렸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서 있는 이 자리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집에 도착한 승제는 책장에서 오래된 앨범을 꺼내 들었다. 광주에서의 마지막 날 찍은 가족사진부터 대학 졸업식 사진까지. 페이지를 넘기며 승제는 자신의 여정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 새로운 사진을 끼워 넣었다. 얼마 전 승소한 사건의 의뢰인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앨범을 덮으며 승제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뉴욕의 밤하늘에는 여전히 별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승제의 마음속에는 수많은 별이 빛나고 있었다. 광주의 별, 퀸즈의 별,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가 만나고 있는 모든 이들의 별들. 승제는 미소 지었다. 내일은 또 어떤 별들을 만나게 될지 기대되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승제는 다시 한번 일기장을 펼쳤다. 펜을 들어 오늘의 감정을 정리했다.
"나는 아직도 경계에 서 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이 경계에 선 것이 나의 강점이라는 것을. 나는 이 자리에서 다리가 되어, 서로 다른 세계를 연결하고 있다. 때로는 흔들리고 힘들지만, 이것이 바로 내가 해야 할 일이다. 광주에서 시작된 나의 여정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리고 나는 이 여정을 계속해서 이어갈 것이다."
펜을 내려놓은 승제의 얼굴에는 평온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그는 이제 자신의 정체성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Korean-American으로서, 이민자로서, 그리고 인권 변호사로서. 모든 것이 그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어왔고, 앞으로도 그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갈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승제는 새로운 하루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오늘도 그는 수많은 도전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의 마음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길을 찾았고, 그 길을 걸어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광주에서 시작된 그의 여정은 이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