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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파 Oct 18. 2024

피와 눈물의 유산

1980년 5월 18일, 광주의 아침은 평소와 다름없이 밝아왔다. 하지만 이날의 먹구름은 곧 도시를 뒤덮을 어둠의 전조에 불과했다. 열다섯 살 김승제의 눈에 비친 광주는 이미 불안과 긴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시내 곳곳에 배치된 계엄군들의 모습도 심상치 않았다. 거리를 메운 군인들의 얼굴에는 경계심이 가득했고, 그들이 든 무기는 살상의 의지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었다.

승제는 등교를 위해 집을 나섰다. 평소라면 친구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걸었을 길이었지만, 이날은 혼자였다.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며칠 전부터 시작된 대학생들의 시위 소식을 듣고 싶었다. 그의 가슴 속에는 막연한 기대와 두려움이 교차했다.

도청 앞 광장에 도착했을 때, 승제의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충격 그 자체였다. 수백 명의 시민이 모여 있었고, 그들 앞에는 무장한 계엄군이 에워싸고 있었다. 공기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순간, 어디선가 외침이 들려왔다.

     

"독재 타도! 민주주의 쟁취!"

     

그 외침과 함께 시위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승제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계엄군은 곧바로 진압에 나섰다. 최루탄이 터지고 군인들의 구둣발에 시민들이 짓밟혔다. 피와 눈물이 뒤섞인 아비규환의 현장. 승제의 귀에는 비명과 총성만이 가득했다.

그 순간, 승제의 눈에 한 청년이 들어왔다. 스무 살 남짓해 보이는 그 청년은 군인들의 폭력에 맞서 당당히 맞섰다. 그의 눈에는 두려움 대신 결연한 의지가 빛났다. 승제는 그 청년의 모습에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갑자기 들려온 총성과 함께 청년이 쓰러졌다. 붉은 피가 아스팔트를 물들였다.

승제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이 믿기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이 알던 세상은 이런 곳이 아니었다. 정의와 평화를 지켜야 할 군인들이 어째서 무고한 시민들을 향해 총을 겨누는 것인가.

승제는 그 자리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주변에서는 계속해서 비명과 총성이 들려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옷에 피가 묻어 있었다. 쓰러진 청년의 피였다. 구토감이 올라왔지만 참았다. 이대로 있다가는 자신도 위험할 것 같았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집으로 달렸다.

집에 도착했을 때, 승제의 어머니는 걱정으로 가득 찬 얼굴로 그를 맞았다. 아들의 옷에 묻은 피를 보고 어머니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승제는 그제야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어머니의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그날 밤, 승제의 가족은 밤늦도록 잠들지 못했다. 창밖으로 들려오는 총성과 비명에 모두가 불안에 떨었다.

다음 날, 아버지가 가족회의를 소집했다.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승제의 아버지는 미국에 있는 친척과 연락을 취해 이민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승제는 아버지의 말에 반박하고 싶었다. 이 나라를, 이 도시를 떠난다는 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 하지만 어제의 경험이 그의 입을 다물게 했다.

이민 준비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계엄군의 눈을 피해 은밀하게 모든 것을 정리해야 했다. 집과 가게를 팔고,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족 모두가 극도의 긴장 상태에 놓였다. 승제는 이 모든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평범했던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떠나기 전날 밤, 승제는 몰래 집을 빠져나왔다. 평소 자주 가던 공원으로 향했다. 어둠 속에서 광주의 밤거리를 걸으며 승제는 이 도시와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친구들과 뛰어놀던 학교 운동장, 가족과 소풍 갔던 무등산, 그리고 친구들과 손잡고 걸었던 충장로. 모든 것이 그의 기억 속으로 스며들었다.

공원에 도착한 승제는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들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 아래에서는 여전히 총성이 울리고 있었다. 승제의 마음속에는 분노와 슬픔,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 뒤섞였다. 이곳을 떠나는 것이 옳은 결정일까? 언젠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새벽녘, 승제는 집으로 돌아왔다. 부모님은 그의 부재를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짐을 싸며 승제는 자신의 일기장을 발견했다. 펼쳐보니 5월 17일 자 일기가 눈에 들어왔다.

      

"내일은 평화로운 하루가 되길."

      

그 소박한 바람이 이렇게 무참히 짓밟힐 줄은 꿈에도 몰랐다. 승제는 일기장을 가방 깊숙이 넣었다. 이것은 그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유일한 끈이 될 것이다.

1980년 6월 초, 승제의 가족은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창밖으로 보이는 한국의 모습이 점점 작아졌다. 승제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그것은 슬픔의 눈물이자, 분노의 눈물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새로운 시작에 대한 두려움의 눈물이었다.

     

뉴욕 JFK 공항에 도착했을 때, 승제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높은 건물들과 복잡한 거리, 그리고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웠다. 하지만 동시에 이곳에서는 더 이상 총성을 듣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도 들었다.

뉴욕시 퀸즈의 한인 타운에 자리 잡은 승제의 가족. 작은 아파트였지만 그들에겐 새로운 삶의 시작점이었다. 아버지는 친척의 소개로 세탁소에서 일을 시작했고, 어머니는 식품점에서 일하게 되었다. 승제는 현지 고등학교에 편입했다.

학교생활은 쉽지 않았다. 언어의 장벽이 가장 큰 문제였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 말씀을 알아듣기 힘들었고,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도 어려웠다. 승제는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매 순간 느껴야 했다.

점심시간, 승제는 혼자 구석에 앉아 도시락을 먹곤 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김치 냄새가 주변 학생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들의 시선이 불편했지만, 승제에게 그 김치는 고향의 맛이자 위안이었다.

     

"Hey, chink! What's that smell?"

      

어느 날, 한 백인 학생이 승제에게 다가와 비웃었다. 승제는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그 톤에서 모욕감을 느꼈다. 주먹을 꽉 쥐었지만, 참았다. 이곳에서 싸움을 벌이면 모든 것이 끝날 것 같았다.

그날 밤, 승제는 베개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광주에서의 기억, 낯선 미국에서의 외로움, 그리고 학교에서 겪은 차별. 모든 것이 그를 압도했다. 하지만 동시에 이를 악물었다. 반드시 이곳에서 성공해야 한다. 그것만이 광주에서 희생된 이들의 넋을 위로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승제는 조금씩 미국 생활에 적응했다. 영어 실력이 늘면서 수업을 이해하는 것도 수월해졌고, 몇몇 친구들도 사귀게 되었다. 특히 같은 처지의 한인 2세들과 가까워졌다. 그들과 함께 있을 때면 승제는 잠시나마 고향에 있는 듯한 편안함을 느꼈다.

하지만 광주의 기억은 여전히 그를 괴롭혔다. 밤마다 악몽을 꾸었다. 쓰러진 청년의 모습, 계엄군의 총성, 피로 물든 거리. 그 모든 것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승제는 이런 모습을 부모님께 들키지 않으려 애썼다. 이미 힘든 이민 생활을 하고 계신 부모님께 더 이상의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 승제는 미국 역사 수업에서 민권 운동에 대해 배웠다. Martin Luther King Jr.의 연설을 들으며 승제는 가슴이 뛰었다. 그의 "I have a dream" 연설은 승제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인종과 피부색에 관계없이 모든 이가 평등한 사회. 그것은 광주 시민들이 꿈꾸던 세상과 다르지 않았다.

이 수업을 계기로 승제는 역사와 정치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도서관에서 관련 서적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미국의 독립 전쟁부터 남북 전쟁, 그리고 20세기의 양차 세계 대전까지. 역사 속에서 승제는 인간의 위대함과 동시에 잔인함을 보았다. 그리고 그 모든 전쟁과 갈등의 이면에는 정의와 자유를 향한 인간의 열망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승제의 변화는 학업 성적으로 이어졌다. 특히 역사와 사회 과목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선생님들은 그의 날카로운 통찰력과 분석력에 감탄했다. 승제는 수업 중 토론에서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했다. 때로는 서툰 영어로 더듬거리기도 했지만, 그의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승제의 모습이 모든 이에게 환영받은 것은 아니었다. 일부 학생들은 여전히 그를 '외국인'으로 취급했고, 그의 성공을 시기했다. 특히 이전에 승제를 괴롭혔던 백인 학생들은 더욱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냈다.

어느 날, 방과 후 승제가 학교를 나서는데 일부 학생들이 그를 둘러쌌다. 그들의 눈빛에서 승제는 위험을 감지했다. 도망갈까 생각했지만, 이번만큼은 맞서 싸우기로 했다. 첫 주먹이 날아왔을 때, 승제의 머릿속에는 광주에서 본 그 청년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싸움은 순식간에 끝났다. 승제는 코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패배의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당당함이 묻어났다. 그 모습에 가해 학생들은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들은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다.

이 사건 이후 학교 분위기가 미묘하게 변했다. 승제에 대한 노골적인 괴롭힘은 줄어들었다. 오히려 그의 용기에 감명받은 학생들이 하나둘 다가오기 시작했다. 승제는 처음으로 미국 학교에서 진정한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가정에서의 삶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부모님의 노력으로 가게를 열게 되었고,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부모님의 끊임없는 노동과 희생이 있었다. 승제는 그런 부모님을 보면 가슴이 아팠다. 그럴 때마다 그는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주말이 되면 승제는 어김없이 부모님의 가게로 향했다. 부모님을 돕기 위해 시작한 아르바이트였지만, 어느새 그 일은 승제의 일상이 되었다. 손님들을 상대하면서 영어 실력도 늘고, 미국 사회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때로는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듣기도 했지만, 승제는 그때마다 침착하게 대응했다. 그의 차분하고 성숙한 태도에 일부 손님들은 괜스레 미안한 마음을 내비쳤다.

     

고등학교 3학년, 승제는 대학 진학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목표는 명문 대학 진학이었다. 낮에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밤에는 가게 일을 도우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주말에는 도서관에서 밤을 새우기도 했다. 그 과정은 고되었지만, 승제의 눈빛은 점점 더 강인해져 갔다.

대학 입시 에세이를 쓰기 위해 고민하던 승제는 문득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일기장을 펼쳤다. 낡은 페이지들 사이에서, 잊고 지냈던 기억들이 조용히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광주에서의 마지막 날 쓴 일기를 읽으며 그는 지난 3년을 되돌아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깨달았다. 승제는 광주에서의 경험과 미국에서의 삶이 자신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솔직하게 썼다.

에세이를 읽은 담임 선생님은 눈시울을 붉혔다. 선생님은 승제에게 말했다.

      

"너의 이야기는 단순한 개인의 경험을 넘어서는 것 같구나. 이것은 우리 시대의 아픔과 희망을 동시에 보여주는 증언이야."

      

그 말을 들은 승제의 가슴에는 뜨거운 무언가가 솟구쳤다.

마침내 대학 입시 결과가 나왔다. 승제는 자신이 꿈꾸던 명문 대학에 합격했다. 합격 통지서를 받아 들고 승제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기쁨의 눈물이자, 지난 3년간의 고난을 이겨낸 안도의 눈물이었다. 그리고 광주에서 희생된 이들을 향한 다짐의 눈물이기도 했다.

부모님은 승제의 합격 소식에 기뻐하셨다. 하지만 동시에 걱정도 하셨다. 비싼 등록금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그리고 맨해튼에 있는 대학 기숙사로 떠나는 아들이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승제는 부모님을 안심시켰다. 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그리고 열심히 공부해서 반드시 성공하겠다고 약속했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 마지막 여름, 승제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광주를 찾아 5.18 민주화운동의 중심지였던 도청 광장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승제는 오랫동안 머물렀다. 희생자들이 쓰러졌던 거리를 걸으며 그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여러분의 꿈을 이어받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미국으로의 귀국을 앞두고 승제는 무등산에 올랐다. 정상에서 바라본 광주의 전경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3년 전 그날의 비극이 마치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승제는 알고 있었다. 이 평화로운 풍경 뒤에 숨겨진 아픔과 눈물을.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난 희망의 씨앗을.

버스에 오르며 승제는 다시 한번 광주를 돌아보았다. 이제 그의 앞에는 새로운 도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학에서의 삶, 그리고 그 너머의 미래. 승제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광주의 정신을 잊지 않겠다고. 그리고 언젠가는 이곳으로 돌아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이바지하겠다고.

     

뉴욕으로 돌아온 승제는 대학 생활을 준비하며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기숙사에 짐을 옮기고, 수강 신청을 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에는 설렘과 결의가 가득했다.

입학식 날, 승제는 캠퍼스를 걸으며 자신의 위치를 되새겼다. 광주에서 뉴욕으로, 그리고 이제 이 대학으로. 그의 여정은 계속되고 있었다. 승제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이곳에서 배운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언젠가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이 되겠다고.

대학 첫 수업은 정치학 개론이었다. 교수는 학생들에게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승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의 머릿속에는 광주의 거리, 퀸즈의 이민자 공동체, 그리고 지금 이 대학 캠퍼스가 교차했다. 그는 천천히 손을 들어 그의 생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정의는······."

      

승제의 목소리가 강의실에 울려 퍼졌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지난 3년간의 경험과 고민이 담겨 있었다. 동료 학생들과 교수는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 순간, 승제는 느꼈다. 자신이 올바른 길 위에 서 있다는 것을.

수업이 끝나고 나오는 길에 몇몇 학생들이 승제에게 다가왔다. 그들은 승제의 이야기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더 많은 것을 듣고 싶다고 했다. 승제는 미소 지었다. 이것이 바로 자신이 꿈꾸던 대학 생활의 시작이었다.

그날 밤, 기숙사 방에서 승제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캠퍼스의 불빛들이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는 일기장을 꺼내 새로운 페이지를 펼쳤다. 펜을 들고 잠시 고민하다 첫 문장을 썼다.

     

"오늘, 나는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다."

      

승제의 눈에서는 결연한 의지가 빛났다. 그의 앞에는 아직 써 내려가야 할 많은 이야기가 남아있었다. 광주에서 시작된 그의 여정은 이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여정의 끝에는 어떤 모습의 자신이 서 있을지, 승제는 가슴 뛰는 마음으로 상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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