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현재를 살아가라

by 은파

“언제나 현재에 집중하기만 한다면

틀림없이 행복할 것이다.”

– 파울로 코엘료



우리는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고 있다. 마치 지평선을 향해 달리는 여행자처럼, 목표에 가까워질수록 그것은 더욱 멀어져간다. 현대사회는 이런 끝없는 추격전을 우리에게 강요한다. 눈부신 기술의 발전, 끊임없이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살인적인 경쟁은 우리의 시선을 현재에서 미래로 옮긴다.

스마트폰의 알림음이 끊임없이 울리고, 이메일은 쉴 새 없이 쌓이며, 소셜 미디어는 우리의 주의를 산산조각 낸다. 이런 환경 속에서 우리는 한순간도 제대로 머무르지 못한다. 늘 다음을 생각하고, 다음을 준비하며, 다음을 걱정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토록 바라던 '다음'이 오면, 우리는 또 다른 '다음'을 향해 달려간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이 마치 미덕인 양 여겨지는 시대다. 좋은 대학을 위해 청춘을, 승진을 위해 일상을, 은퇴 후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포기한다. 하지만 그렇게 도달한 미래는 결코 우리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던 순간에 도달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현재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오직 이 순간뿐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우리가 숨 쉬고, 느끼고, 생각하고,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은 오직 '지금 여기'뿐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이 단순한 진리를 잊은 채 살아간다. 현재의 순간을 충만하게 누리는 대신, 끊임없이 미래의 허상을 좇는다.

특히 현대인들은 '지금'을 살아내는 법을 잊어가고 있다.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 식사 시간에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도 사진 찍기에 바쁘다. 우리는 순간을 기록하는 데는 열중하면서, 정작 그 순간을 온전히 경험하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현재로 돌아올 수 있을까? 먼저 미래를 향한 맹목적인 질주를 멈춰야 한다. 물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현재의 희생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현재를 충실히 살아내지 못한다면, 그토록 바라던 미래도 결국 공허할 수밖에 없다.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머무는 연습이 필요하다. 차 한 잔을 마실 때는 그 향과 맛에 집중하고, 사랑하는 이와 대화할 때는 그 목소리와 표정에 마음을 다해 귀 기울여야 한다. 일상의 작은 순간들을 깊이 있게 경험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결국 삶은 현재라는 물줄기를 따라 흐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흐름 속에서 최선을 다해 지금을 살아내는 것뿐이다. 오늘을 충실히 살아낼 때, 내일은 자연스럽게 그 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현재에 깊이 뿌리 내린 나무가 더 튼튼한 미래의 열매를 맺듯이, 지금 순간에 충실할 때 우리의 미래도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시간이란 무엇인가? 하이데거는 이 오래된 물음에 새로운 빛을 던진다. 그에게 시간은 단순히 시곗바늘의 움직임이나 달력의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근원적 구조이며, 우리의 실존을 가능하게 하는 지평이다. 마치 강물이 흐르면서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듯, 인간도 시간 속에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펼쳐나간다.

하이데거의 시간 이해는 우리의 일상적 시간 개념을 완전히 뒤흔든다. 우리는 보통 시간을 '지금'의 연속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하이데거에 따르면, 인간의 시간은 단순한 '지금'의 나열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현재-미래가 서로 얽혀 있는 복잡한 그물망이며, 특히 미래를 향한 열린 가능성이 그 핵심을 이룬다.

우리는 왜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 존재인가? 그것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가능성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봄날의 씨앗이 꽃을 향해 자라나듯, 우리도 끊임없이 자신의 가능성을 향해 나아간다. 비록 우리가 과거로부터 왔고 현재를 살아가지만, 우리의 진정한 존재 방식은 미래를 향한 끊임없는 초월에 있다.

과거는 우리에게 이해의 지평을 제공한다. 마치 산이 우리의 시야를 규정하듯, 과거의 경험과 기억은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렌즈가 된다. 우리는 이 지평 위에서 현재를 해석하고 미래를 계획한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가 과거에 갇혀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과거는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발판이 된다.

그러나 이 여정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그것은 바로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이데거는 인간을 '죽음을 향한 존재'로 규정한다. 이는 비관적 선언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실존적 자유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다. 죽음을 의식할 때 비로소 우리는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매 순간을 더욱 충실히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간 이해는 우리에게 중요한 실천적 함의를 제공한다. 우리는 과거에 매몰되거나 미래에 대한 공허한 기대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대신 현재의 순간을 온전히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미래를 향한 가능성에 열려 있어야 한다. 이것이 하이데거가 말하는 '본래적 실존'의 길이다.

결국 시간은 우리 존재의 무대이자 의미의 원천이다. 우리는 시간 속에서 살아가며, 동시에 시간을 통해 자신의 존재 의미를 실현해 간다. 유한한 시간 속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꿈꾸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의 실존적 운명이자 위대함일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을 충실하게 살아가라

우리는 시간이라는 거대한 물레방아 속에서 끊임없이 돌아간다. 지나간 날들의 후회와 미처 오지 않은 날들의 불안 사이에서 표류하며, 정작 지금의 의미를 놓치고 있다. 과거의 그림자는 우리를 짓누르고, 미래의 안개는 우리의 시야를 가린다. 그러나 삶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고 산다.

왜 우리는 현재를 온전히 살아내지 못하는 걸까? 아마도 과거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채 우리 안에 깊이 박혀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놓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마치 깊은 바다의 물결처럼,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걱정이 우리의 의식을 덮쳐온다. 그 속에서 우리는 현재라는 소중한 진주를 놓치고 만다.

그러나 이런 삶의 방식은 우리를 진정한 행복에서 더욱 멀어지게 한다. 과거에 발목이 잡혀 있는 동안, 또는 미래의 불안에 시달리는 동안, 우리 앞에 펼쳐진 현재의 순간들은 물처럼 흘러가 버린다. 마치 모래시계의 모래알처럼,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이 빠르게 지나가 버리는 것이다.

현재에 온전히 머무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생각의 파도와 감정의 소용돌이가 우리의 주의를 흩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지혜로운 방법들이 있다.

먼저 마음 챙김의 수행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명상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모든 경험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태도를 말한다. 마치 맑은 거울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비추듯,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판단 없이 바라보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현재의 순간에 더욱 깊이 뿌리내릴 수 있다.

두 번째는 삶의 단순화다. 현대인의 삶은 너무나 복잡하고 분주하다. 끊임없는 일정, 쏟아지는 정보, 수많은 유혹이 우리의 주의를 흩트린다. 이런 상황에서는 과감한 정리가 필요하다.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고, 정말 중요한 것들에만 집중할 때 우리는 현재에 더 깊이 머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규칙적인 명상의 실천이 도움이 된다.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모든 것을 멈추고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이는 마치 잠시 멈춰 선 시계처럼, 우리에게 현재의 순간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현재에 깊이 머무를 때, 시간은 다른 차원으로 확장된다. 과거의 무게와 미래의 불안을 내려놓고, 오직 현재에만 집중할 때 우리는 특별한 평화를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순간들이 모여 진정한 행복을 이루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결국 삶의 의미는 관계 속에서 완성된다. 우리는 누군가의 자녀이자 부모이며, 친구이자 동료이고, 이웃이다. 이러한 관계들이 의미 있게 되는 것은 바로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다. 과거를 반성하되 거기에 매몰되지 않고, 미래를 준비하되 불안에 휩싸이지 않으며, 현재를 온전히 살아내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찾아야 할 진정한 삶의 지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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