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와 분열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우리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인지도

by sweet little kitty

지난해 말, 틱톡에 올라온 영상을 통해 불거진 인종혐오사건이 있었습니다. COVID-19 이후로 인종차별을 넘어 인종혐오범죄 등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서늘해지는 사건들이 많았는데, 팬데믹은 끝나가지만 '혐오'는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인류는 진화하면서 몸에 해로운 것을 기피하도록 학습되어 왔다. 아프지 않거나 병에 걸리지 않기 위한 생존반응인 셈인데 이를 전문용어로는 '혐오학습'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것이 미각에 대한 혐오학습이다. 소수 인종이나 민족, 성 소수자에 대한 혐오도 낯선 사람이나 이방인을 경계하던 적응 반응에서 기원한다고 이해된다. 내가 모르는 타인은 우선 기피하고 배제하는 것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혐오범죄는 혐오에 얽힌 두려움의 심리가 특정 집단에 투사되면서 위험과 해로움을 증폭시키고, 분노와 증오로 발전하며 급기야는 마녀 사냥으로까지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미국의 법철학자인 마사 누스바움은 이러한 현상을 '투사적 혐오'라고 불렀다.

-김재원, <밥보다 진심> 중에서


대상관계이론가이자 최초로 놀이치료라는 개념을 도입한 아동심리학자 멜라니 클라인은, 갓 태어난 아기에게 파괴적 죽음의 본능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어린아이의 마음이 하얀 캔버스처럼 순수하고 맑을 것이라는 기대를 산산조각 내는 동심파괴적 이론입니다.


아기에게 세상은 좋음/나쁨으로 이분화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이는 좋은 곳 또는 나쁜 곳에 자신을 자리매김해야 합니다. 클라인은 자리(posit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아기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설명했습니다. 1)


클라인에 의하면 아기는 태어날 때부터 공격성과 파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기는 자기 본능에 의해 소멸될 공포를 느껴 이를 외부 대상에 옮겨 놓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현실이 아닌 아기의 환상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악한 것이 내 안에 있다면 도망갈 수 없지만 외부에 있다면 도망갈 수 있기에 덜 위험하게 됩니다. 타고난 본능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아기는 외부에 나쁜 대상을 만들어내고, 그 대상이 나를 괴롭힌다고 생각하고 파괴하고자 합니다. 편집-분열자리라고 합니다.


신생아는 엄마라는 전체대상을 인지하지 못합니다. 대신 먹을 것을 주는 젖가슴이라는 부분 대상을 인지합니다. 아기가 배고픔을 느낄 때, 고통스럽습니다. 그 느낌을 어찌할 수 없어 나쁜 젖가슴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고, 그래서 파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배가 부르고 기분이 좋을 땐 좋은 젖가슴이라고 생각합니다. 분유를 먹는 경우엔 분유병, 또는 분유를 주는 양육자의 손을 부분대상으로 느낄 것입니다.

틱톡 영상 속 가해자도 처음 본 동양인을 그저 북한의 악명 높은 지도자와 닮은 존재로만 인식할 뿐, 그들이 미국 사회에서 살아가며 같은 문화를 누리고 있는 독립된 '사람' 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편집 분열자리의 개념에서 가장 중요한 <분리, splitting>라는 방어기제입니다. 1) 생아의 정서적 평정을 위해 동원된 방어기제지만, 성인들의 편 가르기 문화는 여기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릅니다.


편집-분열자리와 대비되는 position은 우울자리입니다. 자신의 공격성에 의해 타인이 파괴되었다고 느낄 때 우리는 후회하고, 우울해합니다. 좋은 엄마도 나쁜 엄마도 하나의 엄마라면, 나쁜 엄마를 파괴했을 때 좋은 엄마도 파괴되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울음에 반응해 주고, 필요한 것을 제공해 주는 보통의 아를 경험한 아기는 편집-분열 자리를 극복하고 우울자리로 옮겨 갈 수 있게 됩니다. 1) 기가 배고플 때 첫 울음소리는 짜증 섞인 날카로움이지만, 울 때마다 누군가 달려와 내 불편감을 알아주고 해결해 주면 아기는 타인과 세상을 신뢰하게 됩니다. 이후의 울음소리는 엄마를 부르는, 공격성이 순화된 울음이 됩니다. 즉 처음에는 엄마를 좋은 엄마, 나쁜 엄마로 이분해서 인식하지만 결국 그것이 하나의 엄마임을 깨닫고 통합해 가는 것입니다.


두 개의 자리는 평생을 두고 자리매김하여 반복되지만, 보통의 성인은 편집-분열자리에 놓였다가도 우울자리로 곧 옮겨가므로 괜찮습니다. 그러나 정신 병리가 깊은 사람은 편집-분열자리의 경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현실 검증능력이 부족한 어린 시절에 일어났던 환상 속 믿음입니다.


오늘날의 혐오는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요? 소수자는 정말로 혐오받아야 마땅한 존재인 걸까요? 문명이 발달하고 인간을 넘어서는 AI를 꿈꾸는 2023년에도, 어떤 사람들은 갓난아기 시절의 환상 속에 머물러 비극을 초래하곤 합니다. '세상은 흑백이고 내가 괴롭다면 악한 타인이 날 괴롭히기 때문'이라고. 그 유아적 믿음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은 보통의 육아임을, 평범하고 따뜻한 사랑의 힘을 믿어봅니다.


인용한 책>

1. 최영민, <대상관계 이론을 중심으로 쉽게 쓴 정신분석이론>,2010, 학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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