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연예인이 <금쪽 상담소>에서 아버지에 대한 사연을 이야기했습니다. 연예인 A 씨의 아버지는 외도로 가족들을 힘들게 했으며 이혼 후 부모역할을 하지 않았습니다. 서로는 연락하는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A 씨가 데뷔 후 유명해지자, 아버지는 A 씨에게 자식 도리를 하지 않는다며 심한 비난을 하고 소속사 앞에 가서 시위를 하겠다며 협박했습니다.
그러던 아버지가 어느 날 A 씨의 촬영과 관계된 지역에 가서 하루를 보내자고 제안했습니다. 그곳은 아버지의 고향이었습니다. A 씨는 생애 처음으로 다정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고 아버지는 함께 데려온 누군가를 소개했습니다. A 씨는 난생처음 보는 아버지의 모습에 마음을 열었으나, 아버지는 그날 이후 A 씨의 유명세를 이용해 투자자를 모아 200억 가량의 돈을 횡령했습니다. 결국 사기죄로 수감된 아버지는 염치없게도 A 씨에게 손 편지를 써서 억대의 보석금을 부탁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처음 받아본 장문의 편지였습니다. 자신의 필요에 따라 얼굴을 바꾸며 극단을 오가는 아버지의 모습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인간은 성적 본능을 넘어서 관계를 추구한다고 주장한 대상관계 이론 전문가 페어베언(Fairbairn, 1889-1964)은 부차적 자아라는 개념을 도입하였습니다.
부차적 자아란 원래의 중심 자아(원래 나 자신)만으로 살아갈 수 없게 만드는 또 다른 나입니다. 본래는 중심 자아가 나를 지탱해야 하는데, 부차적 자아가 너무 커지면 나를 갉아먹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자아가 나뉜 이유는 사랑하는 대상이 애증의 요소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아이의 욕구에 잘 반응해 주고 순조로운 양육을 한다면 아이는 소소한 좌절이 있어도 엄마에게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유지합니다. 그런데 엄마가 어떠한 연유로 아이를 지나치게 비난하거나 상처를 준 경우, 아이는 잠들 무렵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아까 내가 그 말을 해서 엄마가 화를 낸 걸까?"
"난 잘하는 게 없어서 엄마가 날 부끄러워하는 것 같아."
"어떻게 하면 엄마가 날 좋아하고 웃어줄까?"
물론 모든 부모는 아이를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키웁니다. 그러나 해결되지 못한 부모 자신의 욕구나 결핍이 절실한 경우, 부모는 어른이면서도 때로 어린 시절의 틀로 아이를 대하게 됩니다. 이때 부모가 A 씨의 아버지처럼 극단적으로 양면적 모습을 보이면, 아이는 엄마를 좋은 (나를 사랑해 줄 것 같은) 엄마와 나쁜(나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엄마로 나누게 됩니다. 나를 사랑해 줄 것 같은 엄마도 포기할 수 없고, 나를 아프게 하는 엄마도 소화해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페어베언은 아이가 바라보는 양가적인 모습의 엄마를 흥분시키는 대상, 거절하는 대상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좌절을 견딜 수 없어서, 아이의 마음도나뉩니다.좋은 엄마를 대하는 마음과 나쁜 엄마를 대하는 마음은 주변부에 자리 잡게 되고, 좌절과 상처가 지속될 경우 그 마음은 점점 커집니다. 이를 부차적 자아라 하고, 각각 리비도 자아, 반리비도 자아라고 부릅니다. 페어베언의 리비도는 프로이트의 성적 욕구를 넘어 관계를 맺고자 하는 넓은 의미의 욕구입니다.
리비도 자아의 역할은 사랑을 줄 것 같은 대상으로부터 사랑을 얻어내는 것입니다. 반면 반리비도 자아의 역할은 나를 거절하는 대상으로부터 방어하거나, 대상을 개조 또는 파괴하는 것입니다. 1) 중심자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장해 가지만, 부차적 자아는 상처받은 그 시절에 머물러 있게 됩니다.
개조라는 말은 사람에게 쓰기 적절하지 않지만, 반리비도 자아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는 적당한 표현입니다. 아이는 성숙한 성인처럼 내 마음을 언어로 표현하고 요구해서 변화를 시도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상처받은 아이는 상대방이 어떻게든 나를 사랑하도록, 혹은 나를 공격하지 않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집착적인 행동을 보이게 됩니다.
A 씨는 아버지를 용서했던 그날이 너무 싫고 다시 돌아가서 용서를 취소하고 싶다며 울었습니다. 자신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딱 한 번 다정했던 모순된 아버지. 그러나 이제라도 아버지에게 사랑받고 싶었던 그녀의 마음을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요. 이제 그녀는 반리비도 자아가 우세해져 리비도 자아를 극단적으로 부인하고 후회합니다.
저 역시 아버지를 미워하며 그렇게 아파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제 마음은 두 가지로 쪼개졌습니다. 아버지를 비난하며 벌주고 싶은 마음과, 아버지를 용서해야 한다는 상반되는 마음이었지요. 금쪽상담소의 A씨도 용서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나의 상담사 선생님은 오은영 선생님과 비슷한 말을 해 주었습니다.
용서는 가장 나중 일이고, 용서하지 않아도 돼요. 다만 아버지가 얼마나 잘못했는지를 따지기보다, 그때 내 마음을 돌아보고 다독여 줘야 해요.
잘못은 상대가 했는데, 왜 내가 변해야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아버지를 비난하고 스스로 잘못을 깨우치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을 통해 아버지가 변화하길 바랐는데, 이미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였기에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미술시간에 아이가 쓰고 난 팔레트를 씻어냅니다. 물티슈로 닦아낼 수도 있지만, 싱크대의 물을 틀어 흘려보냅니다. 물과 물감은 함께 뒤엉켜 흘러내려갑니다. 문득 작은 깨달음이 옵니다.
저 역시 사랑받고 싶었던 간절한 바람, 미움받고 싶지 않았던 절실한 마음을 충분히 느끼고 보듬은 후 흘려보내고 싶습니다. 물과 가지각색의 물감이 뒤엉켜 흑색이 될지라도 언젠가는 흘러가도록, 그래서 팔레트의 하얀 공간을 넉넉히 확보한 중심 자아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참고한 책
1) 최영민, <대상관계 이론을 중심으로 쉽게 쓴 정신분석이론> 중 9장 'Fairbairn의 대상관계이론', 학지사,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