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새대가리'라는 욕이 나와서 놀라셨죠? 하지만 새에게 '새대가리'라고 하는 건 모욕적인 말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여러 반려동물이 있지만 저희 집은 작은 앵무새 한 마리를 키우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지금 시작하려고 합니다.
정약용이 유배 중에 작은아들 정학유가 닭을 기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런 글을 썼다.
"네가 양계한다고 들었는데 양계란 참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일에도 품위 있는 것과 비천한 것, 맑은 것과 더러운 것의 차이가 있다…. (중략)... 또 때로는 닭의 정경을 시로 지어보면서 짐승들의 실태를 파악해 보아야 하니, 이것이야말로 책을 읽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양계다…. (중략)..."
닭을 키우면서 '시'를 쓸 것을 이야기한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왜 글을 쓰라고 했을까? 글 쓰는 행위는 자세한 대상의 관찰을 동반한다. 관찰과 경험이 성찰과 통찰이 되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그 대상을 더 잘 알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아들에게 <계경(鷄經)>, 즉 '닭의 경전'이라 풀이할 수 있는 책을 지어보라고까지 권한다. 아들이 실제 '<계경>'을 짓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아들에게 이야기한 이유는 글쓰기를 통한 관찰의 힘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옛 조상들의 글을 보면 진지한 사유의 글뿐만 아니라 취미의 대상을 글 쓰는 소재로 활용하기도 했다. 육우라는 사람은 차를 소재로 '다경(茶經)'을 지었고, 이옥은 보잘것없는 담배를 소재로' 연경(煙經)'을 지었다. 경서에나 붙이는 '經'을 책 제목으로 붙였으니 얼마나 그 대상을 좋아했는지 느껴진다. 글을 쓰다 보면 대상을 바라보는 사랑스러운 시선이 글에 스며들게 되고 더 자세히 보게 된다. 그래서 나도 우리 집 최애 반려동물 앵무새를 키우며 느낀 점을 글로 써보고자 한다.
조선시대 이서구가 앵무새를 키우며 말을 가르쳤는데 할 줄 모르자 '네가 말을 하지 않으니, 까마귀와 무엇이 다르냐'라고 푸념하다 스친 생각이 있어 <녹앵무경>이라는 책을 지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박지원이 서문까지 써주었지만 <녹앵무경>이라는 책은 전하지 않는다. 앵무새의 모양과 생태 등이 기록되어 있으리라 추정만 하고 있다.
'옳거니 그럼 내가 <앵무경>을 써볼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지만 어찌 감히 그 위치를 탐낼 수 있을까. 이서구라는 훌륭한 학자가 쓴 관찰과 통찰력에 눈곱만큼도 따라가지 못하겠지만 앵무새를 키우며 느낀 감상만큼은 조금이나마 비슷한 부분이 있지 않을까기대해 본다. 사랑과 정성으로 돌본 생명체를 대하는 태도나 마음은 서로 통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새대가리'라고 무시는 비속어의 주인공인 '새'와 동고동락하는 새집사다! 반려동물과 교감하며 함께 살아가는 가족 이야기가 역사적 사료의 가치는 없지만, 개인적 사료의 가치는 지닐 것이다. 앵순이 추억 기록물 사관역할을 자처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