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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녜 Jul 10. 2024

영화

우리네 인생의 길잡이

중학생 때 처음으로 영화관이라는 좁다란 공간에서 영화를 감상했다. 어둡게 깔린 조명 아래서 수려한 외모의 남녀 주인공이 커다란 영사막을 뚫고 서로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다. 이들의 모습에 나도 흐뭇해하며 미소를 짓는다. 그러나 절정에 다다르자 두 사람은 이윽고 서로에게 이별을 고하며 서로의 안녕을 기원한다. 둘이서 이별을 맞이하는데 내가 괜히 눈물과 콧물을 쏟는다. 장면 하나하나에 고도화된 집중력으로 감정을 이입하니 마치 영화 속에서 내가 투명 인간이 되어 그들과 함께 숨을 쉬는 듯했다. 


  한동안 영화에 매료되었다. 용돈을 차곡차곡 모아 혼자서 영화관을 찾았다. 판타지, 액션, 로맨스, 스릴러, 코믹 등등 장르를 불문하고 영화를 보았다. 거대한 프레임에 갇힌 인물들에게서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던 지혜를 터득했다. 때로는 아무 생각 없이 깔깔 웃으며 암울한 수험생 생활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곤 했다. 비 오는 날에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비를 홀딱 맞으며 집으로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기던 흑역사도 있다.


  어느새 풋풋한 대학생이 되어 작은 영화사의 서포터즈로 활동하며 서울과 대전을 오갔고, 초단편 영화제에서 통역을 맡아 열흘간 슬기로운 서울 살이를 했다. 그곳에서 종합 예술 산업에 몸담고 있는 국내외 관계자들을 인터뷰하며 영화인을 동경하기 시작했다. 한때 시나리오 작가라는 원대한 꿈을 품기도 했다. 그만큼 영화는 생활의 일부였다. 지금은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영화를 함께 보는 것만으로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영화는 세밀하게 현실을 고증하거나 타임머신을 타듯 상상력을 자극하며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 메시지가 가볍든 무겁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면 우리는 잠시라도 생각에 잠겨 스스로에게 혹은 상대방에게 감상평을 남긴다. 영화를 해석하는 의견이 데칼코마니처럼 같거나, 영화를 각자의 삶에 투영해서 그 관점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 영화의 매력이다. 


  사실 무언가에 의해 생각의 꼬리를 무는 것은 쉽지 않다. 사람은 자신의 신념을 떨치는 것을 꺼려 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 설령 그것이 잘못되었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영화는 화려한 색채의 영상 매체라는 특성상 뇌를 자극해서 일말의 여운이라도 남긴다. 2시간 혹은 그 이상의 러닝타임 동안 어둡고 밀폐된 공간에서 영화에만 집중하니 머릿속은 온통 영화로 가득차게 된다. 그러니 영화를 사유하며 토론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영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다. 


  영화는 누군가의 생애를 희로애락으로 압축해서 우리에게 영화 같은 삶을 소망하게 하는 듯하나, 결말을 가감 없이 보여주며 "사실은 삶이 영화보다 아름답고 찬란하다" 라고 말한다. 어쩌면 영화보다 극적인 게 인생이라고. 그래서 한 번뿐인 인생을 후회 없이 살라고 끊임없이 외치는 영화에서 인생을 배운다. '인생 영화'라는 말처럼 영화는 우리네 인생의 길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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