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가 베이글을 만났을 때
우린 제법 잘 어울려요
인간은 참으로 간사하다. 어떤 날에는 주변 사람들에게서 배터리가 급속도로 닳듯 감정이 소모되어 차라리 무인도로 떠나 혼자 있고 싶다가도, 기쁜 소식이 파랑새처럼 찾아오거나 혹은 위로가 필요할 때 주위에 누가 없는지 고개를 돌리며 그렇게 사람에 목이 마른다. 이 같은 사고방식은 인간관계에서만 향유할 수 있는 정서 교류를 갈망하게 한다. 말레이시아 정부 지침으로 락다운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외로움은 벽돌처럼 켜켜이 쌓여갔고, 설렘이라는 낯간지러운 기분을 다시금 느끼고 싶었다.
고독지옥(孤獨地獄)에서 벗어나고 싶어 "옆구리가 시리다"라는 문장을 입에 닳도록 읊던 어느 날, 같은 콘도에 사는 친한 동생은 이런 때일수록 이성 친구가 필요하다며 데이팅 앱 하나를 추천해 주었다. 사실 이 같은 애플리케이션은 이용해 본 적이 없었고 코시국에 온라인으로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자우림의 '일탈'을 흥얼거리며 가볍게 현지인 친구를 만드는 것도 괜찮겠다고 하는 기대가 있었다.
처음에는 외적으로 답답한 상황에서 심적으로 벗어나고 싶어 앱을 실행했다. 그런데 이것에 너무나도 몰입한 나머지 어느새 '완벽한 짝'을 찾으려는 욕망이 불타올랐다. 다시 말해서, 가볍게 시작하려던 것이 의도치 않게 무겁게 변해가던 것이었다. 그렇게 휴대폰만 만지작거렸지만, 호감의 가능성이 1%조차 없는 사람들만 수두룩하여 외롭기는커녕 쓸쓸함만 깊숙이 마음속으로 자리하였다. 더는 시간 낭비인 것 같아서 결국엔 앱의 흔적을 지워버렸다.
그럼에도 고독은 또다시 똑똑똑 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지나간 연인을 연연하며 쓸데없는 감회에 젖게 되다니! 이러한 심정이 코로나 블루인 것 같아 걱정하던 동생의 재차 권유로 어플을 다시 한번 다운로드하였다. 개인정보까지 모두 삭제한 상태가 아니었기에 그동안 프로필에 '좋아요'를 누른 이성의 목록이 꽤나 차 있었다. 휴대폰 주인 대신 손가락을 분주히 움직이던 동생은 흙탕물에서 진주를 발견하듯 내 이름을 연신 부르며 특정한 한 사람을 가리켰다.
처음에는 동생이 짚은 그 사람을 보고 '뭐야?' 했다가 사진 속 환한 미소를 띤 그의 모습에 '어라?' 하더니 한국어를 할 줄 안다는 소개 글을 읽고 (그때는 원어민 수준으로 한국어를 잘한다는 줄 알았다) 나중에는 '어머나!' 하는, 심경의 변화가 눈 깜빡하는 속도로 3단계를 건너갔다. 마침내 누군가를 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것이었다. 그렇게 휴대폰은 제자리로 돌아갔고 이름이 J로 시작하는 그 친구에게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건 단 1초의 순간이었다.
락다운이 부분적으로 풀릴 때까지 약 2주간 한국어와 영어를 번갈아가면서 라이언과 문자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비로소 그를 직접 만나게 된 그날엔 8시간 동안 쉼 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가 통하다 보니 오래간만에 전율이 찌리릿 온몸으로 스쳤다. 수줍게 "다음 주 금요일에도 만날래요?" 하는 라이언의 말에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어도 이미 마음 한편에서는 한껏 신나게 춤을 추고 있었다. 이렇게나 신났던 적이 언제였을까?
그렇게 라이언과의 관계는 몇 달간의 우정을 거쳐 '우리'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은 연인으로 완성되었다. 마치 정성껏 구운 베이글에 갓 내린 커피가 어울리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