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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녜 Oct 11. 2024

데이트

언어를 넘어 진심이 닿는 순간들

‘데이트’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설렌다. 산들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잎처럼 가슴을 간지럽힌다. 특히 첫 데이트가 그렇다. 서로를 알아가는 첫 번째 단계인 첫 데이트. 어색한 공기가 감도는 가운데 서로의 대화가 탁구공처럼 오가고, 탁자에 놓인 커피는 차갑게 식어가지만 끊이지 않는 웃음 속에 분위기는 무르익는다. 어느 정도 서로에게 편안해지기 시작할 때쯤 식사를 하러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상대방의 성향에 따라 면을 숟가락에 돌돌 말아서 먹거나 지글지글 구워지는 삼겹살 소리를 들으며 대화를 이어간다.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사람과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워도 다음을 기약하는 게 데이트의 묘미. 그렇게 두 번째, 세 번째 데이트를 이어가며 ‘something’은 살며시 ‘everything’이 되어간다.


  라이언과의 첫 데이트는 코시국에 락다운이 부분적으로 풀렸을 때였다. 말레이시아 정부에서 한시적으로 이동 제한을 반경 5km에서 10km까지 넓혔다. 그러나 여전히 카페나 식당에서 취식이 금지되었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집순이긴 하지만, 당시에는 이대로 세상 밖을 등지고 영원히 머물러 있을 지박령이 되고 싶진 않았다. 한기가 웃도는 집 안에서 사람의 온기가 그리웠다. 이때 문자로만 대화를 오갔던 라이언이 생각났다. 락다운이 언제 온전히 풀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마침 라이언은 우리 집에서 반경 10km 내에 거주하고 있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여전히 두렵고 지금도 90% 이상 I 성향인 나지만, 그때는 무슨 마음에서였는지 문득 라이언을 우리 집에 초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심스럽게 라이언에게 문자를 보냈다.



  “우리 집에서 밥 먹을래요?”



  결국 이른 점심시간에 그를 맞이했고 우리는 통금 시간이 다가올 때까지 서로 몰랐던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돌이켜 보면 당시 내가 라이언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른 채 그를 집에 초대했던 건 무모하고 위험한 선택이었다. 나중에야 그도 나의 과감한 초대에 깜짝 놀랐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날은 우리에게 웃긴 에피소드 중 하나로 남았다.


  락다운이 풀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카페나 식당에서 식사할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 데이트는 라이언의 단골집에서 짜장면과 비슷한 호키엔미를 호로록 먹었다. 이전보다 긴장이 풀렸다. 밥을 먹고 나서 상큼한 음료를 들고 밤 산책을 하며 첫 데이트보다 더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라이언이 들려준 상대의 바람으로 끝난 지난 연애 이야기를 들으며 그에게 연인이기 전에 먼저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이때 그는 나의 “친구로 편하게 지내보자”라는 말에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고 한다. 몇 달의 우정을 지나 우리는 ‘우리’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은 관계로 자리를 잡았다.





  라이언과 여러 번의 데이트를 하면서 친구들로부터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았다. 바로 '언어'라는 장벽에 대한 것이었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서로 다른 언어로 대화하면서 답답함을 느낀 적이 거의 없었다. 대화의 80%는 영어, 20%는 한국어지만, 영어가 능숙하지 않은 나도 그와 대화할 때 전혀 불편함이 없다. 오히려 우리의 대화는 끊김이 없이 이어졌다. 마음이 통하는 데에는 언어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그의 경청과 한국어로 마음을 전하려는 노력으로 언어의 벽은 허물어져 갔다. 그동안 한국어를 공부해 왔던 라이언은 나를 만나고 나서부터 우리 부모님과 편하게 대화하고 싶다며 이전보다 한국어에 더욱 몰두했다. 그의 한국어는 말하기가 서툴러도 나와 부모님의 말씀을 70% 이상 이해할 만큼 듣기 실력은 단단하다. 나무의 뿌리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천천히 자라듯 그는 내가 무심코 내뱉은 말들을 속으로 되뇌며 스스로 연습해 왔다. 우리가 언어 장벽을 느끼지 않았던 건 그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쌓아온 정성 덕분이었다. 국제 커플에게 있어 대화는 서로를 알아가는 수단 그 이상이라는 것을 그와의 데이트에서 배웠다.


  지금도 주말마다 둘만의 취미인 카페 호핑을 하며 데이트한다. 라이언은 이미 나의 everything이 되었지만, 그와 데이트할 때마다 풋사과를 베어먹듯 심장이 두근거린다. 시간이 지나면 이 감정도 무뎌지겠지만 백발의 할머니가 될 때까지 나의 데이트 상대는 여전히 그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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