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 쌉싸름한 속사정
햇병아리 시절, 바나나는 특별한 날에만 접하는 귀하디 귀한 과일이었다. 겉은 샛노랗고 미끌미끌한데 안은 새하얀 속살에 꿀맛이 더해 반전을 선사하던 바나나. 식탁 위에 놓인 새빨간 소쿠리에 바나나가 가득 차길 바랐던 유년기가 어렴풋이 기억난다. 입안 가득 퍼지던 바나나는 소심했던 나의 유일한 벗이었다.
세월이 흘러 말레이시아에서 생활하고 있는 지금, 이곳에서 바나나는 길거리에서 바나나 나무를 마주해도 감흥 없이 흔하디 흔한 열대 과일이다. 그러나 현지인 사이에서 바나나는 다르게 해석되어 그 의미가 남다르다. 말레이 말레이, 말레이 차이니즈, 말레이 인디로 구성되어 있는 이 나라에서 바나나는 특정인을 가리킨다. 겉모습은 아시아인이지만 “영어로 말한다”라는 이유로 속은 서양화되어 있는 말레이시안을 지칭하는 단어가 바로 '바나나(Banana: Yellow Outside, White Inside)'이다.
말레이시아에서 표준 언어는 말레이 바하사(말레이어)로 지정되어 있으나, 세 인종이 집합된 국가의 특성으로 인종마다 모국어가 다르다. 말레이 말레이는 말레이어를, 말레이 차이니즈는 중국어(혹은 광둥어나 대만어)를, 그리고 말레이 인디는 힌디어(또는 타밀어)를 사용한다. 그중에서 일부는 부모 세대의 언어를 답습하지 않고 영어를 모국어로 습득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라이언은 대만어를 쓰는 아버지와 광둥어가 본국어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말레이 차이니즈이다. 라이언의 부모님은 당신들의 언어가 아닌 영어(사실상 집안에서 사용하는 영어는 순수 영어가 아닌 말레이어가 섞인 망글리시(Manglish: Malay English))로 그를 키우셨다. 라이언에게 일상어는 말레이어도, 광둥어도, 대만어도 아닌 영어지만, 그는 말레이어, 광둥어, 중국어도 모두 유창하다.
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영어로 소통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보호막이 되어야 할 학교에서 라이언은 단지 영어를 구사한다는 이유로 다양한 인종의 친구들에게서 '바나나'로 놀림받아야 했다. 애석하게도 이러한 일은 수두룩하다. 말레이 인디에게도 일어나니 비단 남의 일이 아니다(말레이 인디는 '오레오(Oreo: Brown Outside, White Inside)'라는 단어로 불린다). 언어뿐만 아니라 그들의 생활 반경까지 차별이 비일비재하다. 결국 이들은 말레이시아인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처럼 자국에서 환영받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리고 "동일한 차별이라면 타국가에서 받는 것이 낫겠다."라며 이민을 결정한다.
라이언은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났음에도 외형이 동아시아인이라는 이유로 오랫동안 자국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해 왔다. 심지어 자유 민주주의 국가인 말레이시아에서 극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일부 말레이 중국계 사람들에게도 차별을 받아왔다. 특히 그의 미국식 영어 발음은 말레이 중국계 학생들의 질투를 사 한때 따돌림의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그들과 영어로 이야기할 때마다 발음을 바꿔야 했단다. 운동을 열심히 하고 몸을 키운 이유도 살아남기 위해서였다는 그의 고백에 눈물이 핑 돌았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에서 '에드워드 리' 셰프님을 열렬히 응원하는 라이언의 눈빛에서 그가 셰프님의 삶을 자신의 것과 겹쳐보고 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말레이시아 여권을 가지고 있음에도 자신을 당당히 말레이시안이라 부르지 못하는 그가 안타깝다. 말레이시아에 오기 전에는 그저 달콤했던 바나나가 남편의 속사정을 알고 나니 씁쓸하게 읽힌다.
다행히도 말레이시아에서 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이 점차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바나나'를 주제로 한 영상들이 소셜미디어에 올라오고 있다. 앞서 언급한 상황을 몰랐다면 이 영상들을 단번에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차별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직면하고 나니 영상을 볼 때마다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영상들은 말레이시아의 현실을 신랄하게 밝히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며 젊은 말레이시안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이 나라의 미래에 조금 더 희망을 걸어보고 싶다.
"정체성이란 단순히 태어난 나라나 사용하는 언어에 국한되지 않을 수 있겠다."라는 것을 라이언에게서 깨닫는다. 그보다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는 긴 여행일지도 모른다. 나와 라이언이 함께 이민을 고민하고 우리를 환영해 줄 새로운 나라를 정하는 것도 어쩌면 그 여정의 일환일 것이다. ‘나를 알아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지만, 다양한 문화를 마주하며 그 안에서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