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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견뚜기 Nov 07. 2024

두 번째 10km 대회, 아! 아쉽다(2)

런린이 다이어리 46-2

반대편에서 큰 경적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소리지?'하고 보니, 반대편에서 자전거 한대가 빠르게 달려왔다. 잠시 그 뒤로 앞에 번호표를 단 러너가 따라왔다. '와! 선두주자였다!' 감탄사를 내뱉으며 스마트워치를 봤다. 3.3km를 지난 시점이었다. 내가 3.3km 달리는 동안 선두주자는 무려 7km를 달린 셈이다. 대체 얼마나 빠르게 달린 건지. 대체 사람인가 싶었다. 뒤를 이어 다른 2~3명이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


안양천 체육공원길은 왼쪽에 보행자용 2차선, 오른쪽에 자전거용 2차선이 나있다. 갈 때는 참가자들이 자전거용 도로를 달렸고, 반환점을 돌고서는 보행자용 도로로 달렸다. 오고 가는 러너들이 충돌이 없도록 주최 측에서 동선을 나눠놨다. 5월 대회에서는 오고 가는 러너들이 같은 길에서 달려 다소 위험하게 달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선두주자가 지나간다는 것은 곧이어 반환점을 돈 P과장이 보일 것이라는 사인이다. 반대쪽에서 오는 러너들을 유심히 보면서 달렸다. P과장을 잘 보기 위에 보행자 도로 가깝게 붙었다.


날이 뜨거워서 그런지 갈증이 났다. 침을 모아 삼켜보지만 입이 바짝 말랐다. 지난 대회에서는 2km 지점에서 음료수를 마실 수 있는 구간이 있었는데, 이번 대회는 좀처럼 음료를 마실 수 있는 구간이 나오지 않았다. '대회 규모가 작아서 음료수 구간을 안 만들어놓은 것일까?' 다리가 더 무거워졌다.


다행히 4km 구간이 되니 음료수 테이블이 보였다. 겨우 물컵을 잡아 바짝 마른 입안을 헹궜다. 그리고 한 모금 마실까 고민하다가 뱉었다. 바로 한 모금 마실걸하는 후회가 들었지만, 발걸음을 돌릴 수 없었다. 설마 음료수 마시는 구간이 이게 끝은 아니겠지?


뙤약볕 밑을 계속해서 달렸다. 간간이 보이는 나무의 그늘이 반갑기만 했다. 그냥 반대쪽에서 P과장이 언제 오는지 보면서 달렸다. 조금 지나가 오른쪽 배가 아파왔다. 어제저녁도 가볍게 먹고, 아침에 화장실도 다녀왔고, 준비운동도 했는데 배 근육이 땅겼다. 그래도 참고 달리다 보면 통증이 없어질 것이라 믿고 달렸다.


저 멀리서 하얀 나시티를 입은 러너가 저돌적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P과장이었다. P과장이 가까워지자 '파이팅'을 외쳤다. P과장은 나를 못 봤는지, 내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그래도 반가웠다. P 과장이 보인다는 것은 반환점이 머지않았다는 증거였다. 계속 달렸다. 그리고 오른 배는 계속 아파왔다. 그래서 속도를 조금 줄였다.


배가 아파서 그런지 반환점까지 가는 길이 길었다. 아무리 달려도 반환점이 안 나왔다. 왠지 끝없는 길을 달리는 것 같았다. 다행히 반대쪽에서 오는 러너들이 점점 더 많아졌다. 곧이어 반환점이 보였다. 반환점을 돌고 나니 5km라는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다는 생각이 머리를 채웠다. 배는 아팠고, 호흡도 힘들었다. 걷고 싶었다. 계속 머릿속에서는 걸어야 할 여러 가지 이유가 계속 떠올랐다.


분명히 알고 있었다. 한번 멈추면 다시 꾸준히 달리기 어렵다는 것을. 버틸 때까지 버텨보고자 했다. 하지만 햇빛은 뜨거웠고, 눈앞에는 그늘 한점 없는 길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눈앞에 걸어가는 다른 러너가 보였다. 오른 배는 계속 아파왔다. 결국, 발걸음을 늦춰 걸었다.


두 번째 대회에서는 완주를 하지 못했다. 뭔가 기운이 빠졌다. 목표는 쉬지 않고 달려 전 대회 기록보다 빨리 들어오는 것인데, 걷는 순간 이미 목표 달성은 실패했다. 오른 배가 괜찮아져서 다시 달렸다. 하지만 이미 한번 멈춰서인지 괜히 더 힘들었다. 조금 달리다가 다시 걸었다. 이미 몸은 무거울 대로 무거워졌다.


그래도 다시 힘을 내서 달렸다. 행여나 반대쪽에서 나보다 늦게 달려온 K과장, K 대리를 마주치면 파이팅이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힘을 내보았다. 금방 또 지쳐왔다. 그리고 걸었다. 5월에 삿포로 가면서 산 고글까지 끼고 대회에 나왔는데, 걷는 내 모습이 창피했다. 반대쪽에서 K과장이 오나 찾아봤는데, 안보였다. 그렇게 걷다가 달리다가를 반복하는데 이번에는 반대편에서 달려오던 K 대리가 파이팅을 외쳐줬다. 다행이었다. 그래도 달리고 있을 때 마주쳤다. K과장은 걷다가 놓친 것 같았다.


5km 지점으로 갈 때보다, 올 때가 맞바람이 더 심했다. 힘들어 죽겠는데 맞바람까지. 뙤약볕과 맞바람까지 그나마 언덕길이 없는 게 다행이다 싶었다.


7km 지점에서 음료수 코너가 보였다. 어차피 걸은 것 잠시 멈춰서 음료수로 입을 헹구고 한 모금 마셨다. 살 것 같았다. 다시 달렸다. 슬슬 달린다고 했지만 스마트워치를 보면 의외로 속도는 10.4km/h~10.6km/h였다. 생각보다 빨랐다. 체감상 내 속도가 8km/h~9km/h였는데.


걷고 뛰기를 반복하면서 이미 전 대회와 유사 기록도 포기했다. 한 시간 안에만 들어가자. 아니면 K과장에게 따라 잡히면 K과장과 보조에 맞춰 다시 달려봐야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2km 정도 남았다. 저 멀리 결승점이 보였다. 여기부터는 정말 창피해서 결승전까지 쉬지 않고 달려야겠다 싶었다.


그 2km를 달리면서도 걷고 싶은 유혹이 들었다. 다행히 옆에서 다른 러너가 본인 일행에게 조금만 더 힘내라고, 다 왔다고 응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를 향한 응원은 아니지만, 그래도 힘이 났다. 이를 악물고 달렸다.


결승선이 보였다. 분명 P과장이 먼저 들어와서, 다른 동료들 결승선 통과 모습을 찍겠다고 했다. 어디 있으려나, 두리번거렸다. 어차피 기록을 포기한 채 쉬엄쉬엄 달려서 결승선을 두리번거릴 체력적 여유가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결승선 왼편에 P과장이 보였다. 결승선에 다가가자 P과장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대회전에 결승선을 통과하며 어떤 포즈를 지을지 살짝 고민했었다. 그렇지만 역동적인 포즈를 짓기에는 역시 창피했다. 수줍게 오른손을 들었다 내렸다.

중간에 걸은 것이 창피했는지 고개를 푹 숙이고 가볍게 왼손을 들고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결승선에 도착해서 보니 P과장과 5km를 달린 다른 직원이 있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며 숨을 고르고 있는데, P과장이 56분이라고 했다. 믿을 수 없었다. 이미 1시간은 넘은 줄 알았다.


스마트워치를 보니 56분 46초였다. 정신을 차리고 삼성헬스 기록을 봤다. 반환점 이후 내가 걸었던 횟수는 10회 정도였다. 쉬지 않고 달렸다면 지난 대회와 유사한 기록을 내지 않았을까?


나중에 대회 기록을 확인해 봤다. 56분 52초. 평균 속도는 10.71km/h, 평균 페이스는 km당 5분 41초였다. 전체 10km 참가자 중 257등이었다.

사랑밭 기부런 'Bravo Ur Running'의 기록. 왼쪽이 견뚜기 기록, 오른쪽이 견뚜기의 순위.

10km를 완주했다는 기쁨보다는 중간에 포기하고 걸었다는 사실에 마음도 무거웠다. 그와 동시에 후반부에 중간중간 걸었는데 1시간 내 기록인 것이 황당했다. 그래도 10km 완주했다고 메달은 받았다.


곧이어 10km를 처음 도전한 K 과장, K 대리가 결승선에 들어오는 모습을 보았다. 죽을만치 힘들지만 해냈다는 기쁨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부러웠다. K과장과는 불과 7분 차이 났다. 정말 따라 잡힐 뻔했다.

함께 대회를 참가한 회사 동료들과 결승선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왼쪽) 그리고 10km 완주 메달을 들어보이는 견뚜기(오른쪽)


야심 차게 신청한 두 번째 대회.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P 과장과 다음 대회는 내년 상반기로 약속했다. 겨울에 다시 체력을 다져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헤어졌다.


뒷맛 참 씁쓸했다. 분했다. 나 자신한테 졌다는 사실에.

그래도 이번에 실패했다고 내 달리기가 다 망가진 것은 아니다. 다음에는 더 철저하게 잘 준비하면 된다.

이번 대회가 마지막 대회가 아니다. 앞으로도 달릴 대회는 더 많다.

대회를 망쳤다는 분함이 다음 대회 준비를 잘해보자는 의욕에 불을 붙였다.

그래! 다시 달려보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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