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도 오래 뛸 수 있다

런린이 다이어리 2

by 견뚜기

막상 뛰기 시작하니 쉽지 않다. 모든 운동이 그렇듯이 몸이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뛰기 시작하니 몸과 마음이 비명을 질러댔다.


러닝 머신에서 뛰는 건 자신이 없었다. 러닝 머신에서 맘 잡고 30분 걷는 것조차 지겹고 힘들었었다. 그래서 집근처 일산호수공원에서 뛰기 시작했다. 그래도 밖에서 뛰면 주변 경치나 사람들 보고 뛰면 뛸만할 것 같았다.


비장한 각오를 하고 뛰기 시작했다. 처음 뛰는 거니 슬슬 뛰어볼까? 지금 생각해 보면 10km/h~11km/h로 뛴 것 같다. 얼마나 지났을까? 사실 얼마 지나지 않았다. 200m? 300m? 숨이 차오른다. 숨이 차오르니 앞뒤로 스윙하는 팔이 무거운 것 같고, 앞 정강이가 당겨왔다. 결국 50m도 더 못 가서 걸었다. 솔직히 200m 좀 더 뛰고 포기했던 것 같다.


그래! 걷기라도 하자!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걸었지만, 내 옆을 지나쳐가는 러너들의 뒷모습을 보며 쓴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부러웠다. 나는 왜 이렇게 못 뛸까?라는 생각에 기운이 빠진다.


그렇게 5분을 걸었을까? 왠지 운동이 되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래도 굵은 땀방울이라도 흘려야 할 텐데, 땀이 나질 않는다. 그래서 다시 뛰었다. '그래, 저기 커브가 시작되는 곳까지만 뛰어보자!'. 그런데, 눈대중으로 200m~300m 거리가 되어 보였는데, 뛰기 시작하니 표지판이 도무지 가까워지지 않는다. '이 거리가 이렇게 먼 거리였나?'라고 생각하며 그래도 꾸역 꾸역 달렸다. 그러나 또 숨이 차올라, 걸었다.


그 후로 몇 주간은 주말 아침 호수공원에 가서 뛰다가 걷다가를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오래 뛰는 날이 올까?', '나도 러너들처럼 오랫동안 잘 뛰고 싶다', '뛰면서 무슨 생각을 해야 안 지겨울까?' 등 잘 뛰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게다가 달리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릿속에서 악마와 천사가 치열하게 싸우는 상상을 한다. 오른쪽 귀 옆에선 붉은 모습을 을 한 악마가, 왼쪽 귀 옆에선 하얀 모습을 한 천사가 서로 내 귀에 대고 유혹한다. 악마는 "힘들지? 왜 고생을 사서해? 걸어! 걷고 싶지? 걸어도 돼~"라고 속삭인다. 반면 왼쪽 귀에서는 천사가 "아니야! 아니야! 자신에게 지지 마. 넌 할 수 있어. 이건 운동하는 거잖아"라며 악을 쓰지만, 어느 순간 악마의 속삭임에 천사의 외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대체 왜 악마는 오른쪽에서, 천사는 왼쪽에서 떠드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결국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가 걸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냈다. 그러다가 장거리 달리기의 진입 장벽을 넘게 된 계기가 생겼다.


첫 번째, 코어 근육을 만들었다. 달리기에 관한 책들을 보면 스트레칭과 함께 코어 운동 가이드가 포함되어 있는 책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달리기를 하는데 웬 코어 운동? 뛰면서 코어 운동이 같이 되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실제로 코어 운동의 효과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달리기를 하기 몇 달 전부터 필라테스를 배워왔다. 필라테스를 안 해본 사람들은 필라테스가 스트레칭 위주의 운동으로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필라테스는 골반-복근-가슴으로 이어지는 코어 박스를 단련해, 바른 자세를 만들고, 몸의 세세한 근육을 사용하게 함으로써 몸에 대한 컨트롤 능력을 기르는 운동이다.


달리기에 대한 로망은 그전에도 있었다. 그래서 여러 번 시도를 했었었다. 필라테스를 하기 전에는 달리기 시작하면 다리 근육부터 비명을 질렀다. 종아리 근육부터 피로가 밀려오며, 근육통이 시작되며 , 달리기에 대한 의욕을 꺾곤 했다. 필라테스를 반년 정도 배웠을 무렵, 코로나로 필라테스도 잠시 쉬게되어, 달리기를 다시 도전했다. 그런데 하체에 피로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달리면서도 어라? 이렇게 하체가 편했었나? 라며 의아했었다. 코어 근육이 형성되니, 다리 근육에 걸리는 부하가 크게 줄어든 것 같았다. 즉, 코어 근육을 만들면서, 달리기의 큰 장벽이었던 다리 근육의 비명을 잠재울 수 있었다.


두 번째, 저속 달리기로 거리를 조금씩 늘렸다. 잘 뛰고 싶어 고민하던 어느 날, 필라테스 선생님이 코칭을 해줬다.

"천천히 뛰어보세요. 8km/h로 호수공원 한 바퀴 뛰어보세요. 그것도 큰 운동이 됩니다."

8km/h면 매우 빨리 걷는 속도였다. 걸으면 빠르지만, 뛰면 느린 속도다.

사실 처음엔 반신반의했다. 천천히 뛰는 게 운동이 될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다양한 운동을 했던 선생님의 조언이니 한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달렸다. 체감상 속도는 7km/h~8km/h였던 것 같다.(당시에는 스마트 워치를 쓰지 않았다. 다만 기억을 더듬어 체감 속도를 짐작해 보았다.)


답답한 마음을 꾹 꾹 누르면서 천천히 뛰었다. 속도가 안 나니 몸에 부담이 없었다. 즉, 뛰는 와중에 근육통이 없었고, 속도가 느리니 호흡도 편했다. 다만, 마음이 답답했다. 조금 더 빨리 뛰고 싶은 마음을 애써 참아야 했다. 그렇게 첫날은 1km만 뛰고 나머지는 걸었다. 일산호수공원의 또 다른 좋은 점은 1km마다 표지판이 서있다는 것이다. 특이하게도 0.9km, 1.9km, 2.9km, 3.9km, 4.9km 표지판이 있어서, 내가 어느 정도 거리를 뛰었는지 굳이 따로 안재도 알 수 있었다. 첫날인 2022년 3월 27일 1km, 속도 7.6km/h. 뛸만했다. 속도가 7.6km/h면 빠른 걸음보다 살짝 빠른 속도로 뛴 것이다. 전혀 힘들지 않았다. 그래도 그동안 꾸준히 걷기 운동과 필라테스를 해서 그런지 체력이 좀 있는 것 같았다. 1km 뛰고 난 후 걷다가 지루하면 또 저속으로 1km를 뛴 후에 걸었다.


다음날은 2km를 뛰었다. 느린 속도에 마음은 답답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뛸 만했다. 군대 시절을 제외하고 나 스스로의 의지로 2km를 뛴 것은 난생처음이었다. 그리고 그다음 주 주말 3km를 뛰었다. 슬슬 자신감과 어제보다 더 많이 뛰었다는 성취감에 재미가 붙었다. 그렇게 한달이 지나서 일산호수공원 1바퀴(4.7km)를 완주했다.


"이제 나도 오래 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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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호수공원 달리기가 시작하는 지점이다. 매주 주말 새벽 이 지점을 시작으로 한바퀴를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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