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뛸 수 있지?​

런린이 다이어리 3

by 견뚜기

달리기를 시작할 때, 넘어야 허들은 지루함이다. 다른 운동들과는 달리 단순한 동작을 장시간(?) 반복해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지루함이 더 큰 것 같다.


나는 지금까지 농구, 스노우보드, 수상스키, 필라테스 등 몇몇 운동에 빠져봤었다.


농구는 공격과 수비를 번갈아 하고, 다양한 상황이 펼쳐지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다. 물론 공을 잘 못 잡으면 재미없긴 하다. 공을 잡고 드리블을 하고, 상대방을 제치거나 수비수가 없는 빈자리를 찾아 공을 받아 슛을 하고, 튕겨져 나온 공을 리바운드하고, 수비로 전환해 상대방을 수비하면서 지루할 새 없이 다양한 상황을 맞이하며, 순간적인 판단을 하게 된다. 그리고 뛰었다 쉬었다를 반복한다.


필라테스는 운동의 질은 다르지만, 특정 동작을 반복적으로 하고 나서 다음 동작으로 넘어간다는 루틴의 공통점이 있다. 즉, 단련하는 근육에 따라서 동작이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힘들면 잠깐(?) 쉴 수 있다.


수상스키는 30km/h~50km/h로 달리는 보트 뒤에 매달려 가는 스포츠로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는 느낌'이라 지루함은커녕 사소한 자세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신경을 써야 한다. 그래서 타는 내내 긴장감을 늦출 수 없어 흥미진진했다.


그러나 달리기는 달랐다. 일단 달리는 동작을 쉬지 않고 계속한다. 그렇다. 그냥 달리기만 한다.

유튜브로 동영상 10분짜리 영상을 보여주면 누구나 금방 보지만, 10분을 쉬지 않고 뛰라 하면 그 10분이 2시간 같게 느껴질 것이다. 그 지루함과 함께 시간이 지날수록 호흡이 거칠어지거나, 체력이 떨어지면서 힘들어진다. 그러면 멈추고 싶은,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뛰고 싶지 않은 유혹'이 강렬하게 찾아온다.


달리기를 매일 하는 지금도 컨디션에 따라 중간에 걷고 싶은 유혹에 굴복해서 그냥 걸은 적도 많다.(실외에서 뛰면 장점이자 단점이 달리다가 힘들다고 멈춰도,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집까진 걸어가야 한다). 그럴 때면 나 스스로에게 진 기분이 들어, 하루종일 찝찝한 기분을 떨쳐내기 힘들었다.


달리기를 시작했던 초반 몇 달간 혼자 고심했던 숙제는 지루함을 극복하는 문제였다. 어떻게 하면 지루함 대신 재미있게 뛸 수 있을까?


우선은 실외에서 달리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실내에서 러닝머신을 뛰면, 더 지루할 것 같았다. 물론 요즘은 러닝머신에 TV나 영상을 볼 수 있는 설비가 같이 있어서 지루함을 어느 정도 덜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영상을 보면서 달리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어느 정도 달리기가 적응이 되었을 때 비로소 실내 러닝머신을 뛰기 시작했다.


집 근처 일산호수공원은 거리상으로도 가까웠다. 집에서 걸어서 1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고, 평소 운동삼아 산책하러 다녔기 때문에 익숙했다. 그리고 볼거리가 많았다. 산책을 할 때도 경치를 보거나, 산책이나 달리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지금도 달리면서 곧잘 주변을 둘러보곤 한다.


지루함을 극복하는 또 다른 방법은 목표를 설정해서 뛰는 것이다. 저 앞에 유독 눈에 띄는 나무나 이정표 또는 커브로 인해 길이 끊어진 것처럼 느껴지는 구간을 목표로 설정하고 뛰곤 한다. 목표물과의 거리가 가까워지며 목표물이 커지는 모습에 집중한다. 그렇게 뛰는 중간중간에도 주변을 둘러보며, 잔잔한 호숫물이나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기도 하고, 행사로 인해 호수공원에 세워지는 구조물을 구경하기도 하며, 신경을 분산시켰다.


이럴 때, 1km마다 알려주는 이정표가 있는 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그래도 목표로 한 거리가 있으면 목표 의식을 가지고 힘을 낼 수가 있었다. 오늘은 3km만. 또는 3km에서 1km만 더 뛰어보자라고 생각하면 뛸 만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뛰는 것도 지루함을 극복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나는 혼자 달리는 타입이다. 하지만, 새벽 6시~7시에 뛰러 나가면, 러닝 클럽이나 삼삼오오 뛰는 그룹을 지어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규모가 큰 러닝클럽은 유니폼을 맞춰 입고 2열 종대로 뛰곤 한다. 아니면 같은 러닝 클럽 멤버라도 각자 혹은 그룹을 지어 달린다. 달리다가 마주치기라도 하면 힘든 와중에 반갑게 큰 소리로 인사를 하거나, 반대 방향에서 달려오는 회원에게 서로 파이팅을 외쳐주기도 한다. 이런 모습을 볼 때면, 나한테 파이팅을 외쳐주는 것은 아니지만 아침부터 사람들로부터 에너지를 받는 기분이 든다. 뭔가 아침을 달리는 사람들의 건강한 에너지를 받는 기분이 들곤 한다.


또는 내 앞에 뛰는 사람을 따라 뛰는 것도 지루함을 잊을 수 있다. 나는 경쟁심이 강한 편은 아니지만, 앞에서 달리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면 묘하게 따라잡아 앞지르고 싶은 의욕이 일어난다. 특히 앞에서 뛰는 사람의 뛰는 속도가 '왠지 따라잡을만하다'라고 보이면 더 그렇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 사실 매 주말 비슷한 시간에 뛰다 보면, 친숙한 러너들이 생긴다. 다들 습관적으로 비슷한 시간대에 운동을 하기 때문이다. 어느 가을 아침, 날 일산호수공원을 1km 좀 넘게 뛰었을 때, 약 300m 앞에 kisses 로고가 새겨진 파란색 나시티를 입은 6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어르신이 뛰고 있었다. 달리기 시작한 지 두 달 가까이 지난 시점이라 어느 정도 체력이 붙은 상태였다. 추월해 봐야겠다 싶어서 천천히 속도를 높였다. 사실 전력질주로 추월을 하면 그다음에 지쳐서 못 뛰기 때문에 현재 페이스에서 조금씩 속도를 높여갔다. 그렇게 100m~200m 정도 달리자 거리가 좁혀져서 어르신의 뒷모습이 눈앞에 다가왔다.


속도를 조금 높였을 뿐인데도 숨이 좀 더 가빠왔다. '이제 곧 추월할 수 있겠구나' 싶어서 페이스를 좀 더 올렸다. 그런데, 이게 왠 걸? 등뒤에서 내 발자국 소리를 들은 어르신의 페이스가 빨라지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이미 페이스를 높여놓은 상태라 어르신이 높인 페이스를 추월하다간 오버 페이스가 날 것 같아, 페이스를 원래 페이스로 늦췄다. 그랬더니 앞의 어르신도 페이스를 늦추시는 것이었다. 조덕배의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 노래 가사처럼 다가가면 속도 높여 뛰어가고, 천천히 뛰면 앞에서도 살짝 천천히 뛰기를 몇 차례 반복하다가, 결국 내가 추월을 포기했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그렇게 2km를 달린 거였다. 추월하고자 하는 경쟁심에 지루함이나 힘듦을 느낄 새가 없었다.


사실 지루함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써봤다. 3인칭 화법으로 '넌 할 수 있어! 아직 괜찮아!'라며 스스로를 격려해보기도 했고, 내가 뛰는 동선에 나무는 어떤 나무가 있고, 어떤 조각상들이 있는지, 또 길은 어떻게 나있는지(일산호수공원 길이 운동장처럼 곧게 나있지 않고, 구불구불하게 나 있는 곳이 많다)를 주의 깊게 보곤 했다. 아니면 1.9km 표지판을 기준으로 농구코트, 플라워카페, 선인장 박물관은 어떻게 위치하고 있는지 등을 기억하려 했다. 물론 지나고 나면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는 맹점이 있었다.


정신을 다른 데로 팔기 위해 다른 생각을 해봤지만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머리가 복잡해지며, 기운이 빠지기만 했다. 그래도 지루함을 잊기 위해 이 방법, 저 방법을 궁리하며, 뛰었고, 지금도 지루함을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달리기를 시작한 초반에 가장 큰 고민은 어느덧 체력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대체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뛸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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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일산호수공원 달리기 코스다. 일산호수공원이 4.7km 정도되니 공원 오가는 길까지하면 7km가 좀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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