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린이 다이어리 10-1
인생의 버킷리스트 하나를 달성한 날, 나는 바뀌었다.
누구나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버킷리스트(Bucket List)가 있다. 영어로는 버킷 리스트, 우리말로는 소망 목록이다. 네덜란드 헤이그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에 가서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Meisje Met de Parel)' 직접 보러 가기, 이탈리아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 가보기, 일본 도쿄에 지브리 스튜디오 가보기, 그리고 국내 여수, 통영 먹거리 여행하기, 책 1,000권 읽기, 책 써보기, 다이어트 그리고 달리기가 있다.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 막연하게 장거리 달리기를 취미로 가져보고 싶었다. 중학교 때 체력장 종목인 1,000m만이라도 쉬지 않고 달리고 싶었다.
그리고 달리기를 시작하고 나서는 일산호수공원 1바퀴 쉬지 않고 달리기, 그리고 10km, 그리고 마라톤까지 나의 버킷리스트에 있는 하고 싶은 일 목록이 단계별로 차곡차곡 쌓였다.
그중에서 인생의 전기를 마련해 준 것이 10km 달리기였다. 버킷리스트에 있었지만, 말 그대로 버킷리스트였다. 내가 할 수 있을 것이라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2022년 12월 18일 일요일 오전 7시 10분 아주 우연히 도전했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반년 정도 되어가던 시점이라 매주 주말 아침 일산호수공원을 달리는 루틴을 강박적으로 유지하던 시기였다. 전날인 토요일 눈이 왔지만, 그래도 달리러 나갔다. 역시나 일산호수공원에는 눈이 쌓여있었다. 내가 주로 달리던 자전거 도로도 마찬가지였다.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이 아니었지만 눈과 빙판길이 섞여 있었다.
한참 일산호수공원을 5'/km~6'/km 페이스로 (나로서는) 빠르게 달리던 것을 선호하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길 상태를 보니 이 날은 속도를 내서는 안될 것 같았다. 괜히 빠르게 달리다가 빙판 길에 미끄러져서 크게 다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집으로 돌아가기도 아쉬웠다. 그래서 마음을 다잡고 천천히 뛰어보자는 생각으로 하고, 호수공원에서 반시계 방향으로 달렸다.
자칫 빙판길에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평소보다 보폭을 좁힌다는 느낌으로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내디뎠다. 발이 지면에 닿을 때, 미끄러지지 않도록 제대로 꾹꾹 눌러 밟았다.
천천히 달리다 보니 신체적으로 여유가 생겼다. 심장 헐떡거림도 적어 평소보다 안정적이었다. 그리고 다리가 지치지 않고 힘이 유지되며 편안하게 달릴 수 있었다. 여유가 있다 보니 눈 쌓인 일산호수공원을 둘러볼 기회도 생겼다. 사실 평소에는 빨리 달리는데 집중해서 경주마처럼 자전거 도로만 바라보며 달렸다. 달리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는 자칫 속도가 떨어질 것 같았다. 그러나 이날만큼은 눈 쌓인 호수공원을 보며, 행여 눈앞에 길이 눈길인지 빙판길인지를 주의 깊게 살피며 달렸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어느새 한 바퀴, 출발했던 입구를 지나 5km 지점인 한울광장 초입구에 다 달았다. 항상 이 지점이 갈등 포인트였다.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하는데 5km를 달리고 나면 '목표한 대로 달렸다'는 안도감에 몸과 마음의 긴장이 탁 풀렸다. 마음 한편에는 더 뛰면서 내 한계를 늘리고 싶었지만, 이미 몸과 마음은 천근만근이 되어 더 뛰기 힘들었다.
2024년 1월 28일, 일산호수공원 2바퀴, 총 11.46km를 달렸다. 그리고 올해 매주 1회는 10km 달리기를 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