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마음이 아픈 거 같아
엄마, 나 면접 다녀올게 #8
┃이제 그만둬, 그깟 게임┃
눈을 떴을 때 나는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신경성 위염이랜다. 어쩐지 속이 쓰린 건 그런가 보다 했는데 쓰러질 정도는 아니지 않았나.
밥을 너무 굶었기에 영양실조인가 싶기도 했다. 어머니가 1주일만 입원하자기에 몇 번의 끄덕임으로 결정되었다. 친구들 면회도 그냥 부끄러워 거절했다. 뭐 어떤 생산적인 활동도 아닌 게임하다가 쓰러지다니.. 놀랍지도 않았다.
TV에선 2002년도 월드컵과 함께, 프로게이머 임요환의 아성에 도전하는 이윤열을 필두로 2세대 게이머들이 서서히 부상하며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점차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시기였다.
병원에 있는 동안 여러 프로 선수들이 활약하는 모습을 보며 그들이 받는 부러움과 동시에, 그들이 느낄 부담감이 어떨지 짐작할 수 있었다.(내가 하던 게임은 아예 손대거나 쳐다보지도 못했다.)
결국 프로를 위한 도전이지만 실패하면 '겜돌이'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모든 분야가 그러하지 않을까? 성공하지 못하고 어중간한 재능만 남아버리면 결국 취미를 조금 더 잘 갖고 노는 사람 중 한 명이 될 뿐이었다.
쓴 약을 삼키고 링거를 맞으며 점차 몸은 회복했지만 목표를 이루지 못해 정신적으로 지쳐갔다. 혼자 상상으로 마우스를 잡고 유닛을 움직이는 느낌을 머리로 떠올리곤 했지만, 이상하게 피로감이 심해서인지 더 이상 게임을 하는 게 두려웠다. 괜히 이유 없이 눈물이 차오르기도 했다.
퇴원을 하고 집에 돌아와 컴퓨터를 켜지 않고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그때쯤 몸에 또 다른 이상이 있음을 조금이나마 느꼈어야만 했다.
게임을 멀리 한 건 단순히 몸이 아파졌기 때문은 아니었다. 스스로도 자리 잡은 두려움 탓이었다. 컴퓨터를 켠다는 것이 두려웠다. 무너진 꿈이 떠오르고 희망고문이 될까 봐. 해낼 수 없다는 판단이 섰다. 더 이상 열등감으로 게임을 부여잡는 건 부질없단 생각뿐이었다.
해가 바뀌어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2학년 때 이미 보기 좋게 망가뜨린 성적과 보기 싫게 망가뜨린 내 랭킹 사이에서 난 시름시름 마음의 병이 생겨나고 있었다. 우울감이 찾아든 것이다.
꼭 게임이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내가 경쟁시스템에서 발휘할 수 있는 그나마 나은 재능의 영역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무너진 꿈을 향한 허탈감을 치유할 방법이 없었기에 나는 고독했고 외로웠으며 비틀거렸다.
하필이면, 내가 잘하는 게 게임이었고 그걸 꿈에서 희망으로 치환해 부여잡았던 것뿐이었다. 내게 몸을 쓰는 재능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건강은 지켰을까? 미련한 여러 생각들이 맴돌았다.
쉽게 잠들지 못했다. 어떤 날은 1시간을 뒤척였고, 어떤 날은 2시간마다 잠에서 깼다. 며칠을 반복하다 아예 잠을 자지 못하고 하루를 꼬박 새기도 했다. 피곤하다는 감정은 사치스러웠고 일시적이라 생각했다. 불면증이라는 걸 깨닫지 못했다.
다만, 들리지 않아야 될 이상한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죽는 게 어떨까.', '네 꿈 망했잖아.', '학업도 포기하면서 매진한 건데 왜 결과가 이래?' '부모님은 어쩌고?' '넌 부모님의 자랑이었잖아.'
마음속 소리가 자꾸 꺼내어져 나오기 시작했고 잠들지 못한 채 계속 악몽과 같은 마음의 소리들로 가지를 뻗고 나무가 자라 뿌리를 내렸다. 얼마나 잠들지 못한 건지 눈은 퀭해졌고 말은 점점 어눌해졌다. 어머니는 그저 아직 건강이 회복되지 않았겠거니라고 생각하며 나와 함께 가끔씩 산책을 하곤 했다.
밖으로 나와 걸을 때마다 누군가 나를 손가락질하는 듯했다. 마주 보고 오는 모든 이들이 나를 쳐다봤다.
'어휴 이 부모 등쳐먹을 놈.', '왜 엄마 힘들게 하냐.', '하필 게임이야?' 아닌 걸 알면서도 부정하질 못하니 점점 사실처럼 느껴졌다.
집을 나서는 게 두려웠다. 학창 시절의 일진들 사이에서도 마이웨이로 버텼던 내가 고작 이런 후유증을 견디지 못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때쯤 내 증상이 아마 '대인기피증'이었으리라.
잠들지 못하는 밤이 길어지며 우울한 감정은 점점 공격적으로 변했다. 매사 조심스럽게 행동하던 내가 과격해지고 감정을 심하게 드러냈다. 누가 나를 때리거나 괴롭힐 것 같고 이러다 꼭 죽을 것처럼 공포감을 느꼈다.
잠 못 들며 며칠을 버티던 어느 날 어머니는 TV를 보다 돌연 맨발로 계단을 뛰어내려 가려던 내 손을 붙잡았다.
"잡지 마. 잠깐 바람만 쐬고 올게. 잠깐만 놔봐. 엄마, 아 잠깐만..."
이때쯤 내 눈은 초점을 잃었고 어머니 말로는 이러다 다칠 수 있겠다 싶어 내 손을 더 꽉 잡고 놓지 않았다고 했다.
"놓으라고!!!!!"
강하게 뿌리치는 내 팔에 어머니는 밀쳐졌다. 밀려난 몸은 와장창 소리를 내며 화분을 깨트렸다. 어머니는 피가 흐르는 손으로 다시 나를 붙잡으며 애타게 불렀다. 여전히 손은 놓지 않은 채.
그제야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다. 몸에 들어간 힘이 빠지고 긴장이 풀렸다. 내가 신발도 신지 않았단 사실 또한 그제야 알게 되었다.
나는 정상적이지 않았다. 인정하기 싫지만 나는 비정상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부족한 수면으로 계속된 망상과 우울감, 무기력증. 정신적 고통들이 나를 옥죄이고 괴롭혔다. 실패의 늪은 여전히 나를 놔주지 않고 가라앉게 만들고 있었나 보다.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그냥 실패에 대한 PTSD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보란 듯이 실패한 거다. 상위 1%가 아니면 다 그저 그런 사람들이 될 뿐이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 했지만 난 그런 어머니에게 상처를 입힌 '성공하지 못한 아들'로 남아있었다.
나는 적당히 실패했다. 차라리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 편했다. 물론 내가 가진 적당한 재능에 비해 많은 기회를 얻기도 했지만 그 기회라는 것이 꼭 운을 기반해서 오는 것은 아니었다. 난 운 또한 적당히 없었다.
눈물이 흘렀다. 죄책감.. 후유증.. 고작 이 정도도 견뎌내지 못한 패배감. 언제부터 이랬던 걸까. 게임에서 패배했을 때의 과도한 스트레스? 클랜이 해체되고 길을 잃었을 때? 대회를 나가지 못하고 꿈이 좌절되었을 때?
정리되지 못한 머릿속의 생각들을 헤집다 빨갛게 흐르는 어머니의 피를 보고서야 내가 상처를 입혔다는 사실을 알았고 눈물이 흐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울면서 나는 어머니, 아니 엄마에게 얘기했다.
"엄마, 나 힘들어"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흘렀다. 피가 흐르는 엄마의 손을 잡고 계속 울기만 했다.
나는 아직 치료가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