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발표작
엄마가 물을 갈아준 투명한 화병에
깨끗한 물이 찰랑대고
곧은 줄기들이
계곡물에 두 다리를 담근 것처럼
시원해 보여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 꽃들은
고개를 푹 숙이기도 하고
연주황색 장미꽃잎 테두리는 거뭇거뭇
불에 탄 종이처럼
바깥으로 말리는데
나는 거기에 중요한 글자가 적혀 있기라도 한 것처럼
계속 들여다보게 되는 거야
엄마가 할아버지 이부자리를 살펴봐 드리면서
매일 햇볕에 말린 새 요로 바꿔줄 때
할아버지가 꾹 다문 입꼬리를 움직이며
엷게 웃었던가 말았던가,
앙상한 팔이며 다리를
내가 주물러주었던가 말았던가,
하는 것들 말이야
나는 궁금해
꽃이 시들어갈 때쯤이면
엄마는 매일 화병 물을 갈면서
왜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 건지
제 77호 《동시마중》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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