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직업의 만족도가 클가? 기자와 홍보인을 비교했다.
시에라의 픽 기자>홍보
자존감의 사전적 의미는 ‘자신의 능력과 가치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와 태도'로 소개된다. 자존감은 곧 직업에 대한 만족도로 나타난다. 물론 급여 수준도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만 길게 보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만족감이 높아야 한다. 아마 기자직을 원하는 사람 가운데 상당수는 특히 연봉이 적음에도 고르는 데에는 자존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솔직히 10년 넘게 기자로 활동하면서 ‘기자만큼 자존감이 높은 직종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갖곤 했다. 특히 주니어 시절이 그렇다. 필자가 입사했던 1990년대 후반만해도 언론사 연봉 수준은 대기업 이상으로 많았다. 대기업 들어가기도 쉽지 않던 시절 대기업보다 연봉이 높았으니 당연히 기본적인 자존감은 높았다. 게다가 원하는 일을 하니 자존감은 더욱 높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기자의 자존감이 왜 높을까.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사회 고위층인 CEO, 기관장, 국회의원 등과 소위 ‘맞짱’을 뜰 수 있다는게 크게 작용한다. 취재현장에 가면 이들은 기자에게 매우 조심한다. 정확히는 대부분 잘 보이려고 무척 애를 쓴다. 물론 일부 자신감에 넘치는 사람, 언론에서 공격이 힘든 소위 털어서 먼지 하나 안 나올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르겠지만 오랜 기자생활 동안 그런 사람은 많지 않았다.
게다가 회사에서도 이런 당당한, 심하게 보면 공격적으로 취재하는 기자를 원한다. 필자도 언론사에 처음 들어간 ‘햇병아리’시절 회사 선배들은 수도 없이 “너는 회사를 대표해 취재한다”는 말을 들었다. 즉 회사의 수많은 기자를 대표해 현장에서 취재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내가 당당하게 취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회사를 욕보이는 짓’이라는 말을 들었고 그래서 취재 현장에서 회사를 대표해 당당히 CEO, 고위공무원, 정치인 등을 상대했다. 지금은 흔치 않지만 과거에는 취재현장에 나가서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면 일종의 ‘응징’을 하기도 했다. 즉, 비판 기사를 쓰는 것이다. ‘기자는 말로 안하고 펜으로 쓴다’는 것이다.
또한 기업체의 과장, 차장 그리고 공무원 사회의 사무관 등 실무자를 만나지 말라는 주문도 많이 들었다. 신입기자 시절 필자에게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상대지만 이들은 소속처에서 결정권이 없는 사람이고 그만큼 의미 있는 얘기(취재 아이템)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들로부터 들은 내용은 기사 값어치가 없다는 말도 들었다.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부연 설명이다. 이런 인식이 자연스럽게 자존감을 높인 것으로 보인다.
취재 현장에서 자존감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은 수도 없이 많다. 특히 고위 임원을 만나면 만날수록 그런 느낌을 크게 갖는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필자도 실무자보다는 고위 임원을 만나는 것을 즐겼던 것 같다. 여기서도 기자의 잠재력이 평가된다. 소위 임원이나 고위 공무원은 불편하다고 피한다면 기자 자질에 문제가 된다. 오히려 고위 임원을 만나는 것을 즐기고 질문을 하는 사람은 기자로서 잠재력이 넘쳐나는 셈이다.
기자직에 대한 자존감과 만족도는 특히 본인이 작성한 기사가 호평을 받거나 반향을 일으켰을 때 더욱 높다. 특히 특종기사를 발굴했을때다. “역시 나는 기자하기를 잘했어” “나의 천직은 기자”라고 자부심을 느낀다.
필자의 경험으로 볼 때 이런 자존감, 자부심은 기자생활 5~10년차에 가장 많이 나타난다. 그전까지만해도 발제의 어려움, 취재원 상대의 미숙함 등으로 고충을 격지만 기자 2~3년차부터 서서히 어려움은 줄어들고 숙련단계에 들어가면서 여유가 생긴다. 소위 발제도 쉽고, 기사 쓰기도 편해진다. 과거 취재에 2시간 기사작성에 3시간이 걸렸다면 취재에 1시간, 기사작성에 1시간으로 시간을 줄일 수 있다.
기자의 자존감이 높다보니 종종 데스크(부장)와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하극상으로 보일수도 있다. 한참 후배기자가 데스크에게 “왜 기사를 고치느냐?” “고친 기사는 팩트가 틀렸다” 등의 논쟁이다. 수도 없이 겪었고 주변에서 사례도 많이 봤다. 일반 기업에서는 상상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취재한 것은 나’라는 일종의 자부심이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홍보인의 자존감은 기자와 비교해 확실히 낮다. 물론 본인이 속한 회사에 대한 자부심으로 어느정도 상쇄가 될 수는 있다. 훌륭한 회사에 몸을 담았다는데 자존감을 가질수 있겠지만 조직내에서 홍보로서 인정받기는 만만치 않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홍보는 어쩔 수 없이 지원부서이다. 돈을 쓰는 조직이다. 능력을 인정받기가 정말 만만치 않다. 영업조직이라면 성과를 보이면 되지만 홍보로 성과를 내는 것은 쉽지 않다.
무엇보다 내부 이해를 구하기가 만만치 않다. 언론사회(언론사)에서는 기자가 절대 주류다. 조직 절반 이상이 기자 또는 기자 출신 전보 인력이다. 조직 모두가 기자를 이해하고 기자를 위해 돌아간다. 특종의 어려움을 알고, 뻗치기의 고충을 안다. 자연스럽게 인정을 받기도 편하다.
하지만 홍보조직은 다르다. 회사에서 홍보를 경험한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대표, 사장 등 최고위층이 이해를 해준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들이 홍보의 어려움음과 고충을 모른다면 ‘회사에서 인정받겠다’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
필자가 홍보를 할때 가장 짜증났던 것은 뒤에서 ‘우리 홍보팀은 기사를 왜 못 내리냐’ ‘왜 저 따위 악성 기사가 나오게 하느냐’는 불평을 듣는 경우다. 솔직히 이런 직원들에게 ‘너희가 홍보해봐’라고 말하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아무리 홍보와 ‘기사 수정/삭제’의 어려움을 얘기해도 진심으로 이해하는 직원, 동료들은 많지 않다. 사실 그런 업무를 위해 위해 홍보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불가피한 여러 상황이 있고 무엇보다 전략적으로 판단한 것을 조직원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은 어렵다.
필자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홍보로 인정받는 것은 어느정도 포기하는게 맞다. 수십, 수백개에 달하는 매체를 관리하는게 어렵고 이는 내부 불만으로 이어지고 평가가 기대 이하로 떨어지기 쉽상이다. 물론 악재가 터졌을 때 관심사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물타기’에 성공하는 등 성과를 발휘한다면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지만 이는 매우 특이한 경우다. 더욱이 과거에 비해 매체가 워낙 많다보니 여론몰이를 하는게 매우 어렵다.
예컨데 매체가 20개만 있다면 한명 한명 기자를 관리하며 설득해 기사 흐름을 바꾸는게 가능하겠지만 매체가 100개에 달하면 이런 작업은 만만치 않다. 몇명 기자를 설득할 수 있지만 이걸 성과로 내세우기는 어렵다. 작업을 해서 우호적인 기사를 만든다고 해도 대부분 ‘그런 기사도 있었구나’ 정도로 치부되고 넘어간다. 홍보팀에서는 ‘우리 성과’로 적극 알리지만 회사에서는 ‘그 정도는 누가 못해?’ 정도의 반응을 보인다.오히려 악성 기사에 대해서만 크게 반응을 보이는게 현실이다. 특히 직원들이 관심을 갖고 공유하는 기사는 홍보팀이 작업하는 기사가 아니라 회사를 비판하거나 악의적인 기사들이다. 아무리 10번 기자에게 부탁해 좋은 기사를 쓴다고 해도 그 효과보다는 비판기사 파워가 크다. 홍보팀에 대한 시선이 곱까울 수 밖에 없다.
자존감은 아무래도 ‘기자’다. 기자 초창기에만 잘 적응한다면 고위층 인사들을 취재하며 편하게 대화를 나누며 즐길 수 있다. 고위층 인사들의 삶을 속속들이 알수 있고 그들과 대화하며 그들의 삶을 대리 체험할 수도 있다.
동시에 그들의 고급정보를 공유하며 나의 생활 수준도 어느정도 올라가는 측면이 있다. 물론 내부정보를 활용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워렌 버핏과의 식사’ 처럼 일반인들이 만나기 힘든 인사이트가 훌륭한 사람으로부터 많은 지식을 공유받을 수 있는 것이다. TV나 강연에서 들을 수 있는 내용을 직접 생생하게 직접 들을 수 있다.
하지만 홍보인이 된다면 말 그대로 ‘회사내 하나, One of Them’이다. 자존감을 갖는게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