六. 見小利則大事不成
공부 잘한다 소리는 곧잘 들어왔다. 똑똑하다는 소리는 그보다 더 들어왔다. 하도 들어서 그런 건지, 스스로도 조금은 그렇게 믿게 됐다. 공부를 어마어마하게 잘하는 것까지는 아니어도 얼추 잘하는 편은 맞고, 기가 막히게 똑똑한 건 아니어도 이만하면 머리가 잘 굴러가는 편이라고. 자부심이나 자만함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평가가 아닌 팩트의 영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TV에서 고시생들을 다룬 다큐가 나왔다. 신림동 고시촌에서 소위 3시라 하던 사시, 행시, 외시를 준비하는 사람들. 그 중에서도 5년이고 10년이고 낙방을 견뎌가며 다시 내년에 있을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 얘기였다. 다큐는 그들을 고시낭인이라 칭했고, 이런 사람들이 늘어나는 게 사회 문제라 했다.
나는 생각했다. 저들이 사회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개인에 문제가 있는 건 맞는 거 같다고.
‘좀 하다보면 자기가 이 시험에서 될지 안 될지 가늠이 되지 않나? 왜 안 그만두는 거지? 지금까지 들인 시간과 노력은 어차피 매몰비용일 테고, 안 되겠다 싶으면 오늘 당장이라도 그만두는 게 맞지 않나?’
더 나아가서는 이런 생각도 했다.
‘애초에 5년이고 10년이고 걸릴 사람은 저 시험을 준비하면 안 되지. 한 1~2년이면 되는 거 아닌가. 길어봤자 3년이면 쇼부 쳐야지.’
그 때는 몰랐다. 그게 뭣도 모르는 건방진 생각이었을 줄은. 다큐에서나 보던 사람들의 모습이 내 모습이 될 줄은.
결과적으로, 나는 꼬박 5년을 꽉 채워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그조차 운이 좋았다. 합격자 발표가 있던 전 날 저녁까지도 다음 해 시험 공부를 하고 있었으니까. 이번에도 또 떨어질 줄 알고 말이다.
머리깨나 굴리던 놈이라고 스스로 생각해왔는데, 반 십 년이나 하게 된 수험생활. 핑계 같지만, 어쩌면 1년 정도는 더 빨리 붙을 수도 있었다.
공무원 시험은 시험 몇 달 전에 접수를 한다. 접수를 하고 응시료를 결제하면, 한참 후에야 고사장과 수험번호가 나온다. 그러고도 실제 시험일까지는 공부할 여유가 더 있다.
그 날은 시험을 준비한 지 4년 쯤 됐을 무렵. 그러니까 내게는 네 번째 고사장이 발표나는 날이었다. 나는 대학교 고시반에서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시반 자료실 한 켠에 마련된 공용 컴퓨터 2대로 수험생 몇 명과 함께 고사장을 확인했다. 홈페이지에서 로그인을 하고 마이페이지에서 확인을 하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순서대로 자신의 계정에 들어가 수험번호와 시험장소를 보게 되었다. 이 사람은 어디고, 저 사람은 어디고.
그런데 이상했다. 다들 쉽게 쉽게 본인 수험번호와 시험장소를 확인하는데, 나는 아무래도 내 껄 못 찾겠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모든 수험생이 다 확인하는 정보일 텐데, 뭐 이렇게 꽁꽁 숨겨놓나 싶었다. 찾다 찾다 못 찾아서 옆자리에서 확인하던 형에게 물어보았다. 형은 어디서 찾았냐고. 그러자 그 형이 내 컴퓨터 화면을 빤히 보더니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야, 너 화면이 내 꺼랑 다르다?”
이게 무슨 소리지 싶던 찰나, 형이 말을 잇는다.
“너 시험 접수 안 한 거 아냐?”
순간 아찔했지만, 설마 했다. 아니, 설마라는 표현도 과하다. 그럴리가 없으니까. 시험을 한두번 준비한 것도 아니고 올해가 벌써 4년찬데. 이미 세 번의 시험을 봤었는데 시험 접수를 안 하기는 무슨. 이상한 소리 하고 있어.
는 내 희망사항이었다. 그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확인하는 데에 한참이 걸렸지만, 어쨌든 내가 시험 접수를 안 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험 접수를 시작은 했는데 하고 마치지는 않은 상황, 즉 응시료 결제를 하지 않았던 거다. 접수가 제대로 안 됐으니 수험번호도 없고, 고사장도 당연히 없고. 충격.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시험을 주관하는 인사혁신처에 유선으로 문의도 했지만, 그냥 지푸라기였다. 방법은 없었다. 결국 그 해는 아예 시험을 보지 못했다.
충격에서 다소 회복되고 난 이후, 접수 당시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나는 왜 결제를 안 했을까. 접수 자체를 안 했다면 또 모를까, 접수만 하고 돈을 안 낸 이유는 뭐였을까.
‘아까워서.’
희미하게나마 떠오른 기억 끝에 생각난 답이다. 어처구니 없는 이유. 쓴웃음이 절로 지어졌다.
접수를 하던 날도, 나는 고시반 자료실 공용 컴퓨터를 썼었다. 자료실에 들어가서 컴퓨터를 켜고,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접수를 했다. 접수를 하니 핸드폰으로 메시지가 날아왔다. 만팔백원 정도 됐었나, 응시료를 내라고 말이다.
응시료를 내려고 보니, 공용 컴퓨터였기 때문에 개인 인증서 같은 것들이 깔려있지 않았고, 공부를 하러 도서관에 나온 상태였던지라 카드도 갖고 있는 게 없었다. 그러니까 계좌이체도, 카드 결제도 못 하는 상황. 유일하게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결제수단은 핸드폰 소액결제였다.
그런데 소액결제를 하자니 괜히 찝찝했다.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아빠였다. 너는 핸드폰 요금이 왜 그렇게 많이 내냐는 아빠의 잔소리를 들었던 게 불과 얼마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그래, 아빠의 잔소리 뿐이었으면 그냥 모른 체 결제를 하고 말았을 거다. 결정적인 건, 쫌생이 같은 내 마인드였다.
이게 참, 설명하려니 더 좀스러운데, 당시 휴대전화 요금은 매달 알아서 빠져나가게 통장에 자동이체를 걸어뒀었다. 그러니까 핸드폰 소액결제로 시험 응시료를 계산한다면, 딱 그만큼 현금이 빠져나가고 끝나는 거다. 만팔백원이면, 더도 덜도 말고 딱 만팔백원을 소비하는 거다. 그런데 이걸 카드로 계산하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사용하는 카드 종류에 따라 제각각이긴 하지만, 하여튼 좀 저렴해진다. 예컨대 전월 실적이 20만원인 카드의 통합할인한도가 1만원이면, 대충 5%쯤 할인을 받는 셈이잖는가. 만팔백원의 5%면 5백원이 넘는데, 5백원이면 라면이 하나, 다시 말해 내 한 끼가 해결되는 돈이었다. 그래서 나는 막바로 핸드폰 소액결제를 하기보다는 이따가 자취방에 돌아가서 카드로 결제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불행히도 그게 내 마지막 생각이었다. 그 뒤로 결제가 다시 생각나는 법은 없었고, 기억 속에서 영영 지워진 것이다. 고사장 발표날까지.
결국 나는 5백원 아끼잡시고 1년을 통으로 날린 꼴이 됐다. 연봉 5백원, 월급 42원, 하루일당 1.4원짜리 노동을 한 셈이다. 쥐똥만한 이익에 집착하다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20대의 1년이라는 시간을 날려버린 거다. 멍청 멍청 멍청하기 이를 데 없는 짓이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그 해에 시험을 치렀다면 나는 그 해에 수험 생활을 끝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실제로 바로 그 다음 해에 결국 합격을 했으니, 어쩌면 이미 그 때에도 합격할만큼의 실력은 쌓은 상태이지 않았을까. 뭐, 누구도 모를 일이다.
한 가지는 확실하게 배웠다. 쪼매난 이득을 보겠답시고 저울에 올릴 수도 없는 커다란 걸 담보 맡기는, 그런 리스키한 일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그건 이왕이면 다홍치마 수준이 아니라, 다홍 실오라기 하나 얻자고 맞춤 양복을 배팅하는 것과 다름없다. 가끔은 눈에 보이는 이익 앞에서도 ‘그까이 꺼’ 정신이 필요하다.
그까이 꺼, 뭐 얼마나 된다고.
신경 꺼! 쿨하게.
見小利則大事不成 <子路>
(견소리즉대사불성 <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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