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 食無求飽, 居無求安
배우 윤여정이 TV토크쇼에 나온 적이 있다. 영향력으로는 당시에는 첫 손가락에 꼽을 만큼 대단했던 프로그램, 국민MC라 불리던 강호동의 '무릎팍도사'였다. 윤여정은 그곳에서 연기에 대한 본인의 철학을 말한다.
"배우가 제일 연기를 잘 할 때인지가 언제인지 아세요? 돈이 필요할 때 연기를 제일 잘해요."
그로부터 12년 뒤. 윤여정은 영화 「미나리」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서른 하나. 적다면 적은 나이지만, 첫 취직을 하는 나이로는 그다지 이른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회사생활은 누구에게나 낯선 법. 입사를 하고서,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여러가지를 새로 배울 수 있었다.
우리 회사는 신입 직원들에게 멘토를 한 명씩 붙여준다. 멘토한테만큼은 눈치보지 말고 묻고 싶은 걸 다 물어보라는 취지였고, 멘토 역시 책임감을 갖고 멘티들에게 잔소리를 해주라는 의미도 담겨있었다. 다행스럽게 나는 멘토 운이 좋았고, 멘토는 성심성의껏 훈계를 해주었다. 나는 그런 멘토를 믿고 수많은 질문으로 귀찮게 굴었다.
그렇게 들은 얘기 중에 아직까지도 꼭 지키려고 노력하는 말들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엘리베이터다. 관리자가 되기 전까지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말라는 거였다. 회사 사무실이 높아봤자 5층이어서 지키고 있는 것이겠지만, 어쨌든 나는 아직도 회사에서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는다.
비슷한 얘기를 어렸을 때 아버지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자리가 있어도 앉지 말라는 소리였다. 송구스럽게도 이 말은 잘 지키지 못 했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나는 운동과 전혀 친하지 못 했다. 몸 쓰는 데에는 재능이 없다는 걸 일찌감치 깨닫고 마음의 문을 닫아서인지, 스포츠는 물론이거니와 체력증진을 위한 달리기니 줄넘기니 하는 것들과도 가깝게 지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운동을 꾸준히 하게 되고, 나는 운동 전도사가 되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 때였다.
수험생 때는 공부할 시간을 만드는 데 힘을 썼다. 버려지는 자투리 시간들이 아까웠다. 그 시간에 공부를 하면 점수가 막 뛸 것만 같았다.
하지만 운동은 해야 했다. 운동을 하지 않으니, 체력이 뒷받침 되지 않아 공부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침운동을 했다. 일어나서 씻지 않고, 바로 헬스장으로 가는 거다. 어차피 운동을 하면 씻어야 하는데 하루에 두 번을 씻으면 그만큼 공부할 시간이 줄어드니까, 아침 일찍 운동을 하면서 샤워하는 시간을 절약한거다.
물론 어려웠다. 귀찮고, 힘들었다. 가뜩이나 공부하기도 힘든데, 운동까지 하려니 생활이 너무 빡빡했다. 강의를 듣거나 문제를 풀 때도, 눈꺼풀이 전보다 더 무겁게 느껴졌다. 괜히 시작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공무원 시험이라는 건 하루 이틀, 또는 한 주 두 주 준비하는 종목이 아니었기 때문에, 길게 보고 가자는 마음에 꾸역꾸역 운동 스케줄을 소화했다.
그랬더니 이게 웬걸. 그토록 의지가 박약했던 내가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 책상 앞에 쫌만 길게 앉으면 몰려오는 졸음과 싸워야했던 내가, 상쾌한 정신으로 오랫동안 집중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는 선순환이었다. 운동을 하니 체력이 좋아지고, 체력이 좋아지니 아침에 더 잘 일어나고, 아침에 잘 일어나니 다시 운동을 더 잘하게 되는.
한편, 그 반대도 정확히 성립하는 것 같다. 운동을 하지 않으면 살이 붙는다. 살이 붙으면 아침에 일어나기도 힘들어지고, 운동을 하러 가기도 더 무거워진다. 운동을 간다 해도 그렇다. 몸이 무거워졌기 때문에 운동이 더 힘들다. 그래서 운동을 덜 하게 된다. 그러면 살이 더 붙는다. 식욕은 더 돋고, 더 먹게 된다. 운동은 더 못하게 되고, 살은 또 또 붙는다.
'벼리'라는 말이 있다. 생선 잡는 그물의 첫번째 가로줄을 일컫는 말이다. 낚시꾼들이 그물을 오므리거나 펼 때, 이 벼리라는 걸 잡고 움직인다. 벼리를 당기면서, 그물을 이리 저리로 이끄는 것이다. 그물을 냅다 바다에 던져만 놓으면, 그물은 물살에 휩쓸려 흐를 뿐이다. 다른 건 몰라도 벼리는 잡고 있어야, 그물을 치고 당기고 고기를 잡는 것이다.
사람사는 것도 그런 것 같다. 지나치게 아늑함만을 좇는다면, 흐르는 물살에 자의식 없이 이리 저리 휩쓸릴 뿐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무게중심을 잡고 가기 위해서는 스스로 벼리를 꽉 붙잡아야 한다. 정신줄 붙잡으라는 소리도 비슷한 맥락일 거다.
나의 경우에는 운동이었다. 몸을 좀 굴려야 일상이 잘 됐다. 만 5년 간의 수험생활을 잘 잡아준 것은 아침 운동이었고, 서툴게 시작한 회사생활도 계단 출근으로 시작해 계단 퇴근으로 마치는 덕에 큰 소란 없이 잘 버텼다고 생각한다.
단, '벼리'라는 건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의 벼리를 찾고, 그것을 쥐고 있어야 한다. 벼리의 모습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그 본질은 다르지 않다. 불편함이고, 부족함이다.
배우 윤여정은 '가난' 또는 '생계'를 벼리 삼은 것 같다. 널리 이름을 떨친 배우이니까 절대적 빈곤은 애진작에 탈출했을지언정, 심리적으로라도 '경제적 갈망'을 계속 유지한 것이다. 그렇기에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이라는 대단한 성과까지 이루어냈겠지.
편함과 풍족함은 마약이다. 배가 부를 때까지 먹거나 늘어지도록 편하게 있는 것은 당장은 편안함과 행복함을 가져다 줄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는 달콤한 마약일 뿐이다. 접근성도 좋고, 값도 싼 마약 말이다. 궁극적으로 마약이 주는 아늑함은 평안이 아니라 나태가 될 거다. 나태는 나태를 부르고, 다시 또 나태를 부른다. 악순환의 늪이다.
그래서 우리는 배가 부를 때까지 먹으면 안 되고, 늘어지도록 편하게 있어서는 안 된다. 당장의 불편함과 부족함이 우리에게 벼리가 된다. 정신줄이 된다. 그걸 꼭 붙잡았을 때, 스스로의 생활을 잃지 않게 만든다.
그렇지만 안다고 다 실천하면 그게 사람인가? 신이지.
입사 때보다 15kg는 더 불어난 몸을 보며, 세 번은 접히는 턱과, 발가락 보다도 앞으로 튀어나온 배를 만지며, 지킬 수 있을지 모르는 말을 되뇌인다.
'내일은 꼭 운동해야지. 벼리를 꽉 붙들어매야지.'
아구찜에 소주를 마시며.
야, 너 요새 너무 편한 거 아니냐?
食無求飽, 居無求安. <學而>
(식무구포, 거무구안. <학이>)
食無求飽, 居無求安食無求飽, 居無求安
食無求飽, 居無求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