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 五十而知天命
요즘 세대는 영 아니라한다. 버릇이 없고, 제멋대로고, 책임은 안 지려고 하고, 권리는 쏙쏙 빼먹으려고 한단다. 공정과 정의를 부르짖지만, 자신과 관련이 없다면 눈을 감는다 한다. MZ라는 말은 이미 부정적으로 쓰인 지 오래고, 심지어 망(M)조(Z)가 들었다고까지 한다.
(1)
“이 차장, 아무리 봐도 그쪽 파트는 영 아닌 거 같어. 이제 그만하지. 시장에서 철수하고, 옆에 원 부장네 파트로 합류해서 일하게.“ 사장님이 직접 지시하신다. 파트의 통폐합이라는 거대한 문제니까 고민도 많이 하셨을 거고, 간부급 회의도 많이 한 결과일 테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네, 알겠습니다’하고 끝날 일. 그러나 이 차장은 되바라지게도 사장에게 직접 항명한다. “사장님, 지금 이쪽 파트를 엎어버리면 우리 회사가 끝장납니다. 제게는 아직 열 두 명의 유능한 파트원이 있습니다. 일단 여기 현장이 워낙 시시각각 변하니, 급한 일부터 좀 처리하고, 나중에 다시 보고드리겠습니다.“
(2)
건설사를 운영하는 남 대표네는 대규모 계약을 따내고 한창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초 계획과 다르게, 더운 날씨 탓에, 재료 수급 탓에, 또 뭐 탓에 뭐 탓에 공사 기일이 코앞인데 영 진도가 나지 않았다. 지지부진한 상황 속에서 남 대표은 직원들에게 일을 독촉할 수 밖에 없었다. “다들 알다시피 우리가 지금 영 더딘 상황이어서 말이야. 힘들겠지만, 조금만 더 속도를 내주게.” 그러자 한 직원이 말한다. “대표님, 저희 요즘 일 엄청 늘어난 거 아시잖아요. 가뜩이나 잔업에 주말업무에 너무 힘든데요” 그렇지만 모든 직원의 사정을 다 들어줄 수는 없지. 개인보다 회사가 더 중요할 때가 있는 법. 남 대표은 더 단호하게 말한다. “시기가 시기인만큼 조금씩만 더 견뎌주게. 개인 성과를 못 낸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급여에 불이익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도 알아주고.” 이 사건은 어떻게 됐을까. 남 대표에게는 안타깝게도 직원들은 단체로 파업을 했다. 남 대표의 말을 듣고서는 일하던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서, 급료도 제대로 주고, 휴식도 제대로 달라고 농성을 했다. 울며 겨자먹기로, 남 대표는 직원들의 요구를 받아들였고 말이다.
(3)
“아니, 대표님. 다른 사람도 아니고 대표님께서 이러시면 어떡합니까. 회사에는 규율이라는 게 있는데, 별 이유도 없이 특정인을 이렇게 전례 없이 몇 직급이나 승진을 시켜버리면 인사라는 게 엉망이 될 겁니다. 형평성이라는 게 있는데요.“ 회사의 인사 책임자가 이 대표에게 강하게 어필한다. 인사 책임자는 인사에 있어서는 수 십 년을 한 베테랑. 반면 이 대표라는 사람은 전임 대표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바로 대표자리를 꿰찼다. 당연히 나이도 인사 책임자보다 한참 더 어리다. “별 이유가 없다뇨? 내가 보기에 일 잘 하겠는데?” 황당한 답변에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이어지는 말에 인사 책임자는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꼬우면 대표 하시던가요.”
무려 사장님의 다이렉트 지시에 제대로 들이받은 이 차장, 공사 기일이고 회사고 간에 쉬고 싶다며 농성을 저지른 남 대표네 직원들, 형평성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본인의 마음에 드는 사람을 수직 승진시킨 이 대표. 제멋대로에, 버릇도 없고, 이기적이고, 나이도 어린 것들이 딱 MZ스럽다. 맞다. 나라에 망조가 든 게 틀림이 없다.
이미 눈치 챈 사람들도 있겠지만, 위 얘기들은 요즘 우리네 MZ 얘기가 아니다. 각색과 과장을 조금 하긴 했지만, 모두 역사 속 사실들이다. (1) 바다를 버리고 육군에 합류하라는 선조에 항명하던 이순신 (2) 람세스 3세 시절 파업한 피라미드 노동자들 (3) 인재를 파격 발탁해 활용하던 세종대왕 얘기다.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는 말이 파피루스에 적혀있더라는 얘기까지 굳이 꺼내지 않더라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후대를 맘에 들지 않아하는 건 인류의 유구한 전통이다. 이쯤되면 생물학적 본능이 아닐까 의심이 될 정도다.
당장 우리의 작금만 봐도 그렇다. 30대는 ‘80년대생까진 괜찮은데’라고 하고, 20대는 ‘1로 시작하는 학번까진 괜찮은데’라고 하고, 심지어 작년 재작년에 대학에 들어간 사람들조차 ‘우리 때까진 괜찮은데’라고 한다. 7살짜리 형아도 5살짜리 애를 보며 똑같은 말을 한다. 요즘 애들이 별로라는 멘트는 매번 되풀이되는 거다.
만약 이 말들이 진실이라면 인류는 항상 버릇이 없어져왔다. 아담과 이브는 역사상 가장 예의바른 사람들이었던 거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해가 갈수록 버릇이 없어진다는 얘기는 논리타당하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모든 세대가 주장하는 ‘우리 때까지는 괜찮았는데,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어’는 사실 말이 안 되는 말이다.
그렇다면 왜 모든 세대는 저런 말을 할까. 생각건대 그게 꼰대다. 나보다 어린 사람들 앞에선 꼰대가 되는 거다. 내가 맞는데 쟤들은 왜 저러지? 이건 이렇게 해야 하는데 쟤들은 대체 왜 저러지? 어어? 말뽄새 보소? 이렇게 되는 거다.
그러나 꼰대가 되었음을 자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세계 4대 성인이라는 공자마저도 그랬으니까. 본인의 꼰대성을 눈치 채지 못 하고, 그걸 막 떠벌이기까지 했으니까. (꼰대특: 본인이 꼰대인 줄 모름)
꼰대란 무엇인가. 한 마디로 정의하긴 어렵지만 대표적인 특징들은 얼추 공유가 되는 것 같다. 그중 하나가 똥고집이다. 남의 말은 도통 듣지를 않고, 본인 말만 맞다고 우기는 거다. 남의 말을 듣고, 자신을 고칠 수 있으면 그건 꼰대가 아닐 거다. 문제는 꼰대들은 본인이 꼰대인줄 모르기 때문에 남의 말을 더 듣지 않고, 그래서 더 꼰대가 되는 악순환에 빠진다는 거다.
공자가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며 했다는 말이 있다. 마흔을 불혹이라 부르고, 쉰을 지천명이라 부르게 된 기원이 바로 이 말이다.
“나는 열다섯 살 때는 공부하기로 마음을 먹고, 서른즈음에 그 마음이 확고해졌다. 마흔을 먹어서는 주변에서 뭐라해도 현혹되지 않게 되었고, 반 백 살에는 드디어 하늘의 뜻을 알았다. 나이 육십에는 사람이 부드러워졌고, 칠십에는 내 마음대로 하는 모든 행동마저 다 도덕적이게 됐다.”
그런데 내 눈에 이 말은 스스로 꼰대가 되었음을 뿜뿜하는 것 같다. 왜 그렇게 보이는지 편견을 담아 편향적으로 해석해보겠다.
열다섯 살 때 공부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는 것은, 이제 슬슬 고집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거다. 애초에 공자가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게 아니었기 때문에 주변에서 잔소리들이 꽤 많았을 거다. 책만 보면 밥이 나오냐, 그럴 바에 차라리 농사를 지어라, 기술을 배워라 등등. 당시 공자는 키가 2미터에 달했다는 얘기까지 있으니, 그 떡대를 가지고 돈도 안 되는 책만 보고 있는 게 주변사람들 눈에는 답답해보였을 수 있다. 농사꾼과 같은 생산직과는 달리, 선비라는 놈들은 전형적인 소비집단이니까.
이후에는 더 가관이다. 서른에는 고집이 아예 확고해진다. 주변 얘기에 귀를 닫고 내가 맞다고 논리싸움을 해대기 시작했다는 거다. 실제로 공자가 여러 나라를 떠돌아다니는 유랑을 하게된 게 이 때부터다. 그리스 소피스트처럼 여기 저기서 논쟁을 하고 다녔을 거다. 다만 그 때에는 그럴 듯한 얘기가 있다면 설득이 되기라도 했는데, 마흔을 먹어서는 그 어떤 얘기에도 안 넘어가게 된다. 좋게 포장하면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거지만, 실상은 타당한 논리를 가져와서 설득을 해도 궤변으로 치부하며 손사래를 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클라이막스다. 쉰에는 본인이 하늘의 뜻을 알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되는 순간, 지상의 인간들 얘기는 모두 하찮게 된다. 끽해야 미물들끼리 하는 얘긴데 뭐. 내 말은 곧 하늘의 말이니, 니들이 뭐라고 얘기하건 다 상관없고, 하여튼 내 말을 들어!라는 게 된다. 육십을 먹고서는 이제 논쟁조차 안 한다. “그래 그래 니 말이 맞아”를 시전해버린다. 대화의 판을 엎어버리는 거다. 드디어 마지막 칠십. 말과 행동을 제멋대로 하게 된다. 스스로는 그게 다 도덕적이고, 마땅한 이유가 있는 언행으로 여기게 된다. 인간세상의 룰이나 법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고 말이다. 사회적으로 존경 받는 ‘어른’의 모습이 아닌 ‘늙꼰’의 모습이 겹치는 건 기분 탓일까.
물론 공자가 정말로 꼰대였는가 하는 문제는 다시 생각해볼 법하다. 교사보다 학생을 중시하는 맞춤형 교육을 하는 등 당시의 시대상을 생각하면 꼰대는 커녕 혁신의 선봉에 선 사람으로 볼 여지도 충분하다. 공자가 했다는 말 한 마디로 사람을 꼰대로 몰아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의 저 말은 전형적인 꼰대의 일생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꼰대끼가 어떻게 처음 발현이 되었고, 어떤 모습으로 심화되었으며, 결국 늙꼰의 모습이 어떤 건지까지 말이다. 이쯤되면 공자가 아니라 ‘꼰자’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이제 이야기를 정리해보자.
임금에게 들이받고, 파라오 말에 파업을 하고, 전문가 말을 나몰라라 하며 낙하산 인사를 했다. ‘버릇없는 MZ'가 아니라 짧게는 수 백 년, 길게는 3천 년도 더 된 옛날 사람들이 말이다. 한편, 2천5백 년 전, 동양의 탑티어 성인이 꼰대끼가 그득한 말을 자랑스레 내뱉기도 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세대 탓을 하는 건, 별로 타당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거다. 옛날 사람이라고 다 예의바른 거 아니고, 요즘 사람이라고 다 이기적인 거 아니다. 에덴 동산의 아담도 버릇이 없었을 수 있고, 예의 바른 MZ들도 쎄고 쎘다. 물론 공통적으로 겪은 역사적 경험 탓에 세대마다 구별되는 경향성은 있을 수 있겠지만, 누군가를 판단함에 있어 ‘개인’보다 ‘세대’를 우선순위에 놓아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의 세태는 그래서 우려스럽다. 물론 예전에도 X세대니, Y2K세대니 말들은 많았지만, 세대 갈등의 불쏘시개로 세대 자체가 악용되었던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MZ는 혁신이나 진보의 상징이 아닌 버릇없음과 이기주의의 대명사가 되었고, MZ세대는 MZ세대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욕을 먹고 있다. MZ세대 사이에서 MZ라는 말의 선호도가 극히 낮은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요즘 세대는 영 글렀다느니, 나 때는 안 그랬다느니 하는 말들은 꼰대와 다름 아니다. 지우학, 이립, 불혹, 지천명, 이순, 종심소욕불유구. 어느 단계까지 이르렀는지는 모르겠지만, 꼰대성 짙은 생각임에는 틀림이 없다. 세대가 아닌 사람을 보아야 한다. 사람을 세대로 보는 순간, 그 사람과의 진실된 대화는 닫히게 된다. 오지랖을 부리며 이것 저것 잔소리를 하는, 그다지 맞는 말이 아닌데도 과잉 조언을 쏟아내는, 꼰대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 꼰대는 되지 말자.
어딜 감히!
내가 곧 하늘이야!
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爲政>
십유오이지우학, 삼십이립, 사십이불혹, 오십이지천명, 육십이이순, 칠십이종심소욕불유구. <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