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있는 곳은 무조건 빛나

三. 君子居之, 何陋之有.

by 간장밥

국민임대주택에 들어갔다. 방 한 칸에 6평, 보증금 천오백에 월세 8만6천원. 다행히 베란다는 있는 원룸이었다. LH에서 짓고 분양한 집. 나중에서야 알게 된 말이지만, 나는 엘거, 즉 LH에 사는 거지가 되었던 거다.


조금도 불편하지 않았다. 불편하지 않았다면 거짓말, 이 아니라, 정말 불편하지 않았다. 내 한 몸 눕히기엔 아주 충분했다. 부족한듯한 공간은 벙커침대로 해결했다. 2층은 침대, 1층은 책상과 옷장. 남은 공간에는 헬스벤치와 요가매트까지 놓았다. 청소할 곳이 많지 않아서 오히려 더 좋았다.


당시 여자친구였던 아내를 만나고서도 마찬가지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동네에 혼자 사는 직장인들. 연애를 시작하고 마음이 맞으니, 자연스레 같이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하루 이틀, 방에 놀러왔다가 그대로 잠을 자고 출근을 하더니, 하루 이틀이 사흘 나흘이 되고, 그게 그대로 평소가 되어버렸다. 그 좁은 방에 둘이 살게 되었지만, 큰 불편이 없는 건 전과 같았다. 2층 침대에 둘이 눕지 못하니까, 요가매트 위에 이부자리를 펼치고 자야했다는 것 정도가 바뀐 점이랄까.


이전에 살던 곳이 더 비좁아서 그랬을 수도 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자취했던 곳. 세 평 남짓한 반지하 방에 주방 싱크대와 세탁기, 냉장고, 심지어 화장실까지 있었다. 침대에 누워 몸을 15도 정도 일으키면 머리가 책상에 닿았고, 라면을 끓이며 튀어오른 국물은 이불까지 날아갔다. 팔굽혀펴기를 할 곳이 없을 정도였으니, 좁긴 정말 좁았다.


하지만 그곳에서조차 나름대로 잘 살았다. 책상이야 학교 도서관 쓰면 되는 거고, 운동은 학교 헬스장, 밥도 학식으로 해결하면 됐다. 자취방은 잠을 자거나, 또는 가끔 라면이 생각날 때 라면 끓여먹으러 가는 곳이었다. 그래, 라면. 자취방 창틀에는 여러 종류의 라면이 열을 맞춰 늘어서 있었다. 깔끔하게 정렬된 라면을 보면, 그게 그렇게 뿌듯했다. 가지런히 놓인 라면 무더기는 반지하 자취방 고시생의 플렉스였다.



재작년 말, 아파트에 입주를 했다. 비록 지방에 있는, 비상장 중소 건설사에서 지은 집이었고, 대부분이 그렇듯이 말그대로 영끌, 여기저기서 자금을 끌어모은 뒤에야 들어올 수 있었지만, 부모님은 당신들도 못 한 일인데 내 이름으로 된 집을 갖게 되었다며 대견해하셨다. 고이는 눈물도, 나는 본 것 같다.


국평이라 불리는 34평형. 방은 세 개고, 화장실도 두 개다. 이 때다 싶어서 가전도 과소비했다. 방마다 시스템 에어컨을 뚫어놨고, TV도 두 대를 들였다. 식기세척기, 건조기, 로봇청소기, 의류관리기까지 풀 세트로 장만했다.


방마다 컨셉도 잡아 꾸몄다. 침실에는 호텔식 페브릭 침대를 큰 사이즈로 두었고, 큰 방은 사장님 책상과 나무 느낌 책꽃이를 놓아 서재로 만들었다. 작은 방에는 전부터 쓰던 헬스벤치와 턱걸이 기구에 실내 바이크를 새로 설치하고, 커다란 전신거울 두 개를 세워두어 운동방으로 삼았다.


옛날 자취방에 비해서도 이전 임대주택에 비해서도, 주거 환경은 비교할 수 없을만큼 수직상승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우리의 환경은 분명 더 쾌적해졌으나, 우리의 행복은 그에 비례하지 않았다.



새집으로 이사를 하고 꽤 오랫동안 아내는 볼멘소리를 했다. 남편이 자꾸 보이지 않는다는, 애정어린 투정이었지만 장난치는 것은 아니었다. 진심이었다. 작은 원룸에 살 때는 내가 무얼 해도 항상 아내 시야에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서재나 운동방을 가면 볼 수가 없다고 했다. 침대도 불만 대상이었다. 요가매트 위에서 둘이 잘 때는 꼭 붙어 잘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자연히 서로의 몸이 닿지 않게 넉넉히 자게 됐다는 거다. 집이 커지니까, 오히려 둘 사이의 거리는 늘어났다는 거다. 별로라는 거다.


맥락은 달랐지만, 나 역시 그닥 좋아지지 않았다. 집이 넓어지고, 방마다 쓰임이 정해지니까, 더욱 넓은 곳을 바라게되었다. 지금은 기껏해야 서재와 운동방이 있는 정도여서, 이젤을 두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취미방도 있으면 좋겠고, 방음시설을 사방으로 둘러놓고 노래방 기계와 악기를 쓸 수 있는 음악방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작은 곳에서도 부족함이 없었는데, 오히려 큰 곳에서 공허함이 생겼다.


지금의 집이 영 마음에 들지 않게 되자, 괜히 예민하게 집 마감만 더 트집잡게 되었다. 물론 실제 하자(중문이 안 닫힌다거나)도 있었지만, 하자보다 더 큰 불만이 우리 마음으로부터 꿈틀댔다.



일체유심조라 했다. 모든 게 다 마음 속에 있다는, 원효대사 해골물. 겪어보지 않는다면 뜬구름 잡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진짜 그렇다. 아니, 정확히는,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거다. 스스로 자각하지 못 했을 뿐.


마음만 잘 먹는다면, 지금 처한 환경을 잘만 받아들인다면, 우리가 처한 곳에 누추한 곳은 없다. 반지하 자취방에서도 누군가는 플렉스를 부렸고, 6배 가까이 넓어진 새 집조차 누군가에겐 좁게 느껴지는 법이니까 말이다.


오직 스스로만 보자. 우리가 어디에 머무르든, 그곳은 빛날 거다. 우주는 우리를 중심으로 돌아가니까. 우리는 우주의 중심이니까.



어디든 무슨 상관이야,
내가 있으면, 무조건 그 곳은 빛나는데.


君子居之, 何陋之有. <子罕>

(군자거지, 하누지유. <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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