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 父母, 唯其疾之憂
나이를 먹어가기는 하나보다. 그 망아지 같았던 것들이 죄다 결혼을 하고, 어느덧 하나 둘 애를 낳아 키우고 있으니 말이다. 갓 성인이 되어 밤이고 새벽이고 부어라 마셔라 했던 새내기 시절이 얼마전인 것 같은데, 이제 모였다 하면 기혼자 투성이고, 새벽은 무슨 자정은커녕 아홉시 열시쯤 되면 슬슬 일어서게 된다.
자연스레 대화 주제도 바꼈다. 썸 타는 얘기, 소개팅 얘기, 연애 얘기가 뒤섞이던 술판에는, 주식 얘기, 아파트 대출 얘기, 부모님 건강 얘기가 가득하다. 바뀐 주제여도 어지간한 얘기는 어색하지 않게 끼어들 수 있겠는데, 감히 어설픈 흉내도 못 내는 주제가 있다. 2세 얘기다.
“야, 애 나오기 전엔 제발 몸 성하게만 나와라 한다니까? 지금은 뛰다니는 거 보면서, 건강히만 자라다오 하고.”
이 놈 입에서 이런 말 나오는 걸 듣다니. 이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소중하다며 그렇게 시간을 쪼개고 쪼개 운동을 하고 공부를 하고 여행을 다니던 애 맞나 싶었다. 자식이란 이런 건가. 사람을 아예 바꿔놓는 건가.
우리 아버지는 참 특이하신 분이다. 자연인이나 도인으로 사는 게 더 어울릴법한. 하지만 아버지는 아마 그렇게는 못 되실 거다. 속세에서 사셔야 할 거다. 자식들을 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당초에 아버지는 결혼을 할 생각조차 없으셨댔다. 시대를 앞서 간 비혼이라고나 할까. 다만 우스운 건, 그게 굉장히 빨리 깨졌다는 거다. 남자 나이로 스물셋에 결혼하셨으니 말 다 했지 뭐. 친구들 가운데서도 첫 손에 꼽을 정도로 이른 나이에 하셨다.
“아빤 결혼 안 하려고 했어.”
“근데 왜 하신 거에요?”
“느이 엄마 만났잖아.”
본인의 비혼 결심이 깨진 걸 어머니 탓으로 돌리는 아버지. 어머니는 옆에서 ‘또 저런다’며 틱틱대셨지만, 삐져나오는 웃음까지는 어쩔 수 없으신 것 같았다.
아버지는 애를 낳을 생각도 없으셨댔다. 좋은 사람을 만났으니, 둘이서 잘 살고 싶으셨단다. 그러다 어느 날, 산 정상에서 문득 깨달으셨다고 한다. 내 아이는, 내 아이면서, 동시에 아내의 아이라는 걸. 그리고 다짐하셨단다. 아내를 반쯤은 닮은 그 아이를, 꼭 봐야겠다고.
결론적으로, 아버지는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선택으로 나와 동생을 만난 걸 꼽으신다. 나를 처음 본 날, 아버지는 평화를 느끼셨다고 한다. 그리고 동생을 본 날에는 행복을 느끼셨다고 한다. PEACE, HAPPINESS. 아버지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우리 남매 이름이다.
라떼는 싸이월드가 날렸다. 요즘은 인스타니 트위터니 페북이니 많고도 많지만, 그 시절 SNS는 싸이월드가 꽉 잡고 있었다. 대체재가 없었다. 지금이 삼국시대라면, 그 때는 얼추 진시황 시대 쯤 될까.
그 시절에 싸이월드에서 유행하던 게, 바로 명언이었다. 아직 몇몇의 싸이월드식 명언들은 인터넷에서 밈으로 살아 숨쉬고 있는 것 같다. ‘난... ㄱㅏ끔... 눈물을 흘린ㄷㅏ...‘, ‘널 안 좋아하는 거?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음악만이 나라에서 허용한 유일한 마약이니까‘, ‘내가 두 명이었으면 좋겠어. 나 좀 안아주게’ 같은 것들이 그렇다. 그 땐, 그게 감성이었다.
다만 저게 대세였을지언정, 내 감성은 아니었다. 명언이든 감성글이든, 내 취향은 아니었다. 마치 민트초코나 고수처럼, 체질적으로 몸에서 거부하는 듯한 느낌. 저 즈음에 ‘오글거린다’는 말이 생겼을 텐데, 나 같은 사람에게 딱 맞는 표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드물게, 마음을 건드렸던 글도 있다. 디테일한 표현이야 조금 틀릴 수 있겠으나, 그 중 하나를 기억나는 대로 다시 적어보면 이렇다.
“우리 모두는 효자 효녀다.
우리가 자라며 아무리 큰 대못을 부모의 가슴에 박아도
갓난아이 때 부모를 바라보며 지어준 미소를 넘는 것은 없다.“
우리집 가훈은 ‘효’였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어른들께 더 잘 해야한다는 의무감이 나를 누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싸이월드에서 파도를 타다가 저 글을 본 순간, 마음이 괜시리 가벼워지고 부모님께 당당해졌다. 그래, 나는 효자였어! 하고 스스로 믿게 되었다.
그 믿음은 지금도 유효하다. 부모님이 나를 진짜 효자라고 여기실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PEACE고, 동생은 HAPPINESS인데, 최소한 얼추 효자 효녀 비슷한 무언가는 되지 않을까.
진짜로 애가 건강하기만 하면 되냐, 니가 못 이뤘던 걸 대신 자식이 이뤄줬으면 좋겠고, 그런 건 없냐는 물음에 친구가 말한다.
“야, 니가 애 낳아봐라, 그런 소리가 나오나”
아니, 모르니까 물어보지. 친절하게 알려주면 뭐 어디가 덧나나? 지도 애 낳은지 얼마 안 됐으면서! 억울해서라도 얼른 애를 봐야지, 이거 참.
그러니까 세상의 모든 이들이여! 우리 너무 부담을 가지지 말자. 우리가 잘 살아가고, 살면서 부모님께 또 건강히 웃어드리고.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할 일을 다 하는 것 아니겠는가. 애를 낳아본, 부모님들이 그렇다는데!
내 새끼한테 바라는 거 없어.
그냥 아프지만 않으면 돼, 제발.
父母, 唯其疾之憂 <爲政>
(부모, 유기질지우 <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