七. 先行其言, 而後從之
우리 아빠는 얼리어답터였다. 새로워보이는 기계를 불쑥 불쑥 가져오시곤 했다. 그 때는 내가 어렸을 때여서, 모든 것이 다 처음보는 거여서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언젠가는 아빠 손, 남자 치고도 꽤 컸던 그 손만큼이나 커다랗고 무거운, 새까만 돌 같은 걸 하나 가져오셨다. 돌멩이라고 하기엔 너무 크고, 바위라고 하기엔 너무 작은. 그게 바로 내가 처음 본 핸드폰이었다.
그 뒤로, 가끔 아빠한테 전화를 걸었었다. 우리집 안방에서 번호 몇 개만 누르면 언제나 아빠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게 좋았다.
하지만 그 날은 아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나는 전화를 걸었는데, 아빠는 받지 않으셨다. 신호음이 한동안 울리다가 어떤 아줌마가 뭐라 뭐라 하더니 삐- 비프음. 그리고는 계속 조용했다. 아빠의 목소리는 없었다. 어린 나는 심통이 났다. 나는 아빠랑 얘기하고 싶어서 전화를 했는데, 아빠는 내 목소리를 안 듣고 싶은가.
“(...바보)”
작게 속삭였다. 뿔이 난 상태였지만, 혹시나 수화기 너머 누가 있을지도 모른다 싶어 눈치를 보면서. 혹시나 했지만, 메아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바보!”
약간 더 크게. 한편으론 여전히 눈치를 보면서. 그러나 눈치를 본 보람도 없이, 이번에도 대답은 없었다.
“바보... 바보... 바보. 바보. 바보!!!!”
점차 소리를 높이더니, 이내 큰 소리로 바보를 외치고 전화를 쾅 끊어버렸다. 욕을 하지 말라고 배웠던 내가, 집 안방에서 전화를 하며 바보 소리를 내뱉는 건 일종의 반항이었다. 바보라는 건, 그 순간에 떠올릴 수 있었던 가장 심한 욕이었다.
그 날 저녁. 아빠가 집으로 돌아오셨다. 그리고 옷도 벗지 않으신 채 내게 다가와 귀에 전화기를 대주셨다.
“바보!!!!”
으악! 낮에 내가 남긴 소리였다. 나쁜 짓을 들킨 기분. 아니, 그런 기분이 아니라 그 때는 정말 나쁜 짓을 들킨 상황이 맞았다. 귀까지 뜨겁도록, 나는 부끄러움에 달아올랐고, 그걸 또 애한테 들려주냐며, 엄마는 웃으셨다. 음성사서함이라는 걸 그렇게 처음 알았다.
지금이야 모든 사람이 들고 다니지만, 그 때만 하더라도 핸드폰은 귀한 물건이었다. 어른들에게도 잘 없었는데, 하물며 애들이야. 중학교에 입학할 나이쯤이 되어서야 한 반에 몇 명 정도, 소위 노는 애들을 중심으로 슬금슬금 퍼져나가는 정도였다.
물론 핸드폰을 갖고 있어봤자 애들이라, 전화할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어차피 친구들 대부분은 핸드폰이 없었고, 그렇다고 업무적으로 얘기를 나눠야 할 거래처 상무가 있나, 아니면 직장 상사가 있나. 가장 많이 통화를 하는 사람은 결국 엄마고 아빠다.
지금처럼 핸드폰 보급률이 100%에 달하던 때가 아니었기 때문에, 친구들이 엄마 아빠와 대화하는 걸 들을 기회는 적었다. 가끔 오프라인에서 아무개 엄마와 아무개가 대화하는 걸 종종 목격하기는 했지만, 그건 그야말로 종종이었다. 휴대전화가 널리 퍼지면서야 비로소 친구들이 부모님과 통화하고 대화하는 소리를 듣는 횟수가 유의미하게 늘어났다.
그래서 아주 어렸을 때는 미처 눈치채지 못했는데, 자꾸 들으니 좀 이상했다. 애들이 자기네 엄마 아빠랑 전화를 하는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얘기하는 게 우리집이랑은 뭔가 달랐다. 위화감이 느껴졌다.
“응 엄마. 나 이제 학원 가. 응 이따봐.”
아, 반말이었다. 친구들 대부분은 부모님께 반말을 했다. 존댓말을 쓰지 않았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어른한테는 존댓말을 쓰라 했었다. 그렇게 배웠었다. 굳이 교과서 같은 얘기를 안 하더라도, 엄마고 아빤데, 어른인데, 존댓말을 쓰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당시 내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우리집과는 아예 다른 모습이 신기했다.
“야, 너는 왜 엄마한테 존댓말 안 해?”
이유를 묻는 나에게, 친구는 되물었다.
“응? 너는 엄마한테 존댓말 해? 왜?”
신기해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친구가, 친구는 내가. 서로 신기했다.
머리알이 굵어지면서 인간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났다. 예컨대 사촌동생들이 그렇다. 인간의 언어를 몰랐던 간난이들. 오직 뿜어내는 동력만이 가득차보였던 그것들이, 시간이 지나며 학습이라는 걸 하면서 말을 배워나갔다.
그러한 모습을 보며 문득 깨달은 게 있다. 애들한테는 존댓말이 이상하다는 거다. 반말이 자연스럽다는 거다.
이제 막 말을 하기 시작한 애는 ‘아빠’ 소리를 간신히 할지언정 ‘아버지’라는 단어를 말하지는 못한다. 단어가 아닌 문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단말마처럼 내뱉던 ‘까까’ 소리가 ‘까까죠’로 진화를 하는 건 마땅하지만, ‘저에게 과자를 주세요’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단순히 단어의 발음이 어렵다거나 문법 구조가 복잡하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다. 당연히 그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결정적인 건 언어 경험일 테다. 주변 사람들이 반말로 대화를 주고 받고, 아기는 그걸 들으며 말을 배울 테니 반말이 당연하다. 존댓말을 경험하는 비율은 반말에 비해 압도적으로 적을 거다.
“엄마, 근데 난 어렸을 때부터 존댓말 썼던 거 같은데.”
“응, 그랬지. 얼마나 예뻤는지 몰라. 지금과 다르게.”
“아 엄마! 아니 그게 아니라, 딴 애들은 다 지네들 엄마 아빠한테 반말하던데, 난 왜 존댓말을 했어요? 어떻게 가르쳤어요?”
그래서 여쭤봤다. 나는 기억을 못 하지만, 엄마는 기억하실 테니까. 아무리 우리 엄마가 건망증이 심해도, 첫째 자식한테 말을 가르쳤던 기억은 있으시겠지.
“엄마 아빠가 존댓말을 했지.”
“그게 무슨 소용이에요. 어차피 엄마랑 아빠는 서로 반말로 얘기했을 텐데. 나한테만 존댓말 써서 뭐해. 나한테 얘기하는 것보다 두 분이 대화하시는 게 더 많았을 거 아니에요. 애는 그걸 듣고 배웠을 건데.”
엄마는 얘 좀 봐라는 표정으로 다시 말씀하셨다.
“엄마 아빠가 존댓말을 썼다고. 집에서는 항상 존댓말만 썼어요. 아시겠어요?”
네? 그렇게까지 하셨다고요? 아니, 무슨.
“아니, 나한테 존댓말을 가르치려고 두 분끼리도 존댓말을 쓰셨다고요?”
“그렇다니까 그러네.“
와.
대박.
여운이 길었다.
돌이켜보면 존댓말만 그런 건 아니었다. 욕도 마찬가지였다. 우리집은 비속어 청정구역이었다. 부모님은 말을 거칠게 하지 않으셨다. 우리집에서는 ‘새끼’라는 말도 쌍욕 수준이었다. 어지간한 집에서는 표준어나 다름 없는 말이었을지도 모르는 ‘미친’이나 ‘자식’ 같은 말도 그랬다. 오죽하면 내가 응답이 없는 수화기에 대고 질렀던 가장 큰 욕이 ‘바보’였을까.
물론 내가 바른말 고운말만 썼던 건 아니다. 질풍노도의 시기, 남중-남고 테크를 타며 학교에서 욕설을 서슴지않고 내뱉곤 했다. 그래, 사춘기 즈음에 입이 걸어지는 건 어느 시대, 어떤 세대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서만큼은, 가족들 앞에서만큼은 우리말 지킴이가 따로 없었다. 집에만 들어서면, 비속어나 험한 말에 형언할 수 없는 죄책감이 들었기 때문에 습관처럼 튀어나오는 거친 말도 없었다. 그 죄책감은 아마 부모님이 만들어 심어두신 걸 게다. 우리집에서는 아무도 말을 험하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일상적인 말에 위화감과 죄의식을 느꼈을 게다. 엄마 아빠가 예쁜 말을 쓰는데, 그 밑에서 자라는 자식들이 어떻게 욕을 배워 지껄일 수 있겠는가.
세월이 지나고, 사회생활 속에서도 비속어를 쓰지 않는 나이에 이르니, 나는 집 안팎 모두에서 언어습관이 바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엄마나 아빠가 거친 말들을 쓰신다. 이제 자식들이 다 장성해서인지 ‘미친놈’이니 ‘지랄’이니 하는 말들을 쓰시는데, 이게 참 내 귀에 밟힌다. 입장이 바뀐 것 같다. 우습다.
부모님께 존댓말과 고운말을 배웠던 아이가 자라서, 어느덧 제 새끼를 만들 때가 됐다.
“우리 애는 존댓말부터 배우겠죠? 우리가 서로 존댓말하니까!”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존대를 한다. 첫 만남때부터, 연애할 때, 결혼한 지금에도, 쭉. 어떤 경우에도 서로를 존중하자는 마음에서다.
“그러겠죠? 우리 티비도 없애고, 책만 계속 읽는 건 어때요? 그래야 애가 우리 보고 따라서 책 읽지.“
존댓말에 이어서 책 읽는 습관까지. 아직 애가 생기지도 않았는데, 자식농사에 때이른 욕심을 내는 부부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
先行其言, 而後從之 <爲政>
(선행기언, 이후종지 <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