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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장밥 Sep 26. 2023

너도 너답게, 나도 나답게

九. 君君臣臣父父子子

자리를 옮긴 맥주집. 2차가 한창이었다. 아직 정식으로 발령을 받지 않은 수습 신분의 신규 공무원들과 만나는, 일종의 대면식이었다. 초면이 많아 서먹거리던 1차와는 달리 맥주가 몇 잔 들어가자 서로가 조금은 편해진 상태였다.


신규 공무원 누군가의 질문.


“가장 바람직한 공무원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진짜로 궁금해서 한 질문은 아니었을 거다. 선배들이랑 있는 자리에서 사운드 채우려고 물어본 게 분명했다. 그래서 가만히 있었다. 우리 기수 누군가가 대답해주겠지, 하고 못 들은 척 하고 있었다. 아이고야, 그런데 하필 눈이 마주쳐버렸다. 질문자와 눈이 마주치자,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나를 쳐다보았다.


이렇게 된 거 내가 대답은 해야겠고, 에이 그래, 그냥 가볍게 농담으로 넘기자. 어차피 진지한 대답을 원하는 게 아니잖아. 질문의 목적에 맞춰서, 오디오나 꽉 차게 만들어줘야지, 했는데, 아니 날 보는 그 눈들이 왜 이렇게 초롱초롱한 것인가. 회사에서 몇 년 굴러서 혼탁해진 눈빛과는 질적으로 다른 반짝임이었다.


결국 나는 분위기를 못 맞추고, 무게 있는 이야기를 해버리고 말았다.


“저도 공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후배님들께 뭐 그렇게 대단하게 드릴 말씀이 있겠습니까. 어차피 진짜 약간의 시간만 지나면 저보다 훨씬들 잘하실 텐데요. 다만...”


쿠션을 잔뜩 깔고. 이제 본론이다.


“공무원은 아이덴티티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색깔이 없는 게 공무원다운 겁니다.”


질문자도 아차 싶었을 거다. 괜히 물어봤다. 이렇게 재미 없는 얘기를 들으려고 한 게 아닌데.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부연설명을 이어나간다.


“민간에서는 무언가 결과물이 나왔을 때, 거기에 이름표를 붙이지 않아도 ‘아 이건 누가 한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이 진짜 인재죠. 그게 브랜딩이잖아요. 박찬욱 영화는 누가 봐도 박찬욱 꺼고, 이병헌 연기는 누가 봐도 이병헌 꺼에요.


그런데 공공에서는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민간은 일부 사람들만을 고객으로 삼고, 특정인들만 향유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면 그만이지만, 우리는 모두를 위한 정책을 해야해요. 그게 행정이죠. 우리는 민간과 완전 반대를 지향해야 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우리가 쓴 보고서에 홍길동이 들어가든 임꺽정이 들어가든 전혀 상관이 없어야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내놓은 결과물에, 우리의 이름표를 붙이든 옆 부서 아무개의 이름표를 붙이든 국민들 입장에서는 똑같아야 해요. 담당자에 따라서 휘청이는 행정은 결코 바람직한 행정이라고 볼 수 없을 겁니다.“


이왕 루즈한 이야기를 하게 된 거, 끝까지 하자는 생각에 말을 더했다.


“정부는 관료제(bureaucracy)잖아요. 우리는 관료화된 조직을 굴리는 부품들이고요. 부품은 언제든 갈아끼울 수 있어야 하고, 갈아끼워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조직이 내놓는 결과물이 늘 일정수준을 유지할 수 있죠. 그래야만 하는 게 행정이고, 그래야만 국가라는 시스템이 제대로 동작을 하는 거고요. 그래서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그 위치와 쓰임에 맞는 역할을 반듯하게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품이 브랜딩을 한다면, 그건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네요.“


말을 더 보탤까 하다가, 이만큼만 해도 충분히 꼰대짓이다 싶어서 그만 마무리를 했다.


“뭐,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고요. 장단점도 있을 거고, 각자 생각도 다르겠지만.”


문득 참 우스웠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라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이런 말을 하다니. 불과 십 여 년 전만 하더라도 생각지도 못 한 일이다.



시골에서 올라와 서울 한복판에 자리잡으신 할아버지와 할머니 덕에, 어려서는 지리적으로 많은 혜택을 받으며 자랐다. 백화점만해도 그렇다. 이쪽으로 가면 현대백화점과 그랜드백화점이, 저쪽으로 가면 롯데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이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하지만 지리적으로만 그러했다. 내게 있어 백화점은 쇼핑의 공간이 아니었다. IMF를 겪으며 궁핍해진 집안사정 탓에, 백화점에 갈 수는 있었을지언정 거기에서 무언가 물건을 사기는 어려웠다. 가끔 지하1층 특설판매장에서 시장처럼 매대에 물건을 쏟아부어놓고 파는 세일행사를 한다면 모를까, 일반적인 때에 보통의 가격을 주고 물건을 사는 건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백화점은 그저 테마파크였다. 입장료가 무료인 테마파크. 물건들이 예쁘게 놓이고, 그 위로 조명을 쏘아대는 블링블링한 공간. 그게 백화점의 전부였다.


불행한 것은, 머리가 굵어지며 그마저도 변질되었다는 거다. 쇼핑은 못 하더라도 예쁜 테마파크기는 했던 백화점이, 어느새 자격지심과 분노가 느껴지는 적대적 공간이 되어 있었다. 우리‘만’ 못 산다는 이유에서였다. 우리 가족은 백화점에서 물건 살 생각조차 못 하는데, 누군가들은 천냥백화점에 온 것처럼 부담 없이 물건을 담지 않는가. 백화점 안을 거니는 사람들의 손에는 로고가 찍힌 봉투가 그득히 들려있었고, 나는 아무것도 쥐지 못한 두 손이 수치스러워 괜히 주먹을 꽉 쥐곤 했다. 그렇게 꽉 쥔 주먹을 허공에라도 휘두르고 싶었지만, 그러지도 못 했다. 분노는 갈 길을 잃고 안에 쌓였고, 가난은 내 마음을 더 삐뚤게 했다.


그 시절에 가장 싫어했던 말 중 하나가 ’답게 살라‘는 것이었다. 사회라는 건 정교하게 만들어진 기계 같아서, 구성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본인의 역할을 잘 수행하면, 이 사회는 잘 굴러가고 개인도 행복해진다는 소리. 그러니까 회사 사장이면 사장답게, 학생이면 학생답게, 급식실 아주머니면 아주머니답게 살라는 거였다.


이게 참 싫었다. 이미 사회에서 꿀을 빨고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소리로 들렸다. 지금이 좋은데 왜 그래, 앞으로도 꿀 빨고 싶으니까 내 꿀을 뺏지마, 그냥 지금대로 살아, 너는 너 자리에서 그렇게 구르고, 나는 내 자리에서 이렇게 룰루랄라할게, 이게 사회야, 라는 걸로 들렸다. 즉, 사회에서 부와 권력을 차지한 기득권층이 본인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사회적 약자나 피지배층에게 ‘답게 살라’고 강요하는 걸로 보였던 거다.


나중에, 그러니까 고등학교 2학년 쯤 되어서야 비로소 배운 것 같다. 이게 ‘갈등론’이라는 거라고.


이 사회가 오직 싸움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 그렇게 늘상 피곤하게만 굴러가지 않는다는 걸 배운 건, 그로부터 15년 가량이 더 흘러서다.



사무실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번호가 010으로 시작하는 걸 보니 민원인인가보다.


“ㅇㅇ과 ㅁㅁㅁ사무관입니다.”


공무원 모드로 전화를 받았다. 모르는 사람인 건 분명한데, 전화기 너머 들리는 소리가 왠지 익숙했다. 아, 생각났다. 저번에 이미 한번 통화를 했던 민원인이었다. 자녀에게 안 좋은 상황이 닥쳤고, 도움을 청하는 전화를 하셨었다. 안타깝게도 직접 도와드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내가 확인한 선에서 최대한의 정보를 제공해드렸던 기억이 났다. 뭐가 잘 안 풀리셨나.


“하이고, 맞구나. 감사햅니다. 감사해여. 감사하다는 말씸 드릴라꼬 전화했심니더.”


연신 감사하다는 어머님. 공무원이 이렇게 악플이 아닌 선플을 받는다는 건 정말 드문 일이다.


스토리는 뻔했다. 당시 내가 알려드렸던 정보로 여차저차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는, 덕분에 자녀가 고비를 넘기고 일상으로 복귀해 지금까지 안정적으로 잘 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아유, 아닙니다. 공무원이 그냥 해야 할 업무를 한 겁니다. 누구라도 이렇게 했을 텐데, 직접 전화까지 주시니 제가 더 감사하네요.”


겸손이 아니라, 정말 그냥 업무를 했었을 뿐이다. 내가 맡은 업무와 유관한 민원이었고, 민원인에 대한 응대도 마땅히 공무원이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아니라예. 제가 선상님께 전화를 하기 전에 을매나 여기 저기 전화를 했는지 아실람니까. 한 시람도 그렇게 알려준 분이 없었어예. 진짜 감사햅니다.”


하지만 그게 누군가에겐 특별한 호의로 비춰졌나보다.


아마 민원인이 하셨다던 이전의 통화들에서는 응대했던 공무원들이 이 업무를 담당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담당자인 내게로 민원전화를 토스했던 걸거다. 그런데 그게 마음이 급박했던 누군가를 더욱 조급하게 만들었던 거다. 그래서 고맙다는 전화를 다시 할 정도로 나의 응대가 기억에 남으셨던 거고. 어쨌든 해결이 되었으니까.


“이 번호로 전화하시면 항상 제가 받으니까요,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또 전화하세요. 감사합니다.”


그 날은 온종일 기분이 좋았다. 칭찬받을 일을 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내 일을 했었을 뿐인데 말이다.



사람은 무언가 자신과 크게 다르면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든다고 한다. 발이 없는 뱀, 발이 많은 지네, 피부가 차가운 도마뱀, 겉이 딱딱한 바퀴벌레 같은 것들을 그래서 싫어한다고 한다.


바꿔 생각하면, 우리는 그래서 사람을 좋아하는 게 아닌가 싶다. 요즘은 우스갯소리로 E네 I네 하긴 하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인간이라면 알게 모르게 다 외로움을 탄다. 칼 세이건의 말처럼 이 공허한 우주에서 사랑이란 게 없다면 인류는 지극히 외로워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사회라는 것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사회에는 싸움도 있을 거고, 갈등도 있을 거고, 지금 가진 꿀단지를 놓지 않으려는 자들의 음흉한 계책들도 도처에 깔려있긴 할 테지만, 그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게 사랑일지도 모른다. 사람의 사람에 대한 애정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회를 사람에 대한 애정으로 켜켜이 쌓은 고층탑으로 본다면, 우리가 우리답게 살아가고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이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위하는 행동이다. 그 자체가 사랑이다.



다시 맥주집. 본인의 색이 없는 공무원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내 말에, 가만히 듣던 수습 공무원 한 명이 되묻는다.


“그럼 충주맨은요? 그 분은 개인 브랜딩을 엄청 잘 하신 거 아니에요?”


 엄청난 반례. 충주시 김선태 주무관님. 재반박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일을 잘 하신 분. 홍보라는 본인의 업무를 혁신적으로 초과달성하신 분.


이거 뭐라고 대답하지, 대답이 탁 떠오르지 않아 버퍼링이 걸려있는데,


“아유, 술자리에서는 술자리답게! 공무원 얘기는 회사에서 하고 짠 합시다. 짠!”


옆에 앉은 동기가 동기답게 타이밍 맞춰 잘 구원해주었다. 역시 사회는 서로를 향한 애정으로 이루어진 게 분명하다.


너도 너답게, 나도 나답게

君君 臣臣 父父 子子 <顔淵>

(군군 신신 부부 자자 <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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