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수련회라는 말을 쓰려나 모르겠다. 수학여행 말고 수련회. 수학여행이 비교적 자유로운 단체 여행 느낌이라면, 수련회는 말그대로 심신의 수련을 하러 떠나는 극기훈련에 더 가깝다. 수련회에서는 아침마다 모래 운동장 위에서 집합을 했고, 교관은 논산 훈련장 조교처럼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우리를 굴렸으며, 한 방에서 열댓 명이 이불을 깔고 자는 유스호스텔이 숙소였다. 우리가 낸 수련회비 얼마를 누구 주머니로 삥땅쳤다더라 하는 소문도 있긴 했지만(어쩌면 일부는 사실이었을지도!), 어쨌든 수련회만의 감성이 있었다.
그 날은 수련회 셋째날 아침이었을 거다. 초등학교 5학년 수련회의 셋째날 아침. 전날과 마찬가지로 수련회에 온 우리 학교 학생 수 백 명이 일렬로 도열해있는데, 단상에서 갑자기 내 이름이 불렸다. 어제 저녁까지의 그 차갑던 교관의 목소리가 아니라, 어딘가 부드럽고 온기가 섞인 소리로.
“간...장밥. 간장밥 학생 있나?”
한참 멀리 떨어진 저 앞 강단에서 날 찾는 소리. 아니, 갑자기 왜 날 찾는 거야.
앞뒤로 늘어서 있던 우리 반 애들은 나를 돌아봤고, 나는 그 수많은 시선 앞에서 큰 소리로 ‘네’를 외칠 용기가 없어 조용히 한쪽 손을 들었다.
“앞으로.”
교관은 날 발견하곤 앞으로 불러냈다.
뭐지, 대체 뭐지. 갑자기 왜 나를 부르지. 이쪽으로는 천상 범생이였기 때문에 선생님들 모르게 술을 챙겨가기는커녕 교관이 소등하는 시간에 맞춰 바로 곯아떨어졌던 나다. 불려나가 혼날 정도로 잘못한 게 없는데, 아니 크건 작건 잘못한 게 없던 거 같은데, 도대체 뭘까 싶었다.
강단에 다다르자, 계단 몇 개 정도 높이의 단 위에 있던 교관이 먼지가 일지 않게 툭 뛰어 내리더니, 내게 두 번 접힌 A4 용지 하나를 하나 건냈다.
“학생한테 부모님께서 보내신 거니까, 확인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도록.”
말을 마친 교관은 다시 단상 위에 올랐고, 나는 접혀 있던 종이를 펴서 읽으며 뛰다시피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종이에는 짧은 말이 하나 적혀있었다.
[너는 우주의 중심이다.]
뛰면서 이는 바람에, 종이가 가벼이 펄럭였다.
언젠가 부모님이 말씀하신 적이 있다. 우주라는 건 물리학적으로 풀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그건 철학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우주가 무한하다는 것은 우주에 중심이 없다는 것이지만, 동시에 그 어떤 곳이든 우주의 중심이 될 수가 있다는 말이라고.
그러니까 이 세상에는 60억 개의 우주가 있다고. 한 사람 한 사람, 우리는 모두 우주의 중심이라고.
조금 다른 의미지만, 이제 한창 자라고 있는 초등학생쯤 되는 자녀는, 부모의 눈에 정말 우주의 중심으로 보였을 거다. 무한한 우주처럼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 존재. 앞으로 무엇도 할 수 있고, 무엇도 될 수 있는 존재. 그게 당신들이 보는 당신들의 자식이었을 테니까.
당시에는 나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그리는 내 미래는 어두운 적이 없었다. 아니, 어둡게 그리는 법을 몰랐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하다. 상상 속에서의 나는 늘 내가 되고 싶어하는 직업을 갖고 있었고, 마땅히 그렇게 이루어지리라 생각했다. 장래희망이 참도 많이 바뀌었지만, 그 어떤 것이든 못 한다는 생각은 아예 들지 않았다. 힘찬 자신감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것도 아니었지만, 당연히 그렇게 되겠거니 생각했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진지하게 고민하지 못하고 너무 얕게만 생각했었나보다.
지금의 나는 그 때의 나에게 참 창피한 모습이다. 한없이 초라하고 수치스럽다. 꿈꿨던 수많은 장래희망들은 상온에서 잡히지 않는 은빛 수은처럼 내 손에서 빠져나갔다. 5년 간의 수험생활 끝에 간신히 합격한 공무원만이 내가 이룬 유일한 업적이다. 그마저도 회사 생활을 견디지 못 해 몇 달 째 출근을 못 하고 있는 상황이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께는 지극히 감사하다. 비록 무한한 가능성을 터트리지는 못 한 나이지만, 그나마 큰 탈 없이 지금에까지 이를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부모님 덕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 우주의 중심은 나였지만, 부모님의 우주에서는 그 분들이 중심이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 때, 젊은 시절에는 그러셨겠지. 그들 자신을 중심으로 한 우주에서 사셨겠지. 그러나 자식을 낳고 나서는 당신들의 우주를 포기하셨을 거다. 생활이 녹록치 않았기 때문이다. 자식을 중심으로 삼고, 기꺼이 스스로를 우주의 변두리로 던져두셨을 거다. 그 상황에서 나를 먼저 생각하고, 나를 치켜세워주신 부모님이다. ‘너는 우주의 중심’이라며 말이다.
부모님께 감사해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이제 나는 인생의 다음을 그린다. 우리 부모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다음을 생각한다. 2세 얘기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다는 것은 또 하나의 우주가 창조되는 것인만큼, 경이롭고 경외로울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새로운 우주가 창조되면서, 내가 중심인 나의 우주는 종말을 고할지도 모른다. 우리 부모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아이가 나오면, 그리고 그 아이가 자라서 엄마 아빠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때가 오면, 나도 꼭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우리 부모님이 그러셨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