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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Aug 23. 2019

지소미아 사이다 잘 마셨으니 이제 살찔 걱정을 해보자

#지소미아

<지소미아 사이다 잘 마셨으니 이제 살찔 걱정을 좀 해보자>

1.
    지소미아 종료 결정은 반일 감정으로 불타오르던 반도 사람들의 마음에 속 시원한 사이다를 뿌려주었다.
    일단 시원하게 지르긴 했는데 이제 정신 차리고 일련의 과정을 되짚어 봐야 한다.
    한국의 결정에 미국은 두 차례 입장을 발표했다.
    첫 번째는 일반적인 한일 갈등 시 전형적인 '우리는 참견 안 할 테니 늬네끼리 해결해라'라는 스탠스였다. 정확한 워딩으로 "한일 이견 해소 희망"이라는 반응을 내놨다.
    그러다 몇 시간 뒤 "강한 우려와 실망"이라며 입장을 다시 내놓았다.
    속사정이 어떻게 돌아갔는지는 모르겠으나 미국 국방부에서 좀 더 강한 입장이 필요하다는 자체 의견과 일본의 앵앵거리는 물밑 요청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은 약간 충격에 휩싸인 모양새다.
    아베 총리는 한국 지소미아 종결 발표와 관련한 언론의 질문에 아무런 코멘트를 하지 않았다. 아마도 예상 밖의 결정이었던 듯하다.
    미국 형아 말 잘 듣는 일본 입장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을 거다.

2.  
    미국과 일본 양측의 반응으로 봤을 때 한국의 결정이 약간은 예상 밖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미국은 일본 수출 규제와 화이트리스트 건에서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는데 일본의 편에 섰다기보다는 '그래. 둘이 싸워봐라'라는 마인드로 문제를 대했던 것 같다.
    미국은 동맹국(이라 쓰고 X붕으로 인식하는 미국)간 갈등보다는 미중 무역전쟁과 대선 등 다른 이슈에 더 집중했다.
    일본은 이번 결정이 불러올 후폭풍을 우려하는 입장인 것 같다.
    일본 내각과 여당인 자민당은 북한의 위협과 안보 악화를 엮어서 안보장사를 많이 해왔는데 지소미아의 실효성 여부를 떠나서 일본 여론은 이번 이슈가 안보 분야에 심대한 위협이라고 인식할 수 있다.
    안보장사란 원래 그런 거다.
    북풍 공작이 위험한 것은 '위험해, 무서워, 쟤네 쳐들어오면 어떡하지?'라고 공포감을 조성하다가 이번 지소미아처럼 예상 밖의 일이 발생하면 안보 정책 미흡에 대한 책임도 크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미국이 위성으로 북한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들여다보고 한미일 정보공유약정(TISA·티사)이 체결된 상황에서 지소미아의 효용성이 얼마나 큰지는 내 분야가 아니라 잘 모르겠지만, 일본 국민이 받아들일 불안감의 크기는 효용성과는 크게 관련은 없어 보인다.
    
3.
    그렇다면 한국은 앞으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나.
    외교 무대에서 허를 찌르는 수는 우선 당장 통쾌하기는 한데 뒷수습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외교라는 것은 굉장히 보수적인 매커니즘으로 움직인다.
    동맹, 비동맹, 적대 관계라는 틀 안에서 뻔한 결정과 뻔한 입장을 주고받는 게 대부분이다.
    이번 지소미아 종료 결정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한미일 동맹관계가 깨졌다고 보긴 어렵다.
    사실 일본의 수출 규제·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와 한국의 지소미아 종결도 미국이라는 테두리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옵션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상황은 한일이 한방씩 주고받았다고 보면 된다.
    일본의 수출 규제와 화이트리스트 배제 때와 달리 미국이 '대노'를 한 것이 조금 다르다면 다른 부분이다.
    여기서 미국이 '그건 너무했다'라고 해서 한국이 급히 물러서는 것은 오히려 안 하느니만 못한 상황이니 일단은 패를 다시 주워담을 필요는 없다.
    대신 일본의 다음 수를 지켜봐야 한다.
    일본은 아마도 비자와 기업 송금 문제를 들고나올 가능성이 크다.
    인정하기 싫지만, 한국은 일본보다 쥐고 있는 패가 적다.
    쥔 패가 적을 때는 역시 국난 극복 모드로 들어가며 버티는 수 밖에 없다.
    중국의 대장정, 북조선의 고난의 행군, 우리 금모으기 운동을 벤치마킹해 자력갱생에 힘을 쏟아야지 별 수 없다.
    통쾌한 한 방을 날린데 대한 값을 치르는 것이라고나 할까.
    한 방 질렀으면 상대가 퍼붓는 주먹을 얻어맞을 준비를 해야는 것이다. 최대한 가드를 올리고 맷집으로 버텨야 한다.

4.
    그러면 언제까지 버텨야 할까?
    현실적으로 말하면 미국이 만든 룰 위에서 미국의 두 동맹국이 싸움이 붙었으니 레프리 스탑이 나오거나 판정 승부가 나는 12라운드가 끝날 때까지는 이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사대주의적' 발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처한 현실이 이런 것을 어찌하랴.
    특히나 힘의 논리로 돌아가는 냉혹한 국제정치에서 이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미국도 동북아에서 중국 견제 전략을 펴는 상황이라 한국이란 카드를 버릴 수는 없다.
    지금은 아니지만, 한국의 효용 가치가 급상승하는 파도가 칠 때가 반드시 있다. (북한 이슈라던가 북한 이슈라던가 북한 이슈라던가)
    그때를 잘 기다렸다가 일본의 안보 불안이 극대화하고, 미국의 개입 의도가 분명해질 때 딜을 해야 한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칼을 뽑은 이상 그 칼을 고대로 다시 칼집에 넣으면 국제 호구가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미국이 한국을 배제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막장까지 가진 않을 것이라 믿고 미쳐 날뛰어 볼 수 있다.
    혹여 미국이 한국 현대사에서 수차례 그랬듯 정권 교체 공작을 펼 수도 있다.
    이를 눈치채고 못 채고는 국민의 몫이다.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면 정권은 교체될 것이다. 그러면 한국은 다시 일본에 굴욕적인 패배를 맛보고 '미>>>>>일>>>한' 구도를 받아들이고 살아가야 한다.

5. 결론
    지소미아 때문에 중국에 일이 없다. 그래. 난 이런 글이나 쓰며 쉬고 있다. 개꿀.

++으니야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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