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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Oct 10. 2019

할머니와 아기와 강아지

#에세이

할머니와 아기와 강아지

    요즘 행복한 순간이 언제였나 자꾸 떠올려본다.

    오늘 친한 기자 선후배가 있는 단톡방에서 할머니 이야기가 나왔다.

    후배는 이미 귀임했고, 선배는 나처럼 연쇄임기연장마로 베이징에 뼈를 묻을 기세로 베이징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시작은 후배 기자가 친구 결혼식에 간다는 이야기였는데 어느새 요샌 결혼식 갈 일이 거의 없고, 부모상 소식을 많이 듣는다로 끝이 났다.

    그러다가 우리 집은 양가 할머니가 모두 살아계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선배는 호수는 증조할머니가 두 분 다 살아계신 거니 참 복이 있다고 했다.

    사실 호수는 우리가 처가에서 분가할 때까지 증조할머니인 노상옥 여사가 돌봐주는 때가 많았다. 장모님도 많이 봐주셨지만, 집에 항시 계시는 할머니가 호수 밥 먹이는 거부터 재우는 것까지 참 살뜰히 보살펴 주셨다.

    거의 3살 때까지 증조할머니와 함께 지냈는데 둘이 있던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종갓집 셋째 며느리인 노상옥 여사는 장모님이 계심에도 매일 새벽 부엌에 들어가셨다.

    나를 닮아 잠이 없는 호수는 부엌에서 '달그락달그락' 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면 부스스 일어나 네발(?)로 기어서 부엌으로 나갔다.

    잠시 뒤에 들리는 "저리 가, 저리 가, 여기 다쳐. 엄마한테 가"하는 할머니의 탁한 아침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방문을 열고 나가보면 항상 눈에 들어오는 사랑스러운 그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환하지도 어둡지도 않은 아침 볕이 부엌 창으로 들어오고, 도마 앞에 선 노 여사와 그 옆에서 할머니가 던져준 양은 냄비를 가지고 노는 호수의 모습은 그 자체로 그림 같았다.

    '노인과 아기'

    그때는 그냥 좋았는데 오늘 다시 떠올려보니 참 행복한 순간이었구나 싶다.

    이제 아흔이 넘은 노 여사가 언제까지 호수와 추억을 쌓을지 모르겠지만, 그날들의 기억은 내 머릿속에 아주 선명히 남아있을 거다.

    강아지와 아기는 어떤가.

    이제는 한국으로 떠난 검고 커다란 멍뭉이 무무와 아이들이 서 있는 장면은 생각만 해도 미소가 절로 난다.

    얼마 전 호수와 친해진 정봉이도 마찬가지다.

    천진난만한 두 생명체가 가까이 있기만 해도 행복의 기운이 뿜뿜 뿜어져 나오는 게 행복이 차고 넘치는 주머니를 푹하고 누르면 이럴까 싶다.

    서로 마주 보고 웃는 강아지와 아기.

    특별한 수사를 붙이지 않아도 행복이란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을 떠오르게 한다.

    둘 모두 애정을 갈구하지만, 애정을 바라는 대상에게 민감하게 안테나를 세우는 것도 사랑스러운 점이다.

    그런 두 존재가 서로를 좋아한다고 고백하듯 부둥켜안는 모습을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기분 좋은 대화로 시작한 오늘도 행복한 순간으로 기억되겠지.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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