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속에서 하는 명상. (Full catastrophe living)
울진읍내는 하루 종일 탄 내가 났다. 하늘은 재를 뿌린 듯 뿌연 먼지로 뒤덮여 있었고, 그 뿌연 먼지를 가르며 헬리콥터가 쉴 새 없이 드나들고 있었다. 소음으로 느껴졌던 프로펠러 소리는 어느새 배경음이 되어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출근길에 소방차들이 줄을 지어 이동하고 있었고, 군인을 실은 버스들이 군데군데 정차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척추였던 7번 국도는 화마(火魔)가 지나간 흔적들이 즐비했다. 아예 다 타버린 곳이 있었고, 듬성듬성 나무 몇 그루만 보이는 곳도 있었다. 매일 출퇴근하는 길이 며칠 만에 달라져 있었다.
"형 제가 출장 가서 진료했던 마을 몇 군데가 아예 다 불타서 없어졌어요.."
북면에 있는 공중보건의 후배가 허탈해하며 연락이 왔다. 후배는 맨 처음 불길이 난 곳에서 가까이에 있었었다가 대피령을 듣고 가까스로 몸을 피했다. 주말 이후에 후배가 접한 북면의 모습은 더 많이 달라져 있을 터였다.
보건소장님이 보건지소를 방문했다.
"전쟁과 같은 시기지만 이럴수록 마음을 잘 다잡고 환자, 민원인들에게 최선을 다 해주세요."
소장님은 내 손을 힘줘서 잡으시며 다시 한번 더 잘 부탁한다고 말씀하셨다.
이 와중에 코로나 알림 문자는 경상북도 신규 확진자가 7,514명이 나왔고 울진은 91명이 나왔다고 알려주고 있었다.
이것 말고도 휴대폰은 쉬지 않았는데, 내가 울진에 있는 걸 아는 지인과 친구들이 연락을 했다. 특히 부모님은 더욱 걱정이 많이 되시는 듯 몇 시간마다 안부를 여쭤보셨고 실시간 뉴스를 보면서 상황을 잘 지켜보라고 신신당부하셨다.
뉴스는 울진 뉴스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식이 나오고 있었다. 며칠 있으면 열릴 대통령 선거에 관한 기사,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관한 기사들이 있었다. 기사를 훑고 있으니, 다시 재난 문자 알람이 울렸다. 대흥리에 있는 사람은 대피하라는 재난 문자였다. 내 집과 몇 k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혼재된 수많은 외부의 신호 자극들이 경고를 보냈다. 청각, 후각, 시각의 통로를 통해서 내 마음을 찔러대고 있었다. 신호에 나도 반응 하기 시작했다. 무언가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불안한 마음과 미래에 대한 걱정들이 올라와서 그것들에 사로잡혔다.
'불이 여기까지 들이닥치면 어떻게 하나?'
'뭐를 들고 나와야 하나? 내 집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지?"
'담뱃불이 원인이라는데 왜 흡연자들은 담뱃불 처리를 제대로 안 하는 거지?'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었고, 생각은 나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진정이 되겠다 싶으면, 매캐한 연기가, 프로펠러 소리가, 휴대폰의 알람이 경보를 보내고 있었다. 하나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감정들과 생각들에 매몰되려는 찰나 내가 불안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앉은자리에서 자세를 가다듬고 심호흡을 한 번 했다. 눈을 감고 명상을 시작했다. 나의 내면을 바라보며 떠오르는 생각들을 판단하지 않고 관찰했다.
나는 현재의 상황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었고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그 생각들이 마음껏 뛰놀도록 관찰한 뒤에 다시 지금 이 순간의 호흡으로, 감각으로 내 신경과 주의를 가져왔다.
코끝으로 드나드는 공기가 드나드는 것을 알아차렸다.
호흡에 따라서 내 배가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지금 앉아 있는 곳의 의자와 엉덩이의 감각, 발의 감각을 인지했다.
생각들과 마음은 계속해서 변해갔다.
그렇게 되자 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되고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놀라운 것은 나는 불안한 마음을 가졌을 뿐 그것에 집중하느라 실질적인 행동은 취하지 않고 있었다. 불안한 마음이 든다고 해서 내가 산불을 끄러 갈 수도 있는 게 아니었고, 산불을 내 마음대로 꺼뜨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바꿀 수 없는 것들에 마음을 쓰고 신경을 쓰느라 무엇을 제대로 해야 할지 준비하지 않고 있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서 내가 있는 곳까지 불길이 들이닥친다면 중요한 것들을 챙겨 놓고 대피하는 게 우선이었다.
1. 자동차에 기름을 가득 채워놓았다.
2. 간단한 옷가지들과 귀중품을 챙겨 차 안에 넣어두었다.
3. 일정 시간마다 안전문자와 뉴스를 체크했다.
정리해 보자면 이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대비를 해놓고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생각을 접어두게 되자, 미래에 끌려다니지 않고 지금 있는 이 순간에 정신을 모을 수 있게 되었다.
예전이었다면 멘탈이 꽤나 흔들렸을 텐데, 이 와중에 중심을 잡고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해내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건 모두 전적으로 평상시에 명상을 한 덕택일 것이었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온갖 재난'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방법을 학습하고 훈련해 가도록 하였다. 재난을 가슴에 안고 살아 나가면 인생의 폭풍우에 실려 힘과 희망이 파괴되거나 날아가 버리지 않고 오히려 인생의 폭풍우가 삶의 풍요로움과 변화 속에서 때로는 고통과 더불어 어떻게 살아가며, 어떻게 성장하고, 어떻게 치유되어 나아가는가 하는 것을 가르쳐 줌으로써 우리를 보다 강하게 해 준다. 이 책에서 우리는 자신이나 세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보는 법과 우리의 신체, 생각, 감정, 지각을 새롭게 운용하는 법을 배우고 나아가 우리가 삶의 균형을 찾아 유지하는 훈련을 할 때 우리 자신을 포함해서 매사를 좀 더 즐기는 방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
-존 카밧진, 마음 챙김 명상과 자기 치유 上, 학지사, 2013, 51p-
마음 챙김 명상을 세상에 알린 존 카밧진의 저서 "마음 챙김 명상과 자기 치유"는 원저의 이름은 Full Catastrophe living이었다. 제목 그대로 삶의 재난을 명상을 통해 어떻게 지혜로 마주하게 할 수 있는 가를 알려준다. 언급했던 것처럼 인생에서 크고 작은 재난을 피할 수 없다. 다만 그 재난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는 것이다.
매일 일정 시간 동안 마음 챙김 능력을 배양하기 위한 공식 명상과 일상의 행위들에 마음 챙김해 가는 연습을 함께하는 것은 우리의 심리계좌에 예금을 하는 확실한 방법 중 하나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끔찍한 어려움과 고통스러운 상실과 도전을 겪은 후 "마음 챙김 수련이 없었더라면 내가 무슨 질을 저질렀을지 모르겠어요"라고 나에게 말해 왔는지 모른다.
-존 카밧진, 마음 챙김 명상과 자기 치유 下, 학지사, 2013, 51p~52p-
나도 만약 수련을 안 했더라면 지금 어떤 마음가짐이었을지 궁금하다.
여전히 울진읍내는 하루 종일 탄내가 난다.
나는 진료실에서 나를 찾아오는 환자들을 정성스레 대했고, 책을 보며 공부를 했다. 그리고 진료가 끝나고 난 뒤에 운동을 갔다 오고 명상을 했다. 하루빨리 비가 내려 산불이 진화되길, 집을 잃은 분들이 안정을 찾을 수 있길 기도를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