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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풀 Oct 10. 2024

인천공항에서 캐리어가 박살 났다.

일상에 명상 스물아홉 스푼

캐리어가 박살이 났다.


결혼식을 마친 다음날 신혼여행을 가기 위해 공항버스에서 인천공항에 내리자마자 생긴 일이었다.


여행은 아직 시작도 하지 못했다.


작년에 샀던 28인치 커다란 캐리어 지퍼가 찢어지며 박살이 났다.


찢어지며 빈 공간으로 억지로 넣었던 작은 짐들이 새어 나왔다.


캐리어에 미련이 있는 건 아니었다.


작년 베트남 한시장에서 60만 동(원화로 32,000원)쯤 되는 저렴한 것이었으니까.


이제 막 시작하는 행복한 신혼여행이 문제로 시작한다는 것에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제 아내가 된 (구) 여자친구의 동공이 흔들린다.


그녀의 동공 속에서 그전에 했던 대화가 떠오른다.


"베트남에서 산 거 진짜 믿을 수 있는 거야?"


"3만 원 밖에 안 해도 이거 튼튼하다니까? 봐봐"


나는 튼튼하다며 호언장담했고 몇 개의 짐을 넣어 캐리어를 같이 끌고 다니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그전에 그녀를 안심시켰던 짐의 용량은 모두 적정용량 미만이었고,


이번에 우리가 담은 짐들은 일주일간 여행을 하게 될 짐이었다.


가서 입을 옷, 가서 매일매일 바꿔 입을 수영복, 물놀이 용품, 세면도구 등


일주일간의 삶, 놀이 용품의 복합체는 그리 간단하고 적정용량으로 넣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짐들은 캐리어 속으로 욱여넣어졌고, 좁은 공간을 찾아 테트리스 하듯 작은 짐들을 포개었다.


캐리어 안의 밀도는 점 점 더 빽빽해지고 촘촘해졌다.


그 모습은 흡사 뷔페에서 너무 많이 먹어 목구멍 끝까지 차오른 모습처럼 보였다.


사람이 너무 많이 먹으면 토하듯, 60만 동짜리 거대한 캐리어도 지퍼를 뜯으며 짐들을 쏟아 내렸다.


꾸이에 에엑-


비닐에 쌓인 면도기, 세면용품들이 인천공항의 매끈한 바닥에 흘러내렸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가 지끈했다.


- 테이프로 꽁꽁 묶어서 가야 하나?

- 비행기에 싣다가 터지면?

- 그리고 다시 짐을 푼 다음에 돌아올 때는 어떻게 하려고?

- 다시 집에 들고 가서 다른 캐리어를 가져와야 하나?

-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그것은 무리인 것처럼 보이는데..


동공이 흔들리던 아내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테이프로 붙이면 터질 것 같은데..... 가져오는 것도 일 일거야.... 오빠 이 참에 좋은 걸로 그냥 사자! 오히려 잘 됐어!"


사실 이렇게 일이 벌어지게 된 발단에는, 긴 여행을 다녀보지 않는 나의 짧은 경험에 있었다.


해외여행이라고 하더라도, 고작 2박 3일, 3박 4일이 전부였기에 짐을 많이 넣을 일이 없었다.


그러니 캐리어에 많은 돈을 주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3만 원짜리도 잘 옮겨주는데 굳이? 몇십만 원을 줘야 하나?


오히려 베트남 한시장에서 3만 원 캐리어가 합리적인 소비라고 생각했다.


굳이 좋은 것이 필요있나? 그거 다 브랜드 값 아냐?


그러나 돈을 아끼려다가 진짜 여행이 '망' 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내 짐을 튼튼하게 옮겨주는 캐리어의 가치는 십 몇만 원이 아니라,


비행기 값, 여행지에서 숙소 값, 나의 편안한 기분을 포함하고 있구나.



그런데 인천공항에 캐리어를 파는 곳이 있나?


다들 캐리어를 가지고 오는 것 아니야?라고 생각했는데, 바로 근처에 캐리어를 파는 곳이 있었다.


나만 이런 일을 겪는 게 아니었구나


캐리어를 살 수 있다고 생각, 나만 이런 일을 겪는 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에 숨이 좀 쉬어진다.


휴, 신은 저와 아내를 버리지 않으셨군요.



다만 시간이 많지 않다.


뭐 고르고 할 것도 없고, 지금 가지고 있는 캐리어와 사이즈가 가장 비슷한 걸로 하나 골라달라고 한다.


그리고 한 마디 더 붙인다.


"지퍼가 안 터지는 튼튼한 걸로요"


점원은 지퍼가 이중으로 되어 있어서 절대 터질 리 없다는 파란색 캐리어를 추천해 준다.


짙은 파란색과 노란색 포인트가 있는 캐리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짜 튼튼해 보였다.


가격은 269,000


이제야 이 가격의 의미를 깨닫는다. 비싼 게 아니었구나  






3만 원짜리 회색 캐리어에서 짐을 빼 새로운 캐리어로 짐을 집어넣는다.


착착 감기듯이 짐이 빨려 들어간다.


넉넉한 수납공간으로 짐들이 자리에 안착했다.

 

구멍 뚫린 난파선에 있던 짐들이 비로소 튼튼한 곳에 자리한다.


짐들이 제자리를 찾은 듯 편안해 보인다.




새로 산 캐리어의 바퀴는 구슬이 흘러가듯 부드럽게 흘러간다.


같은 짐을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손목에 힘이 하나도 들지 않는다.


우리 두 사람의 발 걸음은 더 가벼워 진다.







데일카네기는 불후의 명저 자기 관리론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만약 운명이 당신에게  신 레몬을 주면 레모네이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라고



당황할 수도 있었지만 이제 막 부부가 된 우리 두 사람은 가까스로 그 상황에서 레모네이드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어쩌면 이러한 상황을 올 것을 잘 알았고 우려했던 아내가 이 상황이 웃기다며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래도 3만 원 밖에 안 했지만 여러 짐들을 얼마나 잘 옮겨 줬냐며 캐리어에게 인사를 하라고 한다.


아내 말 대로 캐리어에게 작별인사를 해주었다.


'고마웠어 안녕'


나는 캐리어에 많은 돈을 쓰면 안 써도 된다는 고정관념과 함께 흰색 베트남 캐리어를 보내주었다.






어쩌면 첫 시작부터 대판 꼬이고 엉킬 뻔했던 여행이 다시 방향을 틀었다.


 우리 부부는 회색 캐리어를 아무 탈없이 파란색 캐리어로 잘 만들었다.


 오히려 잘 된 것 같다. 언젠가는 문제가 생겼을 캐리어를 지금 더 좋고 튼튼한 캐리어로 바꾸었으니까. 이제 어떤 짐을 넣어도 이 캐리어는 안심이 된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이익을 사용하는 게 아니다. 아무리 어리석은 자도 그 일은 할 수 있다. 진짜로 중요한 일은 손실을 이롭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머리를 써야 하는 일이다. 현명한 자와 어리석은 자는 바로 여기에서 차이가 난다."


- 데일카네기, 자기 관리론 339p, 자화상 출판사, 하소연 옮김



 이제 함께로서 처음 시작한 우리 부부 작은 일이지만 손실을 이롭게 만들어 보았다.


 아니 어쩌면 아내 덕이라고 봐야겠다.


 아내가 "오빠 그러니까 내가 이전에 말했던 대로 그거 싸구려니까 바꿔야 한다고 이야기 했잖아!"


 라고 말했다면 상황은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른다.


 아내에게 무한한 감사의 말을 이 자리를 빌어서 합니다.


 


P.S 인천공항에서 캐리어를 버리는 것이 가능합니다. 다만 캐리어를 버릴때 폭발물 가능성 때문에 사진 처럼 활짝 열어서 쓰레기통 옆에 두면 됩니다. 출처 : 캐리어 판매하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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