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공중보건의 시절 때부터 친한 의사 선생님과 만나 밥을 같이 먹고 술도 한 잔 했다.
서로의 추억을 회상하며 근황을 물었다. 나도 내 결혼 소식을 알리면서, 선생님의 근황을 들었다. 그런데 이 선생님이 최근에 엄청나게 고민되는 것이 있다며 나에게 조언을 구했다.
요즘 의료대란으로 인해 한국에서 의사 생활을 하는 것이 어렵겠다고 판단한 그는 미국의사 시험을 준비했다. 3개월 실습 트레이닝도 마쳤고, 시험도 별 탈이 없으면 잘 통과할 것 같다고 했다. 더군다나 그는 미국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었기에 영어도 유창했다. 내가 보기에 키도 크고 외모도 훤칠한 그는 미국에서 성공할것 같았다. 크게 걱정할 것은 없어 보였다. 같은 의사라고 할지라도 미국 의사의 대우는 전 세계에서 알아주지 않는가.
고민은 이러했다.
그는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의사 생활을 하게 되면 자기 혼자 '이민'을 하게 될 터인데, 그것을 진짜로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의 가족들은 한국에 모두 있었다. 아무래도 미국에서 자신은 이민자 출신이기에 남들 모르는 차별을 겪을 것이며(이미 고등학생 때 숱하게 겪었다고 한다.) 잘 살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고도 했다. 또한 결혼은 언제 할 것이며 자신의 생이 불확실성에 던져진 것 같다고 표현했다.
그렇다고 한국에 남아 있기에는 여타 상황들이 녹록지 않기에 의사 생활을 해나가면서 어려움이 있어 힘들 것 같다고 했다.
최근 들어 극도로 고민을 하고 있어서 자신에게 내가 조언해 주길 바랐다.
이 질문을 받고, 참 아이러니 했다. 나는 미국에 가본 적도 없고, 미국 의사 생활이 어떤지도 모른다. 그리고 한국에서 의사 생활이 어떤지 활동하고 있지 않기에 말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솔직히 말했다.
"내가 미국 의사 생활이 어떤지 한국의 의사 생활이 어떤지 잘 모릅니다. 선생님의 상황을 100% 다 아는 것도 아니고요. 그리고 선생님이 미국에서 살아보셨기 때문에 저보다 미국의 생활에 대해서 잘 아실 거라 생각을 합니다."
"다만 제가 알려드릴 수 있는 것은 선택을 할 때 처한 상황과 심리에 대해서 이야기해드리고 싶습니다."
1. 선택의 다른 말은 포기이다.
대개 고민을 할 때 선택의 상황 지를 보면 얻을 수 있는 장점, 그리고 단점들을 주욱 적어놓는다. 그리고 장점이라도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들을 선택하는 게 이성적으로 옳다.
하지만 실상 속을 들여다보면 모든 것을 놓치기 싫어하는 심리가 있다.
결국 의사 선생님의 고민을 본질적으로 살펴보면
1. 한국에서 남았을 때 "의사 생활이 힘들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고
2. 미국에 갔을 때 "한국보다 생활이 불편하고 이민자로서 차별"을 감내해야 한다.
모든 고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속을 들여다보면 돈이냐, 관계냐, 건강이냐, 사랑이 먼저냐, 가족이 먼저냐, 일이 먼저냐.. 가치관들이 뒤죽박죽이 된다.
나의 가치관에서 무엇이 중요한 지 우선순위를 세워야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우선순위에서 벗어나는 것을 포기해야 선택할 수 있다.
그런데 대개 고민이 되는 경우는 본인 스스로가 무엇을 좋아하는 것인지 가치관이 명확하게 정립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본인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위의 선생님은 의사 생활을 중시할 것이냐, 의사 생활 외의 삶을 중시할 것이냐 둘 중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나는 가치관은 무엇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나? 무엇을 포기할 수 있나?"를 생각해 보면 선택이 쉬워질 수 있다.
2. 모든 정보를 취합하는 것보다 적정한 정보를 가지고 선택을 해야 한다.
선택을 못하는 분들의 공통점은 이번 선택 한 번으로 완벽한 선택을 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흔히 말해 완벽주의 성향이다. 그래서 지금 상황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취합을 하고 단 하나의 완벽한 수를 두려고 한다.
빵에 바르는 잼을 100가지 종류가 있다고 해보자 모든 것을 맛보고 살 수 있을까? 2~3가지만 있을 때 사기가 훨씬 쉬울 것이다.
우리는 한계를 인식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정보를 고려할 수 없고 거기에 대한 경우의 수를 모두 파악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고민에 시간을 써야 하는 것은 적절한 정보를 취한 뒤 본질이 되는 핵심을 파악하고 1번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나의 가치관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대충 조사하고 선택해선 안된다.)
실제로 의사 선생님의 경우 미국에 갔을 때 생활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 자신의 결혼 문제 등등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것까지 하나하나 세부적으로 고려하게 되면서 머리가 터질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것을 생각하면 좋지만 그것은 그때 직접 부딪혀봐야 아는 것이라 생각한다. 미리 그것을 생각하면 더욱 선택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한참을 말하던 선생님은 스스로 결론을 지으며 미국에 가면 '자기는 결혼을 포기해야 하나요?'라고 나에게 되물었다. (나는 물론 아니라고 대답했다.)
3. 선택을 내리고 옳은 결정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뿐이다.
선택 후 에도 우리는 그것에 관해서 무수히 많은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선택 한 번으로 인생이 끝나지 않는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선택에 대해서 자꾸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선에서 결단을 내리고 내가 한 선택을 옳게 만드는 과정을 가져야 한다.
선택에 대해서 자꾸 생각하는 것은 후회와 의구심을 만들지만, 그 선택을 옳게 만드는 과정에서는 생산적인 힘이 발휘된다.
대개 선택은 5대 5의 문제다. 아예 8대 2라면 고민조차 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러면 적절한 정보로 빠른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을 옳게 만드는 과정이 더 필요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와 반대로 5.5대 4.5로 되는 상황에서 1의 차이 0.5의 차이를 민감하게 받아들여 선택하지 못한다. 선택하지 못하면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선택한 뒤에도 자신의 선택이 맞았는지 끊임없이 확인한다. 이미 되돌릴 수 없었는데도 말이다.
중요해서 다시 한번 말한다. 선택 후 내가 선택한 것을 옳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단 하나의 옳은 결정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옳은 결정으로 만들어 가는 내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위의 내용을 요약해서 선생님께 정리해 주었다.
1. 선생님의 가치관 중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편안하고 인정받는 의사생활인가? 아니면 편안한 가정생활인가. 그리고 무엇을 포기할 수 있겠는가?
2. 너무 많은 세부적인 정보를 고려하게 되면 더 결정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3. 사실 한국에 남던, 미국에 가던 중요한 것은 선택 후에 그 선택을 옳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무엇을 선택하던 잘하실 분이니, 어떤 것을 선택해도 인생의 정답으로 만들어 멋진 삶을 만드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다행히 내 조언이 잘 먹혔는지 선생님은 감사하다고 했다. 자신은 너무 완벽한 하나의 정답을 찾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며 자신의 관점이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한 말을 토대로 찬찬히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혹시나 결정에 어려움을 겪는 독자분들도 이 글을 통해 자신있게 선택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참조 : 노화를 늦추는 보고서, 엘렌 랑어 지음, 신솔잎 옮김, 프런티어 출판사.
24년 10월 21일 명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