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명상 마흔 세 스푼
초등학교 때 달리기를 잘하게 되면 1,2,3등에게 도장을 찍어주곤 했는데 그것을 받아본 기억이 없다. 한 번 받았었나?. 가물가물하다.
달리기가 안되니 축구든 농구든 흥미를 가질 리가 없었다.
훈련소에 있을 때 행군이나 구보를 할 때가 힘들었다. 군화를 신고 조금 뛸라 치면 발바닥에서 불이 났다.
구보를 하면 언제나 늘 맨 뒤에서 쫓아가기 바빴다.
군화를 신고 조금 먼 거리를 걷거나 뛰고 나면 다리가 터져나갔다.
그 한 움큼의 살덩이가 뭐라고 이렇게 발바닥을 아프게 하는지..
내가 평발이다라고 말하면, 사람들에게 바로 나오는 반응이 있다.
바로 박지성도 평발이야.라는 말이다.
그 말에 익숙해진 탓일까, 나는 정말 박지성처럼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한 듯하다.
그런 생각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
실패한 원인을 생각해 보면 크게 2가지로 정리된다.
1. 목표를 지나치게 높게 세움. (객관적 평가의 결여.)
2. 평발을 지나치게 의식함. (내가 안 하고 싶은 변명, 이유를 댐.)
첫 번째는 객관적으로 초보인데 마음은 박지성처럼 하고 싶어 했다.
순서대로 가야 할 길이 있는데, 훈련과 목표를 너무 높은 곳으로 잡았다.
초반부터 오버페이스로 훈련을 했다.
강도 높은 훈련을 하니 몸이 빨리 피곤해졌고 운동할 때마다 하기 싫다는 마음이 늘 지배했다.
박지성도 처음부터 잘 달린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현실과 이상과의 괴리가 늘 커지니 재미가 없어졌고 불편한 것을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두 번째로는 현실과 이상사이 괴리가 커지게 되면 그 자리에 변명 거리들이 공간을 차지한다.
연습을 하며 힘든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인데, 이상과 현실이 커지게 되면 그 자리에 변명이 부풀어 오른다.
뛰다가 힘들어지면 '나는 평발인데...'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고 그 생각을 하자마자 다리와 발은 더 아파졌다.
한 두 번 힘들게 달리다가 다리 아파서 못하겠다. 하고 운동을 포기했다.
마음 챙김 명상을 접하고 나서
나의 지나친 욕심이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얼굴 생김새가 다르듯, 원래 체력이 다 다른데 중급자, 고급자들에 맞출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냥 힘들지 않게 달릴 수 있는 내 페이스를 찾았다. 그리고 다음번 달릴 땐 그것 보다 10초라도 빨리 달릴 수 있도록 노력했다.
5초 10초라도 빨리 달릴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쉬웠다.
목표가 낮아지니 꾸준히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만들어졌다.
두 번째로 달릴 때 호흡에만 집중을 했다.
달리다가 다리가 아프고 숨이 찬 순간이 온다. 이전까지 이 순간을 맞이하면 '평발이 또 아프네'라며 발을 지나치게 의식했다.
의식의 결과는 진짜로 더 통증을 심하게 만들었다.
진짜로 아팠는데 인식이 되었는지, 인식이 통증을 만들어냈는지 모를 일이지만 발은 정말 더 아파졌다.
내가 달릴 때 평발을 의식하지 않게 만들어야 했다.
평발을 의식하지 않는 방법으로 다른 대상에 주의를 돌려야 했다.
나는 명상을 배웠기에 달릴 때 오직 호흡에만 집중을 해보려 했다.
호흡은 언제나 늘 하고 있으니 집중하기가 쉬웠다.
시야는 거울에 비친 내 얼굴에 고정했고, 호흡에만 집중을 한 채 달렸다. 내쉬는 숨은 약간 더 길게.
시간은 체크하지 않았다. 시간이라는 관념에 내 몸이 반응하지 않도록 그냥 나의 한계를 찾아보았다.
오직 발이 아파 힘들어서 멈추는 순간에만 시간을 체크했다.
이 순간만큼은 모든 순간을 잊은 채 호흡과, 내 몸의 감각들만 알아차리려 했다.
이 훈련을 처음하고 난 뒤에 체크해보니 내 한계지점이 생각보다 길었다.
어쩌면 시간과 평발이라는 핑곗거리가 더 나아가는 것을 막았던 것이다.
호흡을 통해 핑곗거리를 제거하고 나자 신기하게도 그 지점까지 달리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위와 같은 과정으로 나는 조금씩 훈련해 나가서
지금은 3km를 20~22분 만에 뛴다.
무엇보다 뛰고 나서도 발이 아프지 않다.
이 기록은 러닝을 잘하는 분, 마라톤을 연습하시는 분들에게는 아주 하찮은 기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기록에 나는 당당하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1.5km를 시간 내에 완주도 하지 못하던 내가, 지금은 아프지 않게 달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달리는 그 순간이 너무나 즐겁다.
호흡에 집중하며 달리는 순간만큼은 움직임 가운데 고요함이 있다.
남들에겐 보잘것없어 보일지라도
내 기준에서 소중하게 얻은 것들을
늙을때까지 계속 하고 싶다.
나는 어제의 기록보다 오늘 조금 더 나아지려고 애쓰고
그것을 하는 과정에는 호흡과 몸의 감각에 기울이며 잘하려고 하기 보다 그 과정에 집중하려 한다.
그런 것들을 계속 반복하다 보면 나는 매일매일 재미있게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재미와 성장이 있는 삶을 위하여.
P.S 여러분들의 작지만 뿌듯한 기록, 경험은 무엇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