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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mine Oct 31. 2021

28. 대상포진이 발바닥으로 올 줄이야

- 늦되는 딸, 소녀 같은 엄마(4)

언제부턴가 이루 말할 수 없이 고단했다. 자고 난 뒤에도 피곤했고 쉬고 난 뒤에도 피곤했다. 뭘 해도 피곤한 날이 이어지면서 문득 오래전 갑상선암 수술을 받은 지인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전조 증상이 있었느냐는 물음에 지인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고단했다고 답했다. 내가 언제부터 이토록 피곤했을까, 더듬어보니 코로나 백신 1차 접종 부작용을 겪은 7월 말부터 시작된 듯했다. 2차 접종 땐 이틀을 쉬려고 휴가를 냈는데 마침 엄마 대학병원 검진 날이라 그때 잠깐이라도 요양병원에서 나온 엄마 얼굴을 보려고 천근만근인 몸으로 대학병원으로 갔다. 그 후로도 쉴 틈이 없었다. 추석 연휴 나흘간은 여전히 딸을 알아보지 못하는 엄마와 단둘이 병실에서 보냈다. 그 무렵 입맛도 사라졌다.

     

사흘 연휴가 2주 연속되는 10월이 되면 좀 나을까 했더니 연휴 첫날, 2차 백신 부작용으로 일주일 미뤄진 건강검진을 받아야 했다. 비수면 위내시경 때 조직검사를 위해 조직 일부를 떼냈다. 3시간 넘는 검진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오후 1시, 식욕은 물론이고 아무런 의욕이 일어나질 않았다. 책상이며 화장대는 정리가 시급한 상태였지만 몸은 생각을 따라주지 않았다. 그렇게 첫 번째 사흘 연휴가 휘리릭 지나갔다. 두 번째 사흘 연휴엔 정말이지 아무것도 안 하고 시체놀이를 하려고 별렀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두 번째 사흘 연휴는 결혼기념일을 며칠 앞둔 무렵이었다. 녹록지 않은 회사 일에다 친정엄마 병원으로, 친정아버지 집으로 다니는 내가 위태위태했는지 남편은 부지런히 기사 노릇을 했다. 남편으로선 그 사흘 연휴에 나를 제대로 쉬게 해 주려고 양평 펜션, 홍천 펜션 등 다양한 강점을 가진 펜션을 검색해 보여주며 어디든 마음에 드는 곳으로 가자고 했다. 몸 안의 에너지가 모두 빠져나간 듯한 내 눈엔 어느 곳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엄마가 쓰러진 이후 7개월 넘게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는 내 뒷모습을 걱정스레 지켜봐 온 남편의 기름기 쏙 빠진 얼굴이 보였다. 시체놀이가 소원이라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금요일 서둘러 일을 마치고 회사 앞으로 온 남편의 차에 탔다. 홍천으로 가는 길이었다. 다른 때라면 수다쟁이 아내로 돌아갔을 타이밍인데 난데없이 멀미가 났다. 영종도로 가자고 할 걸, 홍천 가는 길이 이렇게 밀릴 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내가 한심했다. 멀미로 이루 말할 수 없이 괴로운 지경에 이르렀을 즈음에야 겨우 숙소에 도착했다. 내가 맘에 들어할 만한 숙소를 고르느라 긴 시간 휴대전화에 코를 박은 남편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웃는 얼굴을 해야 하는데 펜션 마당에 주차하고 난 뒤에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아 널브러져 있었다. 젊은 펜션 사장은 펜션에 도착해서도 차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내가 이상한지 남편에게 비밀번호 등을 알려주면서 차 유리창 너머로 나를 살피곤 했다.     


숙소에 들어가 소파에 몸을 파묻고 나니 겨우 정신이 들었다. 그렇게 2박 3일간 두부 맛집이며 강을 끼고 있는 카페도 가고, 초록 풍경이 좋은 숙소 발코니에서 남편이 좋아하는 바비큐도 했다. 그러고 다시 멀미를 겪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체력이 바닥난 줄도 모르고 운동을 게을리해서인가 싶어 필라테스도 더 열심히(난 그 ‘열심히’가 항상 문제다) 했다. 운동을 해도, 마사지를 받아도 피곤이 풀리지 않았다. 다시 갑상선암인가 싶을 무렵 건강검진 결과가 나왔다. 몇 가지 재진료가 필요하다는 부분이 있었지만 심각한 부분은 없어 보였(을 뿐이)다.     


그 무렵, 소화도 안 되고 밤에 잠들기도 힘들고, 겨우 잠들어도 2, 3시간 만에 깨고는 다시 잠들지 못했다. 내과에서 여러 약을 처방받아 먹는 와중에 안구건조증은 더 심해지고, 운동을 게을리한 며칠 사이 이번엔 허리가 아파왔다. 거기다 발등이 가려워 긁다 보니 양쪽 발목이며 발등에 모기 물린 자국이 있었다. 홍천에서 바비큐 할 때 발밑에 모기향을 피워놨는데도 모기들의 Jasmine 사랑, 아니 Jasmine표 혈액 사랑은 지역을 가리지 않는구나 싶었다. 그렇게 긁다가 너무 가려워 벌레 물린 데 바르는 물약을 여기저기 발랐다. 다시 며칠이 지나자 발목 부위는 가라앉았는데 발등엔 수포가 생기고 따끔따끔 쑤셨다. 아무래도 모기가 아니라 빈대나 벼룩에게 물린 것 같아 남편 몸을 살폈더니 남편은 말짱했다.      


며칠 후, 발바닥에 불이 난 듯 화끈거려 들여다보니 거기도 모기에 물린 듯한 자국이 10여 군데 있었다. 물약을 바르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칼로 발바닥을 저미는 듯한 통증으로 밤을 거의 새우다시피 하고 출근을 했다. 아침에 후배와 발바닥 통증을 이야기하던 도중 갑자기 발등의 수포가 떠올랐고 대상포진이 발에도 올 수도 있을까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인터넷에 발바닥 대상포진을 검색했더니 주르륵 여러 건이 떴다. 그때부터 마음이 급해졌다. 후유 신경통을 남기지 않고 치료할 수 있는 72시간은 이미 넘겼지만, 한시라도 빨리 항바이러스제를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9시가 되기 직전 통증이 작렬하는 왼발을 까치발을 한 채 회사에서 제일 가까운 병원(내과)으로 갔다. 대상포진인 것 같다며 발바닥을 보여줬지만, 종합병원장을 지낸 내과 원장님은 대상포진을 확신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도 항바이러스제와 진통제를 처방해 달라고 졸라 겨우 사흘 치 약을 타 와서 먹었다.      


강력 진통제를 먹었는데도 종일 발등은 바늘로 찌르는 듯하고, 발바닥은 칼로 저미는 듯했다. 겨우 하루 일을 마치고 피부과로 갔다. 피부과 원장님은 한눈에 대상포진이라며 항바이러스제 투약이 늦어 후유 신경통이 남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입원하면 좋겠지만 그럴 상황이 못 된다면 첫째도, 둘째도 쉬어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데 눈물이 났다. 회사가 1년 중 가장 바쁜 한 주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복을 감사하게 여겨왔지만, 이번엔 그전과 달리 마음도 무너진 것 같았다. 금요일, 토요일 계속 링거를 맞으며 일 폭탄이 터질 다음 주를 대비했다.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내가 인생을 쫌 알지’ 하며 교만이 고개를 드는 순간, 두더지 방망이는 예고도 없이 날아온다는 걸 수없이 경험하고도 대상포진에 다시 강력한 한 방을 맞았다. 건강 상식에선 웬만한 사람 이상이라고 자부했는데 대상포진이 발바닥으로 올 줄이야.      


대상포진 약은 일주일 만에 끊었지만, 다시 편두통과 소화불량 약을 2주일 치 처방받았다. 이제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것도 알겠고, 체력을 넘어서는 일에 욕심부려선 안 된다는 것도 알겠는데 그게 전부는 아닌 듯하다. 내가 중요한 뭔가를 아직 깨우치지 못해서, 이런 내가 답답해서 저 위의 누군가가 몸의 통증으로 신호를 보내는 건 아닌가 싶다. 통증은 사람을 힘들게 하지만 때론 겸손하게 만들기도 한다. 엄마 진료일이나 약을 대신 타러 대학병원을 오가다 더 위중한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세상엔 참 아픈 사람이 많구나 생각한 게 엊그제인데 마치 대상포진이 세상 무서운 병인 듯 엄살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사유가 가을과 함께 더없이 깊어가는 저녁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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