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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mine Feb 13. 2022

35. 10초! 엄마가 나를 알아본 시간

- 김태희 시인의 ‘엄마, 난 끝까지’

엄마와 화상 통화를 하기로 한 날, 예정된 시간 1시간 전부터 어두운 안색을 가리는 화장을 하고 대기 모드로 집 안을 서성였다. 드디어 전화벨이 울렸고 심호흡을 하고 전화를 받았다. 백발의 엄마는 전화기 속에 나타난 큰딸의 모습이 신기한지 반가운 표정으로 내 이름을 부르며 뒤이어 딸이라고 말했다. “엄마~” 하고 부르는 내게 “그래~그래~” 하며 반응하던 엄마는 꿈에서 깬다는 말을 반복했다. 꿈이 자꾸 꾸인다는 뜻인지, 잠이 자꾸 깬다는 뜻인지 궁금해 되물었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엄마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엄마가 나를 알아본 시간은 단 10초였다. 엄마가 나를 알아봤다는 게 착각은 아니었을까 싶을 만큼 그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6분가량 이어진 통화에서 나는 엄마에게 가족들 한 명 한 명의 안부를 전했고, 엄마는 계속 엄마의 언어로 말했다. 통화 말미에 전화를 연결해준 병원 행정직원에게 물었다. 엄마가 나를 알아본 게 맞느냐고. 내 물음에 직원은 “따님 이름을 부르셨잖아요. 큰딸이라고도 했고요”라고 확인해줬다.      


엄마의 언어를 말하는 동안 엄마의 표정은 어둡지도, 힘들어 보이지도 않았다. 살짝 상기된 듯한 그 표정은 적어도 엄마가 몸의 통증을 느끼지는 않는 것처럼 보였고, 기운이 없어 보이지도 않았다. 나는 최대한 환한 표정으로 엄마를 불렀다. 비록 엄마의 대답을 들은 건 통화 초기 10초 동안이 전부였지만 약간 왜곡돼 보이는 전화기 화면상으로도 큰딸을 알아봐 준 엄마에게 감사했다. 엄마에게 육체적 고통을 주지 않은 신에게 감사했고, 엄마와의 통화 첫 10초간을 새겨듣고 내게 확인해준 병원 직원에게도 감사했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엄마를 한 번, 두 번, 세 번 불렀다. 천만번을 불러도 지치지 않을 이름, 엄마, 그 엄마가 나를 알아봤다. 행복하게 웃을 만한 일 아닌가. 머릿속이 뒤엉킨 와중에도 큰딸의 이름을 불러준 엄마, 비록 염색 못 한 백발에 환자복 차림이지만 내 엄마가 분명했다. 엄마를 마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손을 흔들며 웃었다. “엄마, 또 전화할게요~ 그때는 조금만 더 오래 대화해요^^”          


엄마, 난 끝까지

                                        김태희 시인     


산다는 건 평생

생마늘을 까는 일이라고

엄마가 그랬어

서울이라는 매운 도시의 한 구석에서

마늘을 까며 내가 눈물 흘릴 때

작은 어촌 내가 자라던 방 안에 앉아

엄마도 나처럼 마늘을 까고 있겠지

엄마는 내 부적이야

마늘처럼 액을 막아 주는

붉은 상형문자

    

내가

길을 잃고 어둠에 빠졌을 때

엄마가 그랬어

진흙탕 속에서 연꽃이 피지만

연꽃은 흙탕물에 더럽혀지지 않는다고

엄마는 눈부신 내 등대야     


등대가 아름다운 것은

길 잃은 배가 있기 때문이지

엄마가 빛을 보내 줘도

난 영원히 길을 잃을 테야

엄마, 난 끝까지 없는 길을 가겠어             <시 전문>     


그랬다. 엄마는 등대였고, 지금도 나의 등대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엄마가 있는 곳이 집이든 병원이든 엄마가 큰딸의 등대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엄마가 보내 주는 그 빛을 등대 삼아 “엄마, 난 끝까지 없는 길을 가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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