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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mine Jul 09. 2022

45. 창과 거울 이야기

―창은 타인과, 거울은 나와 소통하는 문


최근 듣고 있는 강의에서 ‘창과 거울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한 글쓰기가 과제로 나왔다. 매번 강의 과제가 두 가지여서 5일 안에 제출하기가 버거울 정도였는데 이번엔 과제가 하나여서 그나마 여유가 생겼다. 마음이 바쁠 땐 브런치팀의 독려도 빚 독촉처럼 느껴지곤 했는데 공백이 더 길어지기 전에 과제로 대신하려 한다.


오래전 절친 K와 그의 지인 둘 등 넷이 공부 모임을 빙자한 이야기꽃 모임을 한 적이 있다. K의 지인 중 한 명인 L은 공부가 취미여서 전문직 자격증이 2개나 있는데도 시간강사로 일하며 심리학 석사 과정을 이수 중이었다. 아무리 봐도 이과 성향의 그는 과학주역에 빠져 있었다. 그 무렵 K와 나는 한창 고전 읽기에 재미를 붙인 터이기도 했고 네 사람 모두 심리학에도 관심이 많았기에 모임 날마다 즐겁게 책 (조금) 읽고 (많이) 대화하곤 했다.     


과학주역이 공부 모임의 첫 책이 됐는데 책장이 넘어갈수록 인문학자가 쓴 것에 비해 억지스러운 해석이 제법 눈에 띄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넷 모두 과학주역에 흥미를 잃었다. 그 무렵 심리학 석사 과정을 수행하는 데 피실험자가 필요했던 L은 우리에게 몇몇 실험을 해줄 수 있느냐고 제의했고 나를 포함한 셋은 새로운 제안에 호기심으로 응했다.     


첫 과제는 그림그리기였는데 꽤 여러 종류가 있었다. 처음엔 나무와 집 등 풍경화를 그렸다. 그때 창문과 문의 크기로 그 사람의 성향을 해석한다는 걸 알았다. 난 집을 입체적으로 그렸고 창은 집에 비해 좀 크게, 문은 적당한 비율로 그렸다. L은 유리창의 크기가 세상과 소통하려는 욕구를 나타낸다고 했다. L의 해석을 듣다 보니 내성적이면서도 타인과의 소통 욕구가 큰 나의 내면이 그림 한 장으로 나타나는 게 신기했다. 다른 멤버들의 그림 해석도 그들의 평소 행동, 심리 패턴이 그대로 반영돼 꽤 흥미로웠다.

    

또 다른 그림은 비 오는 날의 사람 모습을 그리는 거였다. 내 그림에 대한 해석은 아주 평이했다. 뒤이어 K의 그림을 본 L은 해석을 주저하는 듯하더니 학과 동기들과 스터디한 후 해석해주겠다고 했다. 뒤에 절친인 K와 단둘이 만났을 때 L에게 그림 해석을 들었냐고 물었다. 잠깐 말없이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던 K는, L의 해석은 과거에 성범죄 피해를 당한 듯하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난 L의 해석이 잘못된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K는 담담하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K의 그림이 내 그림과 좀 다르긴 했지만 우산과 사람, 비 내리는 장면의 그림 속에 그런 큰 사건의 흔적이 담길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렇게 큰 비밀을 공유하게 된 나와 K는 심리학에 더 매료됐고 그때부터 정신과 의사들이 쓴 책을 앞다퉈 읽기 시작했다. 마침 그 무렵 나도 심리적으로 넘어야 할 큰 산을 인식하기 시작한 때여서 마치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짧은 기간에 꽤 많은 책을 독파했다.    

  

그때의 경험 덕인지, 집의 창만큼이나 중요한 사람의 창, 눈에 관심이 커졌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면 상대의 눈을 마치 내면을 들여다보듯이 응시하는 습관이 생겼다. 굳이 심리학을 빌리지 않더라도 눈동자가 불안정한 사람, 내 눈길을 회피하는 사람에겐 신뢰가 생기지 않았다. 내가 지하 카페나, 지하가 아니더라도 외부로 난 창이 작은 카페를 기피했던 것도 내 안의 욕구와 지향이 반영된 거였다는 게 신기했다. 사람의 눈은 집의 창보다 더 많은 것을 알려준다. 그래서 마음의 창으로 불리기도 한다. 또한 상대의 눈에 내가 비치기도 하니 거울의 역할도 한다. 건너편에 앉아 내 모습을 거울처럼 보여주는 상대의 눈을 들여다보며 대화하는 것의 의미가 간단치 않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그림그리기에 이어 MMPI(다면적 인성 검사)도 했다. 약식이긴 했지만, 수백 문항에 답해야 하는 검사였다. 한 가지 성향을 판단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질문 여러 개를 짧은 시간 안에 답하다 보면 결국 그 사람의 성향에 가장 가깝게 수렴되는 방식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검사에도 시간이 걸렸지만, 해석도 당일엔 들을 수 없었다. 그 검사를 통해 나도 잘 알지 못했던 내 성향을 알게 됐다. 그때의 해석은 뒷날 내가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씨앗이 됐고 그 덕에 회사에서 그 열매가 빛을 보면서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모임은 흐지부지됐고 어느 순간 초유의 거리 두기 사태를 맞았다. 새로운 만남은 뚝 끊겼고 절친들과 눈 맞추며 밥 먹고 차 마시는 일조차 조심스러운 이상한 시절을 만났다. 그 와중에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대학병원에 있을 땐 그나마 대면 면회가 가능했지만, 재활병원으로 옮기니 여러 제약이 따랐다. 규모가 작은 재활병원은 코로나에 취약해 너무나 까다로운 면회 조건을 내걸었고 절대 을이 된 자식들은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 조건은 전면 유리로 분리된 방과 복도에서 스피커폰으로 엄마와 소통하는 거였다.


최근의 기억을 모두 잊은 엄마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전화기를 통해 왜곡된 목소리로 소통하기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마스크도 벗으면 안 되니 두 눈만 보이는 나를 엄마가 알아봐 주길 기대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엄마 얼굴과 전신 상태를 볼 수 있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싶어 유리창에 이마를 붙이고 ‘엄마’를 부르며, 엄마의 의미 없는 손놀림에 같이 유리창에 손을 대고 움직이길 10여 분. 엄마가 유리창 밖의 딸과 사위에게 반응한 건 맨 처음 눈이 마주쳤을 때 반가운 사람을 만난 듯 “어!”하며 눈을 반짝인 10초 정도에 불과했다. 10분이 넘어가자 유리창 밖의 딸 부부에게 흥미를 잃은 엄마는 이제 그만하면 됐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그래, 가거라”를 반복했다. 면회는 허락받은 20분도 채우지 못하고 끝나곤 했다.

    

길어진 거리 두기로 눈빛을 교환할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니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났다. 혼자 생각에 빠질 때면 탁 트인 거실보다 아늑한 공간을 좋아하는 성향 때문인지 큰 거울이 있는 파우더룸이 최애 장소가 됐다. 화장할 일은 없어졌지만 그동안 눈을 혹사한 대가로 매일 아침저녁으로 온열마사지를 하고 안약도 부지런히 넣어야 하다 보니 큰 거울과 밝은 조명이 있는 그곳이 안성맞춤이기도 했다. 거울 앞에 앉아 음악도 듣고, 유튜브도 보고, 절친들과 통화도 하다 보니 거울 속 나를 친구 삼은 내가 보인다. 조명 때문에 마스크로 가려지지 않는 양쪽 뺨의 기미가 좋지 않은 시력으로도 도드라져 보인다. 그 사이 하도 큰일을 연타로 겪어서인지 ‘그까이꺼’ 기미쯤이야, 주름쯤이야 하는 내가 보인다. 오랜 거리 두기로 뱃살뿐만 아니라 배짱도 두둑해졌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겠지.  

    

터널 끝이 보이나 싶더니 다시 확진자 증가 추세가 심상치 않다. 그렇지만 지금까지의 여정을 돌아보면 이 또한 견뎌내리란 걸 알겠다. 2년 넘게 거울 앞에서 나를 들여다봐서인지 많은 걸 내려놓은 내가 보인다. 이제 거울 말고 오랜 친구들의 눈을 마주하고 싶다. 그 눈을 통해 그동안 나를 응원해준 그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 그들과 눈 맞추며 다시 이야기꽃 피우며 잘 웃는 나로 돌아가고 싶다. 유리창도, 거울도 결국은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문이다. 타인을 만나느냐, 나를 만나느냐가 다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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