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일희일비해도 괜찮아
―소리 내 웃으면 더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몰라
오래전 처음 요가를 배우면서 명상에 매료된 후 내 기도는 항상 ‘마음의 평화’가 주제였다. 일상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요가와 명상의 고수가 되는 것이라 여겼다. 일과 중 가장 긴 시간을 보내는 회사에서 감정의 기복이 크지 않은 사람, 매 순간 목격자로서 나를 지켜보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그 시도는 언뜻 성공적인 듯 보였다. 누구라도 짜증이 날 만한 상황에서도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게 몸에 배었고, 어쩌다 업무와 관련한 칭찬을 들어도 표정 관리가 잘됐다.
그러던 중 정말 우연히 듣게 된 ‘스토리텔링’ 수업 때 달라이 라마와 관련한 경험담을 들으며 내가 가짜 평화, 위장된 감정 놀음에 빠져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강사는 네팔에서 달라이 라마의 강연을 직접 들었을 때의 경험을 들려줬다.
“달라이 라마의 강연 장면에서 그가 얼마나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지를 봤다. 세계 기아 문제를 논할 때 그의 얼굴은 마치 굶주린 아이를 눈앞에서 보는 듯 안쓰러움과 고통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고, 세계 곳곳에서 만행을 저지르는 테러 단체에 대해 말할 때는 격하게 분노한 얼굴이 됐다. 그리고 그곳 아이들 교육과 관련해 이야기할 때는 더없이 인자한 표정이었다. 1시간 남짓 강연하는 동안 달라이 라마의 표정은 기쁨과 슬픔, 안타까움과 분노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갔다.”
강의를 들은 날 저녁, 거울 앞에서 나와 마주 앉았다. 내가 요가와 명상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게 무엇이었는지를 거울 속의 내게 물었다. 평정심을 유지하고자 표정의 진폭을 좁힌 건 평정을 가장하는 데 지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다. 우리의 일상은 회사에서뿐만 아니라 집에서조차 기쁘다고 맘껏 웃고, 슬프다고 울고, 화난다고 큰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그건 자신의 감정을 그때그때 표현하는 사람을 어른답지 못한 것으로, 성숙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하는 문화 때문이었다.
때에 따라 맘껏 웃고, 울고, 소리 지르던 아이도 대여섯 살만 되면 그런 행동은 아가들이나 하는 거라는 교육을 받는다. 그 때문에 다양한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어른이 된다. 그 결과 점점 표정 없는 얼굴이 되면서 크게 웃는 법도 잊고 자신의 화를 적절하게 표현하고 해소하는 데도 서툰 ‘어른 아이’인 채로 사회생활을 하고 결혼도 한다. 자기감정을 건강하게 다루는 법을 모른 채 아이를 낳으면 부모의 문제는 고스란히 아이에게 대물림된다. 갈수록 학교생활, 회사 생활 등 조직 생활을 힘들어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이유다.
그날 이후 오랫동안 사람들의 표정을 관찰하며 생활했다. 몇십 년 동안 포커페이스를 이상적인 것으로 알고 살아온 탓에 좋은 일에서조차 환하게 웃는 사람을 만나긴 쉽지 않았다. 우리는 하루에 몇 분, 아니 몇 초나 활짝 웃으며 사는 걸까. 웃음 포인트에선 점잔 빼느라 맘껏 웃지 못하고, 화를 내야 할 상황에선 당황하거나 그 순간을 회피하는 것으로 자기감정을 감추고 살아온 세월이 너무나 길었다.
이제 회사를 떠나 자유인이 됐다. 공식적인 자리보다 절친들과 함께하는 자리가 많아지면서 입으로만 웃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맘껏 웃는 일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비록 부모님은 와병 중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을 잘 살아내야 할 책임은 나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주말 오전, 지난달 구순 넘은 노모를 여읜 지인과의 점심 약속을 위해 집을 나선다. 지인은 이번 연말에 회사를 그만두고 고향의 어머니를 돌보러 내려갈 계획이었는데 노모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어쩌면 지인과 함께 눈물 바람을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11월 중순의 날씨가 마치 봄날처럼 따뜻하다.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 길에 노란 은행잎이 주단처럼 길게 펼쳐져 있다. 레드카펫 밟을 일은 없어도 노란 주단 밟을 일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그걸로 충분한 가을이다.